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와 영국 사이 해역에는 1994년에 유로터널이 건설됐는데, 그 길이가 50킬로미터다. 이 터널은 세계에서 세 번째로 긴 터널인데 프랑스 측과 영국 측에 각각 이름이 따로 있다. 프랑스 측 입구는 '칼레 터미널'이라 부르고, 영국 측 입구는 포크스톤 터미널이라 부른다.
자, 그렇다면 프랑스와 영국을 잇는 이 터널에는 총 몇 개의 구멍이 있는가.
얼핏 두 개 같다. 하지만 아니다. 정답은 하나다.
단순히 하나의 구멍이 늘어져 통로가 됐을 뿐이다.
쉽게 설명해 보겠다. 도넛에는 구멍이 하나가 있다. 이 도넛을 길게 늘리면 우리는 두 개의 구멍을 보게 된다. 입구와 출구라는 착각이 생긴다. 이것은 일종에 '인식'이 만들어낸 '착시'에 불과하다. 여전히 구멍은 하나다. 다시 말하면 이렇다. 같은 모양이지만 길이가 길어지는 것만으로 우리는 존재해 본 적 없는 하나의 구멍을 더 만들어낸다. 그 길이가 계속 길어지면 결국 우리는 이 둘을 연결하는 연결마저 잊는다.
누군가에게 산을 하나 그려보라고 하자. 그는 어떻게 그릴 것인가. 아마 세모를 덩그라니 그릴 것이다. 그 세모를 그린 사람도, 요청한 사람도 모두 '산'이라고 인식한다. 그 이유는 이렇다. 구조를 단순화하여 인식하기 편하게 왜곡한 형태가 경제적이기 때문이다.
구조를 단순히 하여 형체를 왜곡하는 일은 많다. 지하철노선도가 그렇다. 지하철 노선은 실제 직선으로 되어 있지 않다. 그러나 우리가 보는 노선도에는 모든 지하철도가 깔끔한 직선으로 표현되어 있다. 가까워 보이는 거리는 실제로 멀수도 있다. 반대로 먼 거리가 가까울 수도 있다. 이렇게 대상을 왜곡하여 더욱 본질에 가깝게 만드는 것을 '위상동형'이라고 한다.
'약도'나 '지하철노선도'가 그렇다. 그렇다면 본래 하나인데 입구와 출구가 늘려서 두 개처럼 보이는 것들은 무엇이 있을까. 단순히 '공간'만이 아니라, '시간' 또한 늘려보자.
'생과 사', '원인과 결과', '만남과 이별' 등이 그렇다.
모형 뿐만 아니라, 시공간에도 '위상동형'이 존재한다. 그 말은 사실 본질적으로 '위아래', '좌우', '과거, 미래' 따위가 없다는 의미다.
그저 하나의 0이 길게 확장된 위상동형 형태라는 의미다.
모든 것은 사실 '공'하다. 비어있다. 모든 것은 사실 '무' 아무것도 없다. 좌표평면의 영에서 마이너스로 혹은 플러스로 무한히 확장된 에너지는 사실 완전 반대적이다. 이 둘은 사실 극단으로 아무리 넓어져도 결국 0이다. 플러스 1과 마이너스 1이 결국 0인 것처럼, 플러스 25조와 마이너스 24조가 결국 0인 것처럼 결국은 0이다. 고로 우주 어디에도 크거나 작다는 것은 없다. 결국 공하고 무하다.
모든 것은 어떤 것에 의해 서로 상쇄한다. 그것은 서로 대립하지만 연결되어 있다. 동양철학으로 보자면 '음양론'이다. 음과 양은 완전히 다른 성격이지만 사실상 하나다. 연결되어 있으면서 극과 극이고 섞이면서 분리되어 있다. 그 절대값은 양이나 음이나 조금의 차이도 없다.
우주는 없고 비어있는 것에 위상동형이다. 빅뱅이라는 0이 양과 음으로 폭발함으로 다양한 음과 양을 만들었다. 그것은 다시 영으로 소멸된다. 그 시작과 끝점의 연결선에서 우리는 존재한다. 결국 우리는 공하고 무하다. 실제로 스티븐 호킹 박사는 우주의 모든 양의 에너지와 음의 에너지의 합은 '제로'라고 설명했다. 우주는 물질과 반물질이 비례하고 '양전하'와 '음전하'가 무한히 출렁거리며, 서로를 상쇄하고 생성한다. 그러나 그 절대값은 결국 0이다.
우리를 구성하는 모든 원자는 무엇과 무엇의 결합으로 이뤄져 있으나, 그 최초의 원자를 보면 '수소원자'를 만난다. 결국 모든 것은 그것이 어떻게 결합됐느냐로 형태를 잠시 구성하다가 다시 쪼개지기를 반복한다. 원자는 음과 양으로 이뤄져 있는데, 그것이 정확하게 균형을 잠시 이루어 '물질'로 존재하다가 사라진다.
또한 전자와 중성자의 크기와 거리는 제주도 백록담에 있는 감귤 하나와 바다 끝에 있는 먼지 하나의 비율이 있다. 결국 '원자'의 99.99%는 비어 있는 공간일 뿐이다.
누가 누구를 차별하고, 누가 누구보다 못나고, 누군가가 누군가보다 열등하다는 것은 가능할까. 그렇지 않다. 결국 모든 것은 모두 별차이 없다. 우리가 절대적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사실 모두 상대적인 것이며 모든 값을 다해보면 결국은 너나 나 모두 0일 뿐이다.
고로 나는 너와 다르지 않고 너는 나와 다르지 않고, 좋음과 나쁨은 따로 없으며 나쁨에는 좋음이 있고, 좋음에는 나쁨이 있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은 0의 위상동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