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오인환 Aug 20. 2024

[생각] 당신의 현재는 자동주행 중인가_어른이 되면 고

 어른이 되면 시간은 손살처럼 지나간다. 30대는 30km로 40대는 40km로 80대는 80km 속도로 달려간다고 하던가.

 어른이 될수록 이렇게 속도가 빨라지는 이유는 우리의 뇌가 기억하는 기억의 공간에 빈틈이 숭숭하고 생겨 버렸기 때문이다.


 다시말해서 우리는 반복되는 일은 '무의식'에게 맡겨 버린다. 무의식은 쉽게 말해 자동차 '자동주행'과 같다. 그 섬세함이 떨어지기에 완전히 그것에게 주행을 맡길 수 없다. 그 멍청한 인공지능은 그저 보조 수단으로 나를 인도할 뿐이다. 우리는 때때로 '자동주행 장치'를 실행해 놓고, 자리를 뜨는 경우가 있다.

 '과거'로 혹은 '미래로'

 육체와 정신은 '자동주행' 걸어 놓으면 '무의식'으로 밥을 먹고, 무의식으로 샤워를 하고 무의식으로 운전을 한다. 그동안 '본 의식'은 어디로 가는가. 바로 과거와 미래로 가서 불필요한 불안과 불행을 끄집어 온다.


 고로 주행자는 자리를 지켜야 한다. 주행자가 운전에 집중할 수 있게 하는 방법은 섬세하게 검포도를 느껴보듯 지금과 여기를 음미해 내는 것이다.


 마음챙김 수행 중에 '건포도 수행'이라고 있다. 어렵게 가부좌를 틀고 호흡을 세는 것이 아니라 '건포도'를 먹는 수행이다. 이것이 어떻게 수행이 되느냐고 묻는다면 그것은 아주 섬세하게 여기와 지금을 느끼게 하기 때문이다.

 어른이 되면 고민은 많아진다. 이유는 고민거리가 많아져서가 아니라 현재에 집중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어른들은 현재를 두고 과거와 미래로 간다. 지나가 버린 과거에 대한 후회, 현재에 대한 불행하다는 망상, 미래에 대한 불안한 걱정들. 그것을 잔뜩 머릿속에 두고 살아간다. 그러나 정작 그런 후회와 망상과 걱정을 하고 있는 지금과 여기에는 아마 편안한 여가를 즐기며 여유시간을 즐기고 있을 것이다.


 다시 '건포도 수행'으로 돌아와보자. 건포도 수행은 자신의 감각과 경험에 대한 인식을 높이는 수행이다.


 단계는 이렇다. 


첫째, 건포도를 고른다.

건포도를 손에 집어들고 가만히 그 건포도를 바라본다. 그것의 색깔과 모양을 관찰하고 표면의 질감을 자세히 살핀다. 직원들 월급, 원천징수, 아이들 학원비, 미납한 공과금, 카드대금을 비롯해 과거, 현재, 미래의 불안과 걱정과 후회 따위를 모두 잊어버리고 건포도를 자세히 살핀다. 마치 건포도를 처음 보게 된 것마냥 자세하게 살핀다.


 둘, 냄새를 맡는다.

 눈을 감고 건포도 냄새를 맡는다. 냄새는 어떤지, 그 냄새가 불러 일으키는 감정은 어떠한지 자세헤 느껴본다. 달콤과 새콤이라는 그 건포도의 향이 주는 독특한 '냄새 분자'를 세밀하게 감상해본다.


 셋, 질감을 체험한다.

 검포도의 울퉁불퉁한 표면의 질감, 크기, 그것의 말랑거림, 얼만큼의 수분을 함유하고 있을지, 아주 세밀하게 손바닥과 손끝을 통해서 체험해 본다.


 넷, 입에 넣기.

 천천히 건포도를 입에 넣는다. 씹기 전에 혀로 그 질감과 무게를 느낀다. 건포도가 혀에 닿았을 때, 느낌을 상세하게 분석해본다. 입안에 침은 어떻게 반응하는지 알아차려본다.


 다섯, 씹기.

 건포도를 씹는다. 건포도가 터지면 나오는 육즙을 맛본다. 씹을 때마다 건포도의 맛이 어떻게 달라지는지 그 변화를 상세하게 느껴본다. 입안의 감각은 어떻게 달라지는지, 모든 맛과 텍스처를 음미한다.


 여섯, 삼키기.

 목구멍을 타고 내려가는 검포도를 느껴본다. 삼킨 후의 입안의 잔여감에도 주목한다. 검포도가 소화기간을 내려가며 훑어가는 모든 감각을 살려본다.


 일곱. 반추하기

 건포도를 먹는 전체 과정을 되돌이켜본다. 그 감정과 생각, 감각을 돌아보고 그를 통해 무엇을 느꼈는지 떠올려본다.


 딱히 건포도가 아니라도 좋다. 매순간에 주어진 감각을 살려 내본다. 샤워를 할 때는 떨어지는 물줄기를 모두 느껴본다거나, 물의 온도, 물이 떨어지는 소리, 물이 피부에 닿는 감촉과 향기를 모두 느껴본다.

 밥을 먹을 때는 밥알이 느끼는 감촉, 혀에 닿는 느낌을 모두 느낀다. 걸을 때는 발바닥과 땅이 붙었다 떨어지는 감각을 느껴본다. 보폭과 손이 움직임을 느껴본다.

 말을 할 때는 상대의 말 뿐만 아니라, 자신의 목소리를 느껴본다. 자신의 말투, 억양을 바라본다. 상대의 말에 자신은 어떤 감정을 갖게 되는지 그 감정의 변화를 가만히 지켜본다. 화가난다면 '화'라는 것이 무엇인지 곰곰히 살펴보고, '우울'해진다면 '우울'이라는 감정은 무엇인지 '검포도'처럼 음미해본다.


 그러다보면 우리의 의식은 주행석에 앉아 우리의 몸과 마음이 제대로 주행 할 수 있도록 조종해준다. 멍청한 '자동주행'에게 자신을 맡기는 것이 아니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