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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인환 May 15. 2024

[철학] 바꿀 수 없는 것을 받아들이고, 바꿀 수 있는

 "주여, 바꿀 수 없는 것을 받아드릴 평온을 허락하시고, 바꿀 수 있는 것을 바꿀 용기를 주십시오. 그리고 이 두 가지를 분별할 수 있는 지혜를 주십시요."

 라인홀드 니부어(Reinhold Niebuhr)라는 '미국 신학자의 기도문'이다.

 신앙이 있던, 없던 마음에 담고 살면 좋은 문구다. 사회는 열정만 있으면 뭐든 할 수 있다고 독려한다. 이 분위기에 '불가능도 있다'라고 하는 것은 쉽지 않다. 다만 냉정하게 보자면 받아 드려야 하는 일도 분명히 있다. 어리석음은 때로 할 수 없는 것에 에너지를 쏟고, 할 수 있는 것에 무기력 하게 한다. 이 둘을 분별 할 수 있는 힘은 '소크라테스'의 '무지의 지'처럼 중요하다. 모르는 것을 아는 것이 최선의 '지'이고 모르는 것을 모르는 것이 최악의 '무지'인 것 처럼 말이다.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을 명확하게 하는 것은 바꿀 수 없는 것을 받아들이고 바꿀 수 있는 것을 바꿔가는 능동적인 삶을 만든다.

 '메타인지'라고 부르는 이것은 과거나 현재나 중요하다. 이처럼 자신이 어쩔 수 없는 하나를 꼽자면 '인간관계'가 아닐까 싶다. 인간관계는 얼핏 자신의 뜻대로 될 것 처럼 느껴진다. 가령 그 관계가 나에게 유리하게 설정되어 있다면 더욱 그렇다. 이런 이유로 자신과 가장 가까운 사람의 행동에 우리는 간섭하기 시작한다. 가장 가까운 사람의 행동에 스트레스를 받거나 불편해 한다. 자신이 아닌 이유로 자신의 행복이 결정되는 것이다. 이처럼 '상대'에 자신의 행복을 맡겨 놓는 경우가 있다. 이것은 정복욕이며 극단적인 이기심이다.

 우리는 상대를 바꿀 자격이 없다. 방법도 없고 그래서도 안된다. 그러한 사실을 꾸준히 확인하면서도 역시 꾸준하게 시도한다.

 모든 관계는 상호연결되어 있다. 존중을 받기 위해서는 존중을 해야하고 사랑 받기 위해서는 사랑을 해야 한다. 물론 존중한다고 무조건 존중을 받는 것은 아니며, 사랑한다고 무조건 사랑을 받는 것은 아니다. 다만 어쨌건 그 반대의 행동을 취할 때 보다 그 확률은 높아진다. 즉, 사랑 받고 싶은 사람에게 '무관심'하거나 '증오'를 표출하는 것보다는 '사랑'을 표출하는 것이 사랑 받을 확률을 높이고, 존중 받고 싶은 사람을 존중하는 것이 '무시'하고 업신 여기는 것 보다 '존중' 받을 확률이 높아진다. 즉 우리가 그 관계에서 수동적으로 받아지는 것에만 집중할 것이 아니라, 그것을 받아내기 위해 능동적인 자세를 취해야 한다. 다만 내가 그런 행동을 취했다고해서 상대가 반드시 나에게 같은 피드백을 주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상대'의 몫이다. 앞서 말한대로 그것은 바꿀 수 없는 것이다.

 관계에서는 바꿀 수 없는 것과 바꿀 수 있는 것이 있다. 우리의 행동은 바꿀 수 있는 것에 속하며, 상대의 행동은 바꿀 수 없는 것에 속한다. 우리는 대체로 자신의 행동 보다 상대의 행동을 바꾸려 노력하지만 다시 말해 모든 관계는 상호연결되어 있다.

 우리는 철저히 상대의 과제에 관여해서는 안된다. 상대의 몫은 상대에게 던지고 자신은 자신의 몫을 다해야 한다. 즉, 결과를 바라지 말고 행해야 한다. '원인'과 '결과'는 사실 비슷해 보이지만 상당히 다르다. '원인'은 대체로 '현재'에 있고 '결과'는 '미래'에 있다. 미래는 바꿀 수 없고, 현재는 바꿀 수 있다. 그것을 불교적으로 보기에 '인과응보'라 한다. 이를 줄이면 '과보'라 부르는데, 인연에 따라 길흉화복의 갚음을 반드시 받게 된다는 의미다. 말이 어려워도 업인에 의해 과보를 받는다는 것은 단순한 자연적 이치와 질서다.

 콩 심은데 콩나고, 팥심은데 팥나지 않는가. 우리가 콩을 심고 팥이 나길 기대하지 않고, 팥을 심고 콩이 나길 기대하지 않는 것처럼 모든 결과에는 원인이 있고 우리의 모든 행동에는 그에 합당한 결과가 나온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말 중에 '진인사대천명'이 있다. '사람은 최선을 다하고 하늘의 뜻을 기다린다는 의미다.

 우리는 '상태'가 아니라 '행동'에 촛점을 맞춰야 한다. '건강해지기'라는 결과보다는 '운동하기'라는 행동에 집중해야 하고, '1등'이라는 등수보다는 '노력'이라는 행동에 집중해야 한다.

 다만 사람은 이를 잊고 간혹 결과에 집중하는 경우가 있다. 운동을 덜 했지만 건강해지기를 바라고, 노력은 하지 않았지만 1등을 하기를 바란다. 다만 우리가 바라야 하는 것은 '어떤 상태'가 되기를 바라야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행동할 수 있는 용기를 가질 수 있도록 바라야 한다.

 행복해 질 수 있도록 주변이 바뀌길 기대하는 것은 모든 신호가 파란불이 됐을 때, 출발하겠다는 마음가짐과 같다. 우리가 나아갈 수 있는 것은 모든 신호가 파란불이 되기 때문이 아니라, 나아가면서 잠시 멈추더라도 그것이 '가는 길'임을 아는 것에 있다.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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