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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인환 Jun 20. 2024

[경제] 가진 돈을 몽땅 써야 하는 이유_가진 돈은 몽

 극단적인 표현이지만 꽤 일리있다. 가진 돈을 몽땅 써야 한다. 일부 이 말에 공감한다. 예전 '스타크래프트'라는 게임에서 배운 바 있다. 친구에게 스타크래프트를 배운적 있다. 게임은 단순하다. 광물을 캐고 자원으로 유닛을 만들어 상대를 공격하면 된다. 현실 전쟁과 굉장히 비슷한 부분이 있다. 전쟁의 가장 중요한 부분은 '광물자원'과 같은 경제력이다. 게임은 시작과 동시에 4명의 일꾼을 준다. 일꾼들이 일을 시작하면 '광물자원'의 숫자가 올라간다.

 이때 필승의 전략은 이렇다. 쌓이는 광물자원을 최대한 0으로 만들어야 한다. 50원이 모이면 또다른 일꾼을 생산하고 100원이 모이면 건물을 짓고 다시 50원이 모이면 일꾼을 생산한다. 돈이 쌓이도록 놔두는 것은 기회비용을 날리는 행위다. 어리석게도 게임을 처음 시작할 때, 절약을 하는 경우가 있다. 일꾼이 생산하는 50원을 아껴 큰 건물을 생산하려는 시도다. 이게 얼마나 어리석은지 게임을 아는 이들은 안다. 가진 돈을 몽땅 쓰다보면 나중에는 잠시 전투를 하는 도중에도 엄청난 돈이 쌓이게 마련이다. 결국은 아껴쓰는 것보다 몽땅 회전 시키는 편이 이득이다. 

여기서 포인트는 '누구보다 빠르게'다.

 게임에서 가장 비싼 건물 중 하나는 '커맨드센터'다. 대략 500원 미네랄 정도 된다. 초기에는 꽤 목돈에 해당된다. 게임을 시작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커맨드센터를 짓고 확장하지 않으면 한정된 자원은 결국 남에게 빼앗긴다. 한정자원을 나눠 갖는 현실 구조와 똑같다.

 저축은 은행의 채권을 사는 투자다. 주식, 채권, 부동산 등 많은 투자 방법 중에서 기대 수익이 가장 보잘 것 없으며 자신의 기회비용을 채권을 구매하여 묵혀두는 일이다. '저축'이 최대 '선'이라면 은행은 어째서 사람들이 저축한 돈을 '저축'하지 않고 '기업'에 대출해주겠는가. 그리고 기업들은 어째서 그것을 대출받고 운용하겠는가. 기업의 목적은 '이윤추구'다. '저축'이 '이윤' 추구의 최대 선이라면 기업은 '대출'이 아니라 '저축'을 해야 한다. 그러나 기업은 적당한 인플레이션에 걸맞는 성장을 하고 규모를 확장한다. 그리고 결국 개인을 고용한다. 빌린자가 빌려준 자를 고용하는 이상한 구조가 형성된다.

 돈은 '기회비용'의 다른 말이다.

가령, 욕구가 같은 사람이 있다고 해보자. 한 사람은 욕구를 해결할 능력이 있고 다른 사람은 그럴 능력이 없다. 이 욕구를 '교육'에 비교해보자. 어떤 이는 교육에 지출할 경제적 능력이 있고, 어떤 이는 없다. 둘이 같은 능력을 가질 수 없다. 등가교환에 의해 돈을 지불하는 행위는 무언가를 얻는 행위와 같다.

 반드시 물품일 필요는 없다. 경험이나 인맥, 능력 때로는 기회일수도 있다. 돈을 지불하면 그에 합당한 댓가가 돌아온다. 물론 아무 의미없는 소비성 지출을 늘리지 않는다면 말이다. 유튜브든 글쓰기든 요리든, 모르는 부분이 있거나 경험한 적 없는 세계가 있다면 과감하게 지불하여 새롭게 배우고 시도하는 것이 좋다.

 인류가 저축이라는 개념을 도입한 것은 비교적 최근이다. 인류는 대략 1만년 전 정착을 시작했는데 '농업혁명' 때문이다. 농업혁명은 인간에게 '잉여생산물'을 선사했다. 그전까지 인간에게 저축은 존재하지 않았다. 쓸만큼 쓰고 필요없으면 버렸다. 농업혁명은 분명 '부'를 만들어낸 혁명이긴 하지만 생각해보면 이는 계급을 만들어냈다. 아이러니하게도 인류 역사상 농민이 지배계층이었던 적은 한번도 없었다. 농민은 언제나 피지배계층이었다. 이들은 착취 당하거나 세금을 징수 당하는 존재들이었으며 그들을 지배하는 계층은 대개 외부에서 무기를 들고 침략한 '침략자'이거나, 과거 토지를 획득한 '정복자'의 후손이다.

