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표지의 글이 너무 마음에 든다.
"알 수 없는 5년 뒤보다, 오늘 하루와 승부하라!"
그런 시절이 있긴 했다. 지금 중국이 미국의 GDP에 65%도 미치지 못하지만, 일본이 미국 GDP에 75% 수준까지 도달한 적이 있었다. 세계 100대 기업 중 53개가 일본 기업이던 그런 엄청난 시기. 이미 30년 전 1인당 GDP가 4만 2천 불을 넘고 브루나이나 카타르 등의 석유 부곡이나 강소국들을 포함해서 세계 1인당 GDP가 1위 었던 그런 기억 말이다.
그런 기억은 일본뿐만 아니라, 옆 나라였던 우리나라에게도 너무나 생생한 기억이다. '일제'라고 한다면 '일단 좋다.'라는 인식을 갖고 있던 그 시기는 일본인에게 향수와도 같고 영광과도 같은 시기이다. 그런 시기에 기업을 일구던 이들은 일본뿐만 아니라, 옆 나라인 한국, 중국에서도 영웅처럼 소개된다.
이나모리 가즈오는 '마쓰시타 고노스케', '혼다 쇼이치로'와 더불어 일본에서 가장 존경받는 3대 기업가로 꼽히며, 지금도 한국인들이 '일본에서는~' 하고 말할 때, 주어를 뭉개지만, 실제로 그 경영 철학은 '이나모리 가즈오'의 철학을 많이 담고 있다.
이번에 읽은 책은 그의 전기로 알고 읽었다. 하지만 이 책은 그의 전기는 아니다. 이 책은 조선일보에서 38년간 경제 전문 기자로 근무하던 송희영 작가 님의 글이다. 그는 기자 시절 도쿄 특파원으로 일하기도 했다. 그 시절 쓴 책으로 '일본 경제 초일류의 현장'이 있다. 또한 앞서 말했던 '마쓰시타 고노스케'라는 책도 있다. 보통 일본 경제에 관심이 많은 작가 님의 책인데, 작가가 '이나모리 가즈오'라는 사람을 탐구하며 여행하고 관찰한 기행문 정도로 볼 수 있다.
책의 중간중간에는 책의 이해와 설명을 돕는 사진들이 크게 들어가 있다. 실제 '이나모리 가즈오'라는 사람과 책을 읽는 동안 함께 있는 듯한 착각을 줄 정도로 설명과 사진은 좋다. 책을 읽다 보면 몇몇 반가운 이름들을 만날 수가 있다. 가령, 소프트뱅크의 손정의 회장이나 우장춘 박사와 같은 한국계의 반가운 이름들을 만나면서, 인연이라는 것이 참 재밌구나를 알 수 있다.
'이나모리 가즈오'의 이야기가 아니라 하더라도, 시대를 이끌어가는 사람들은 그 활동 영역이 많이 겹치는 듯하다. 빌 게이츠와 스티브 잡스라던지, 아인슈타인과 찰리 채플린 같은 유명인들이 함께 서 있는 사진과 일화들은 너무나도 많다. 책에서 소개하는 내용으로 소프트뱅크의 손정의 회장은 이나모리 가즈오의 수제자라고 한다. 또한 우장춘 박사의 넷째 딸은 이나모리 가즈오 회장의 부인이다.
우리가 인생을 살다 보면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을 만나기도 하지만, 평생 우리가 만나보지 못하는 사람의 수는 더욱 많다. 하지만, 이런 비범한 사람들끼리의 인연이 역사 속에서 자주 등장하는 걸 보자면, 운명은 우연이 아니라, 필연적인 것이 아닐까 생각이 들기도 한다.
이나모리 가즈오라는 인물은 가고시마에서 태어났다. 가고시마는 일본 내에서 별종인 사람들이 많다고 알려져 있다 한다. 성질과 기질이 특수하며 목숨을 가벼이 여기고 살상을 좋아한다고 알려져 있다고 한다. 이런 지역 사람들의 특색 때문에 그들은 용맹한 군대를 착출 하기 좋은 지역이기도 했다. 실제로 이순신 장군의 목수를 앗아간 해전에서도 이 지역 군대가 일본 측 주력 부대였다고 한다.
책을 읽으면서는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다. 내가 어렸을 적 알고 있던 일본의 모습, 즉, 몇 대가 함께 가업을 잇고 장인 정신이 투철하며 고집스러운 일본 기업인들의 모습이 교토 사람들의 모습이라는 것을 알 수가 있었다. 교 토인 들은 일본인들 사이에서도 속내를 알 수 없고, 의뭉스러운 느낌을 풍기는 사람들이라고 한다. 어쩌면 우리가 일본이라는 국가의 이미지를 형성시킨 가장 중심적인 도시가 교토가 아닌가 생각이 든다.
