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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인환 May 13. 2024

[감사] 그것이 그것인 이유는 지금의 상태가 그것이기

 얼마나 다행인가.

술, 도박, 여자가 아니라 책에 빠져 지냈다는 사실 말이다. '과거'는 무시무시해 보이지만 현재를 망칠 순 없다. 나약한 존재다. 그 귀여운 아이에게 '이름'을 붙여 주자면, '영사기' 정도가 좋겠다. 끊임없는 공포물을 반복해서 보여줘도 녀석은 '냄새', '촉각'도 갖지 못할 '기억'의 한 조각일 뿐이다.

 기억이란 얼마나 불완전한가. 뒷통수 뒤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지도 못하고 사실을 파악한다는 것 말이다. 오류 투성이는 시간이 지나면 잊혀지기도 한다. 언제든 바뀌기 한다. '과거'는 결국 '과거'가 아니라 '기억'일 뿐이다. 완전하지 못한 '기억'을 두고 말한다. '영사기'에 담기지 못한 더 큰 세상을 어떻게 다 안다고 할 수 있나.

 날카로운 발톱을 들이밀고 송곳니를 들어 보여도 평면 속에서 빠져 나오지 못하는 영사물에 움추릴 필요는 없다.

 녀석에게 어떤 이름을 붙이면 녀석은 그것이 된다. 그것도 모르고 녀석이 만들어낸 공포를 외면하고자 4년을 지워냈다.

 편집적으로 기억을 왜곡하여 내가 얻어내는 것은 무엇이었나. 그 왜곡조차 왜곡하는 왜곡의 기억의 존재에서 '도피'를 선택한 것은 꽤 어리석었다.

 도망친 곳에 '낙원'은 없다고 했던가.

 내가 도망친 곳이 그나마의 차악이더라도 긍정할 법하다. 그러나 돌이켜보니 내가 선택한 차악은 차악 중 최선이었으며 결국 그것이 부정을 씨앗으로 했으나 긍정을 피워냈다.

 나는 '책'으로 도망쳤다. 머릿속 어지러운 목소리를 '작가'의 목소리로 덮었으며, 작가가 떠드는 동안 '그 목소리'는 잠잠해졌다. 쉴새없이 떠드는 목소리를 잠재우기 위해, 스쳐 지나가는 짧은 순간에도 '활자'를 놓지 못했다. 그렇게 쌓인 것이 1000권이다.

 학창시절 친구가 말했다. 자신이 축구를 잘하는 이유는 축구를 잘하기 때문이 아니라고 말이다. 이 역설은 꽤 진리를 닮았는데, 그가 축구를 잘하는 이유는 '결과 해석 능력' 때문이렸다.

 대강 때려 찬 공이 골대를 맞추거나 상대편 선수에게 넘어갔을 때도, 반대쪽 우리팀 선수에게 떨어졌을 때도, 그는 항상 '의도한 바'라고 소리쳤다.

 그런 식이면 황당한 '자기합리화'일 뿐이라고 비난해도 그는 그마저 자신의 성공에 대한 '시기'라고 '자기합리화'했다. 결국 '언제나 옳다'는 명제를 목적으로 두고 모든 과정을 설명하니, 모든 것은 옳았다.

 과거라는 것은 해석하기에 달라지는 것이기에 언제든 만들어 낼 수 있다.

 역사 시간에 3천 궁녀와 함께 사라진 백제의 의자왕이 역사와 다를 수 있다고 들었다. 역사는 진리 아니던가, 싶지만 백제가 망했기에 역사는 방향을 틀어, '아'와 '어'를 다르게 했다. 그렇지 않은가. 세상에 게으르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고, 부지런하지 않은 사람이 어디에 있는가. 어떤 걸 편집적으로 보느냐로 그 사람은 정의된다.

 역사와 기억이 모두 그런 불완전한 덩어리들인데, 어찌보면 그 기준점은 현재의 상태가 된다.

 이제 꽤 긴 터널을 지나왔고 이제는 현재를 긍정할 수 있는 상태가 됐다. 나의 과거는 꽤 긍정이었으며, 그것이 그것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나는 그것을 그것이라고 믿기로 했다. 그리고 결국 모든 것이 오늘의 나를 만들어낸 조각이라고 본다.

 얼마나 다행인가. 다른 유혹이 아니라, 책이라는 유혹에 수 년의 시간을 낭비 했으니, 과연 어차피 버려진 시간과 삶에 '1000권'이라는 경이적인 기록이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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