 유럽축구리그를 보면 스폰서들을 익숙하게 보게 된다. 놀라운 것은 스포서의 상당수는 '보험회사'라는 점이다. 현재의 보험사들은 '보험업무'만 하지 않는다. 이들은 잉여자금을 공격적으로 투자하는 투자회사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왜 인류역사상 가장 오래되고 경제력있는 회사는 '보험회사'인가. 보험의 기원은 '도박'에서 찾을 수 있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생명보험회사는 영국의 '런던로이즈'이다. 런던로이즈는 본래 장거리 항해를 하는 선원들이 찾는 카페였다. 그러다 17세기 말 카페를 다니던 손님들 사이에 선박이 무사히 항구로 돌아올지 내기를 시작했다. 카페는 이를 사업으로 발전시켰다.

 농민들이 잉여수확물을 저축한 이유는 그들이 풍요로운 생산능력을 가졌기 때문만은 아니다. 이들은 미래지향적인 사고를 가졌다. 농사는 꽤 예측가능성이 높은 사업이다. 계절에 따라 반복되는 날씨와 기온이 있고 이에 맞는 수확시기가 정해져 있다. 다만 이 안정적인 패턴 중 예외상황이 발생한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 필수적으로 '잉여 생산물'을 저축해야 한다. 다시말해 미래지향적인 사고는 불필요한 불안을 낳고 행동을 제한한다.

 계산된 예측에 어긋나는 행위에 대한 불안이다. 이 불안은 '소유'를 통해 해소하고자 한다. 

 한 살인 아이는 불안함이 없다. 7살인 아이에게도 불안함은 없다. 불안은 꽤 안정적인 경제력을 가질만한 나이부터 갖게 시작하는데 아이러니하다.

 현대인 대부분의 소비는 '필요'보다 '과잉'하다. 다시말해 '소비력' 자체가 사회적 지위를 증명하는 수단으로 사용된다. 고로 소유는 특히 물건을 살 기회와 이를 뒷받침할 경제력이 있다는 사실을 과시하는 수단이다. 비록 집은 없지만 '고급승용차'를 가지고 있어야 하는 이유는 그것이 자신의 사회적 지위를 대변하기 때문이다. 다만 사실 실제 지위를 가지고 있는 이들에게는 이것이 필요없는 경우가 있다. 나에게 눈이 두 개가 있는데, 누군가 눈이 하나 밖에 없다고 한다면 무엇이라 답변하겠는가. 아마 상대할 가치를 못느낄 것이다. 자신의 자존감이 완전하게 형성된 이들에게 지위를 설득하는 일은 무의미하다.

 사람에게는 일생간 소득주기와 소비주기가 일치하지 않는다. 우리는 태어나자마자 무지막지하게 소비하고 생후 20년 동안 생산이라고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즉 소비력과 생산능력은 반드시 비례하는 것은 아니다. 다시말해 소비가 죄라면 인간의 삶에서 '죄'를 짓지 않는 기간은 생각보다 크다.

 생산과 소비의 균형을 적절하게 맞추는 것에 몰두하다 보면, 당연히 출산률은 떨어질 수 밖에 없다. 삶은 '살아가는 것'이다. 살아가는 것에는 '소비'가 발생한다. 이것을 완전히 절저한다는 것은 '생산'만이 '선'이라는 좋지 못한 사회적 인식을 만들어낸다. 자신의 '생산력'을 넘어서는 '무절제한 소비'는 분명 옳지 못하지만 자신의 생산력 내에서 충분히 소비하고 즐기는 것을 모두 나쁘다고 할 수는 없다.

 돈이 모든 것에 '선'은 아니다. 돈으로 해결 할 수 없는 부분은 생각보다 많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돈'으로나마 해결할 수 있는 부분은 해결하고 살아가는 것도 옳다는 것이다. 그 또한 일종의 기회비용이다. 아이들과 함께 외식할 수 있는 기회비용, 좋은 옷을 입고 다니며 다른 사람들에게 좋은 평판을 쌓다가 얻을 수 있는 다양한 기회에 대한 비용, 다양한 취미를 가진 이들과 같은 취미를 공유하다가 갖게 될 고급 정보들에 대한 기회비용.

 그런 기회비용들이 통장잔고에 쌓여, 연 3%도 안되는 성장률로 잠들어져 있다. 그리고 반대편에서 그 잠든 잔고를 깨워 더 빠르고 신속하게 사용하는 이들이 있다. 과연 돈이 돈다는 것이 맞을까. 멈춰져 있는 것이 맞을까, 생각해 볼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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