이곳에서는 이나모리 가즈오 회장의 자주 찾던 라면집이 나오기도 하는데, 그 라면집이 무려 70년이 넘었다고 하니 일본의 문화 보존력은 정말로 엄청나다. 물론 인테리어를 다시 했겠지만, 사진 속에 나오는 라면집은 너무 세련되었다.
그의 경영철학은 어쩌면 단순할 수도 있다. 직원들이 회사의 중심이 되는 회사라고 볼 수 있다. 책을 읽으면서는 일부는 공감을 하지만 일부는 공감하기 어려운 부분도 물론 있었다. 내가 직원들과 함께 일할 때, 나도 '리더의 자리'에 대한 고민을 많이 했었다. 어떤 게 좋은 리더일까?라는 고민은 아무리 해도 결론이 내려지지 않았다. 솔선수범하는 리더가 좋은 리더라고 생각하면, 일부 직원들은 자신이 해야 할 일에 나태해지고 리더에게 일을 넘기기도 했고, 무조건적으로 잘해주다 보면, 영화의 대사처럼, 그것이 곧 권리라고 생각하는지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경향도 있었다.
그렇다고 강하게 밀어붙이면, 그 또한 금방 지치기도 했다. 때로는 카리스마 있고, 때로는 유한 리더가 진정한 리더라고 생각했다.
나는 내가 관리자로 있을 때, 점심시간에 항상 직원 한 명, 한 명에게 값비싼 점심 식사를 사비로 제공했었다. 한 끼에 식사비용이 4만 원 가까이 나오고, 아침에는 항상 생과일주스를 사주었다. 그렇게 1년을 하고 보니, 내가 직원들을 위해 사용한 사비용만 대략 3000만 원이 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는 직원들과 소통하기 위해 사용한 금액이라고 생각했지만, 다시 생각해보면 그런 것도 아니다. 진정한 리더십은 간단히 말해서, 효율적인 업무 처리를 통해, 직원들에게 사명감을 부여해주고, 빠른 업무와 능률로 성과를 만들어 내면, 그에 합당한 대가를 금액이나 시간으로 지불해주는 것이라고 생각이 든다.
유한 리더는 직원으로서 매우 좋다. 하지만, 그런 리더는 속이기 쉽고, 직원 자체로도 나태해지기 쉽다. 리더가 만만하면, 리더가 하는 일에 대하 쉽게 못마땅함이 느껴지고, 존경함이 사라진다. 때문에 적당한 선에서의 카리스마는 반드시 필요하다.
이 책을 읽다 보니, 뒤로 갈수록 한국과의 비교가 나오는 부분이 있었다. 이 책을 전반적으로는 재밌게 잘 보다가, 한국이 언급되는 부분만 나오면 어쩐지 조금 불편해지기도 했다.
사실 사대주의에 아직도 젖어 있기에는 대한민국의 저력은 분명하게 있다. 우리는 지난해 기준 IMF의 세계경제 전망 데이터 베이스 자료에서 PPP 기준 1인당 GDP가 3만 7천542달러로, 한국과 일본의 격차가 이제 곧 역전될 것으로 전망했다. 사실, 모든 영웅은 시대가 만든다고 생각한다.
이순신 장군이 지금 시대에 태어나면, 나라를 구할 영웅이 될 수 없을 수도 있고, 유관순 누나가 지금 시대에 태어나면 그냥 평범한 여고생으로 자랐을지도 모른다. 아주 복합적인 사회와 경제, 문화, 역사가 어우러져가며, 한 개인의 특성에 대한 시너지를 만들어 내면, 그것이 그 사람의 역량을 키우고 사회에서 주목받게 하는 영웅이 된다고 생각한다.
아직은 잘 모르지만, 우리는 새로운 시대를 살고 있다. 그의 철학에서 분명하게 배울 점은 있다. 배울 점을 배우고 취할 점을 취하지만, 결코 자신을 낮추고 비관적으로 바라볼 필요는 없는 것 같다. 사실 나는 뉴질랜드에서 자리를 잡고 있었다. 당연히 이민을 하게 구나 싶었다. 하지만 이렇게 한국으로 돌아왔다. 한국으로 돌아와서는 '헬조선'이라고 부르는 우리나라에 대해 불만이 있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은 되려, 한국이라는 나라에 대해 모조 건 적인 낙관론을 갖고 있다. 앞으로 한국이라는 나라가 세계 질서에서 리더 국으로 그 역사를 다시 할 날이 곧 올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