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이버 블로그에 '저장' 기능으로 메모하던 습관이 있다. 번뜩이면 네이버 블로그 어플을 켜서 급하게 메모하기도 하고 책을 읽다가 좋은 문장을 만나면 역시 네이버 블로그 어플리케이션을 켜서 사진을 찍어둔다.
그러다보니, 네이버 블로그에 '저장된 글'이 엄청나게 많아졌다. 그것에 임시 제목을 정하고 관리를 하는 습관이 지난 3년 간 이어졌다.
그러다 작년과 재작년 사이에 무엇을 잘못 눌렀는지 저장된 모든 글들이 '사라졌다.' 꽤 충격적인 사건이다.
사람이 일상에서 매일 같이 글감을 찾아낸다는 것은 쉽지 않다. 고로 글감 없는 날에는 미리 저장된 글을 골라 이어 포스팅하길 3~4년 정도했다. 마르지 않는 화수분처럼 다양한 주제와 글을 쓸 수 있는 원동력이었다. 앞서 말했지만 잊혀지 어느날부터 모든 글이 삭제됐다.
저축한 모든 돈을 탕진한 사람처럼 '하루 벌어 하루 살이'를 시작했다. 깊게 생각한 글보다는 당장 오늘 써야 할 글을 급하게 쓰는 일이 많아졌다.
당연하지만 사람은 상황마다 하는 생각이 달라진다. 이 말을 다시하자면 상황과 시기가 지나면 어떤 생각은 전혀 떠오르지가 않는다.
그 뒤로 글쓰기가 버거운 느낌을 들었다. 제공 받은 책을 리뷰하는데 걸리던 2~3일이라는 시간도 2주, 3주를 넘어 어떤 경우는 4주까지 가기도 한다.
다만 모든 메모가 사라지고 얻은 것도 있다. 분명 쌓아놓은 곡식이 있기에 배부른 돼지가 되는 게으름의 순간을 없애준다는 것이다.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산다는 느낌은 어떤 면에서는 불행하다고 볼 수도 있지만 그만큼 필사적으로 생존해 내는 경험은 적다.
처음 유학을 떠났을 때, 오픈티켓으로 비행기를 예약했다. 돌아오는 비행기가 있어야 발급되는 비자의 특성 때문에 돌아가는 비행기는 무조건 티켓이 있어야 했다. 이후 오픈 티켓의 만료가 끝난 뒤부터 꽤 어려운 시간을 보냈다.
공부와 일을 병행하면서 모든 걸 포기하고 돌아가고 싶을 때, 강제적으로 돌아갈 곳이 없어지는 '배수의 진'을 치게 되는 상황이 생겼다. 한때는 필요악이고 어떤 경우에는 멋있어 보이기도 했던 '배수진'이 정말 철없고 대책없는 일이라는 사실을 나이를 먹고 알게 된 이상 다시는 의도를 가지고 할 생각은 없다. 다만 당시, 돌아가더라도 '비행기표'는 다시 벌어야 포기할 수 있었다는 경험은 '포기'를 연장 시키는 경험을 했다.
포기하기 위해서는 비행기표값인 200만원의 여유자금을 더 저축해야했고 200만원의 여유자금이 생기면 새로운 기회가 생기거나 다시 큰 돈이 들어갈 일이 생기거나, 마음이 변하기도 했다. 그렇게 해외에서 포기를 위해 포기하지 않던 시기가 10년이 가까워졌다.
그런 기억이 '여유 있는 나라'에서 가장 여유 없는 습관을 길러오게 한 원인인 것 같다. 지금 모든 메모를 잃어버린 상황에서 나의 상황이란 앞서말한 한 발 더 뒤로 물러서면 물에 빠지는 위기를 매일 겪는 바와 같다.
다만 모든 생명은 '생존'을 위해 필사적이다. 그러지 않다면 새가 뭣하러 하늘을 날기 위해 필사적이고, 벌이 뭣하러 집을 짓기 위해 필사적인가.
배가 부르면 필사적일수가 없다.
예전에 Too good to be the best 라는 말을 들은 적 있다.
최고가 되기에는 너무 좋은 상태.
즉, 적당히 좋으면 최고가 되기 위해 노력하지 않는다. 현상 유지가 최선이기 때문이란다. 고로 가끔 결핍이 최선을 만드는 경우도 있다. 그렇게 생각하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