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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인환 Jun 21. 2024

[인문] 모두가 평등하다는 착각_케이크를 자르지 못하는

 지인의 권유로 MBTI 검사를 했었다. 유형별로 사람을 나누는 일에 관심이 없었으나 분위기에 편승하여 검사를 했다. 짧게 끝나는 간단한 문답이 이어졌다.

 문항을 풀면서 혼잣말은 이랬다.

'원래 다 그렇지 않나'

 문항이 묻는 것은 누구나 당연하게 생각하는 물음이라고 생각했다. 검사를 마쳤다. INFJ라는 결과가 나왔다. INFJ는 매우 희귀한 성격이었다. 이후 옆에 있던 지인이 검사를 했다. 도무지 일반적이지 않은 대답을 했다. 결국 모든 사람이 다 비슷한 것은 아니며 내가 굉장히 소수에 속한다는 사실을 알았다.

 한 나무에서도 다른 모양으로 가지가 자란다. 그러나 우리는 때로 모두가 같을 것이라 생각한다. 각자 자신을 기준으로 중심을 잡고 세상을 바라본다.

 사람에게 받은 상처를 '산'이나 '강', '바다', '식물'이나 '동물'에게 푸는 경우가 종종 있다. 우리가 인간에게 받은 상처를 그들에게 푸는 이유는 그들은 '말'을 하지 않기 때문이다. 또한 그들에게는 어떤 '기대치'도 없다. 즉 우리가 상처를 받는 이유는 '기대치' 때문이다.

 아이가 한살 때, 방청소를 깨끗하게 하기를 기대하지 않는다. 아이는 누워서 똥오줌을 싸고 배고프면 배고프다고 큰소리로 운다. 그러나 부모는 아이를 나무라지 않는다. 그러나 아이가 걷고, 말하기 시작하면서 거기에 '기대치'가 생긴다. 기대치는 갈등의 원인이 되곤 한다.

 정치에서 '평등'의 개념은 '보수', '진보'에 따라 다르다. 보수 진영에서는 '기회의 평등'을 주장한다. 진보 진영에서는 '비례적 평등'을 주장한다.

 기회적 평등이란 모든 이들에게 동등한 기회를 부여하는 평등을 말한다. 반대로 비례적 평등이란 결과의 수량을 평등하게 맞춘다는 것을 의미한다.

 다시말해서 기회적 평등은 모두가 같은 출발선 위에서 달리기 시합을 하는 일이고 비례적 평등은 모두가 같은 도착점에 있을 수 있도록 출발점을 조정해 주는 일이다.

 '미야구치 코지'의 '케이크를 자르지 못하는 아이들'에는 '알랜드 보통'의 '불안'과 보면 비슷한 인사이트를 준다. 우리가 과연 같은 세상을 바라보고 있는가, 하는 물음이다.

 우리 아이가 7살 정도에 글씨를 썼는데 글씨에 좌우가 반전되어 있었다. 어떤 부모는 b와 d를 구분하지 못하는 학생을 나무란다. 'ㅇㅏ를 'ㅓㅇ'라고 적은 아이를 답답하게 여길지 모른다. 그러나 그것이 단순히 '교육'의 문제가 아니라, 아이 발달 상태가 성인과 달라 반전된 상태로 보인다면 무엇이라 할 수 있을까. 여기에는 '기회의 평등'이라는 잣대가 무용이 된다.

 여기서 말하고자 하는 바는 '기회의 평등'과 '비례의 평등' 중 어느 하나가 '선'이라고 말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이 둘은 적정한 균형이 필요하다. 다만 분명 '출발점'이 다른 이들이 존재한다는 점이다. 고로 그들을 바라보는 일반적인 출발점에 우리는 그들이 '없다'라고 여길 수는 없다.

 범죄자의 일부는 인식 방식에 차이가 있다. 일본의 예를 들자면 일본의 재소자 일부는 '인지능력'이 평균에 미치지 못했다. 그것이 유의미한 차이가 있으면 그것을 '장애'라 부른다. 겉으로 보이지 않는 '인지능력장애'를 확인하기 위해서는 몇가지 절차가 필요하다. 범죄는 '나쁘다'는 일반적 인식과 다르게 어떤 이들은 단순히 '왜곡된 시선'으로 세상을 보고 있을 수 있다는 의미다.

 아이가 글자를 좌우반전된 상태로 그렸던 것이 단순한 실수나 잘못이 아닌 것처럼 어떤 이들은 특별한 죄의식 없이 범죄를 저지른다. 이것은 '죄의식 없는 범죄자'를 변호하기 위해 '선량한 피해자'의 이해를 요구하는 것이 아니다. 최소한 우리 사회가 '범죄'에 대한 '법적 처벌'을 씌울 지언정 그곳에 도덕적 결함이나 '선악'을 투영하기까지는 속단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누구나 노력하면 모두가 성공할 수 있는 기회적 평등의 사회를 살면서 우리는 모두가 그렇지 않는 사회를 살고 있다. 누구는 분명 열심히 하고도 그렇게 되지 않는다. 누구나 열심히하면 '메시'나 '호날두'가 될 수는 없고, 누구나 열심히 했다고 '모차르츠'나 '베토벤'이 될 수는 없다. 여기에는 분명 남다른 출발점이 존재한다. 그것을 인지하지 못하면 사회적 갈등은 필연적으로 늘어난다.

 아무리 열심히 하려고 해도 성적이 오르지 않는 학생은 분명 존재한다. 아무리 노력해도 살이 빠지지 않는 비만인도 존재한다. 그것은 보통 사람에게는 있을 수 없는 일일 수 있지만 누구나 같은 세상을 보지는 않는다는 점에서 이해할 법한 범주에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그들을 어떻게 바라보아야 할까. 케이크를 삼등분 하는 방법을 일반적이지 않은 방식으로 그려내는 이들과 공존하는 방법은 어떤 것들이 있을까. 이는 사실 아직도 풀리지 않은, 그리고 풀어야 할 숙제 중 하나 일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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