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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똥을 선물 받았다. 자, 이제 어디에 뿌릴 것

by 오인환

마음에는 여러 공간이 있다. 편하게 혼자 쉴 수 있는 안방이 있고, 손님을 응대할 객방이 있다. 성장을 위한 탓밭이 있고 잡동사니를 담아 둘 다락방도 있다.


그제, 나는 세상으로부터 '똥'을 받았다. '선택'을 할 여지도 주지 않고 '덥썩' 나의 두손에 쥐어 주었다. 그것을 받아들고 한참을 서 있다. 손에 '똥'이 한가득 묻었다. 그것을 가만히 쥐고 있을 수 없다. 그것을 가만 쥐고 있으면 그 냄새가 곧 몸에 베일 것이다.

자, 이제 그 똥을 쥐고 어디에 뿌릴 것인가.


보통 두 손 잔뜩 들린 오물을 어디에 둘지 몰라 망설이면 곧장 냄새나는 두 손은 '안방'으로 향한다. 그 혼자만의 공간, 편안하고 안락한 그곳에서 쥐어진 '똥'을 바라보며 묻는다.

'세상아, 넌 왜 나에게 이걸 주었니?'

그렇게 며칠을 묻다보면 똥은 안방 침대와 이불을 적시고 혼자 있어야 할 공간이 오염으로 줄어든다. 안방 가득 묻은 오물과 손을 바라보며 다시 묻는다.

'세상아, 넌 왜 나에게 이것을 주었니?'

안방에 똥칠 가득하게 만든 '세상을 원망'하며 똥묻은 이불을 덮고 똥묻은 베개를 베고 그 오염물질에 몸을 묻히며 살아간다.


그러나 그럴 수는 없지 않은가. 세상이 나에게 '똥'을 주어준 이유는 '안방'에 가져가라는 의도가 아니다. 고민의 여지도 없이 '텃밭'으로 걸어가 그것을 흩뿌려 버린다. 나의 양분이 될 다양한 채소가 거기서 자라며 오물이 아닌 '보물'을 먹는다.


얼마나 다행인가, 텃밭 채소의 입장에서 한낱 다이아몬드나 금 같은 광물이 뿌려지지 않은 것이 말이다. 그렇게 손을 털어낸다. 세상이 그것이 무언가를 줄 때, 속된말로 '츤데레'처럼 자세한 설명이 없다. 그저 무심코 '오다 주었다'며 '툭' 던져 놓는다. 사용 설명서가 없다. 세상이 우리에게 준 것에는 반드시 긍정적인 이유가 있다. 그 의도를 파악하는 것은 '세상'을 오해하지 않는 가장 좋은 방법이다.


세상이 나에게 줄 법한 '고통의 최대치'이라는 것은 경험적으로 쌓여 있다. 나이가 들면서 그것은 데이터처럼 쌓인다. 안전벨트에 채워진 안전한 주행. 그제, 그 믿음이 완전히 깨졌다. 신나게 달리던 자전거가 도로 위에 상자조각을 밟고 미끌어졌다. 자전거는 영화에서 보듯 나를 멀리 두고 한참을 쓸려갔다. 그 광경이 보였다. 다음 광경은 아스팔트.


아스팔트가 얼굴로 다가온다.

비행기가 착륙할 때 본듯한 광경이 있다. 비행기가 한창 떠 있을 때는 땅이 천천히 움직이다가, 착륙 직전이 되서는 땅이 '미,친, 듯' 달려나간다. 그 관경을 봤다.


자전거에서 미끄어졌고 나의 두 팔은 땅을 짚지 못했다. 달려가는 아스팔트가 왼쪽 얼굴로 '퉁. 퉁. 퉁'. 세번 튕겼다. 얼굴이 농구공처럼 바닥에 튕겨지고 앞으로 쓸려 나간다.

통증은 없다. 뒤를 돌아보니 자전거는 더 밀려나가고 있다. 순간적으로 얼굴, 팔, 다리에 통증이 없다. 화끈 거렸다. 고통스러운 것이 아니라, 저 쓸려나가는 자전거의 상태가 신경 쓰인다. 스마트폰이 바닥에 널부러졌다. 스마트폰을 잽싸게 줍고 가방과 지갑을 줍는다.


빠르게 자전거를 세운다. 자전가가 삐뚤어져 있다. 일단 주변을 살피고 도로에서 나와 자전거를 대강 수리한다. 그리고 타고 앞으로 나아간다.


얼굴에 촉촉함이 느껴진다. 피가 묻어 있다. 집으로 돌아와서 계단을 오른다.


팔, 다리, 무릎, 얼굴, 코, 턱.


입술 위가 부풀어 올랐다. 앞니가 뜨끈뜨끈하다.


그러게 '조심 좀 해라'

'세상'은 '자전거 사고'로 '자동차 사고'를 막아줬다. 이만하니 다행이다. 팔, 다리가 멀쩡하지 않은가. 이번에 사고가 나지 않았더라면 아마 나는 세상이 채워준 안전벨트를 믿으며 과감하고 용감하고 무식하게 '안전'에 대해 생각해 보지 않을 것이다.


받고자 한 적이 없는데, '세상'이 강제로 쥐어준 이 '선물'을 이제 어디에 뿌릴 것인가. 받지 않을 수 있으면 받지 않겠지만, 이미 받았다면 최대한 이로운 곳에 뿌려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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