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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인환 Nov 11. 2024

[수필] 희노애락을 경험하는 것은 축복같은 일이다

 주말 위병소 근무는 지옥 같았다. 아침 일찍 시작해서 저녁까지 위병소를 지켰다. 아무도 방문하지 않는 부대 정문에서 가만히 시간을 보냈다. 시간을 보내는 것이 그토록 고통스러운 일이던가.

 다른 병사들은 무엇으로 시간을 채웠는지 모른다. 방탄모를 눌러 쓰고 K2 소총을 들고 말그대로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그저 가만히 하루를 보낸다. 앞은 심심함 그 자체였다. 구경거리는 흔들리는 나무 밖에 없었다. 기껏해봐야 관리되지 않은 '임야지'가 있을 뿐이었다.

 가끔 재밌는 선임을 만나면 '너는 뭐하다가 왔냐?'며 주거나 받았다. 친구와 사업하던 고참, 여친과 동거하던 후임, 연예계에서 활동했다던 이까지.

 그들의 인생은 다양했다.

 그 이야기를 듣고나면 어느새 3시간, 4시간이 지나갔다. 여행 간 일, 이별 이야기, 사랑 이야기, 사기 당한 이야기, 불행했던 가정사 등. 갓 스물이 넘은 청년들의 이야기는 생각보다 다양했다. 그들의 이야기는 너무 흥미로웠지만 그들의 이야기가 끝나면 나는 말 없이 '임야'만 바라봤다. 떠올릴 추억이 많지 않음을 깨달았다.

 학창시절은 기껏해봐야 '학교', '집'이었다. 가정사는 아쉽게(?)도 화목한 가정이었으며 학교에서 왕따를 당하거나 왕따를 시키지도 않았다. 큰 이탈을 하지도 않은 무난한 삶이었다. 일상의 가장 큰 '이탈'이라면 '군입대'를 했다는 것 쯤일까.

  함께 '근무' 서던 선임들은 '그 새끼, 참 더럽게 재미없게 살았네...' 했다.

 

이후부터 흔들리는 나무를 보고, 그림자를 봤다. 내리 6시간 이상을 봤다. 그러던 것이 나중이 되면 아는 노래를 부른다. 

'노래 한곡이 3분이면 스무 곡이면 한 시간'

 알고 있는 모든 노래를 마음속으로 다 불러도 1시간을 채우지 못함을 깨닫고 머릿속에 무얼 채우고 살았는지 의문이 들었다. 떠올릴 추억도 크지 않다. 아는 바도 많이 없다. 그 후회감에 전역 후를 다짐하게 됐다.

 100일 휴가를 받고 할머니를 뵈러 갔다. 할머니는 무릎이 좋지 않으셨다. 하루종일 방에만 계셨다. TV는 채널 9번을 항상 고정하고 보셨다. 일병 휴가를 받고 할머니를 뵀을 때도 할머니는 TV채널 9번에 시선을 고정하셨다. 가만히 하루를 보내셨다. 상병 휴가 때에도, 전역을 앞둔 말년 휴가 때에도 그러셨다.

 부대 복귀를 하고 내무반 천장을 바라봤다. '거참 시간 더럽게 안가네...'하고 푸념을 하는데 문뜩 할머니가 떠올랐다. 아마  지금도도 9번을 고정하시고 계실 것만 같았다.

 몇 시간의 근무, 군생활 2년 조차 견디기 무서울 만큼 긴 시간이었다. 그때 할머니는 무슨 생각을 하고 계셨을까. 할머니가 돌아가시던 날, 내성적인 손자는 할머니의 손을 꼭 잡고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소설 향수의 주인공이 '자신의 몸'에는 아무 냄새가 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처럼, 나는 존재 없는 존재처럼 느껴졌다.

 휴가차 할머니댁에 갔을 때, 함께 TV를 말없이 보며 시간 때우고 왔다는 죄책감이 들었다. 선임들에게도, 할머니께도 향기 없는 사람인듯 했다. 그만큼 재미없는 인생을 살았다는 '자각'이 그때서야 들었다.

 병상에 누워 보낼 노후를 생각하면 쓰지 못해 죽을 '통장 잔고'보다 떠올릴 추억이 많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공포', '스릴러', '코미디'. 뭐든 추억이라면 쌓고보자.

 그것이 내 20대의 '철학'이다.

'문선욱'작가의 '저스트 인생'을 보니, 지나치게 '현실'에 몰두하던 30대 후반의 스스로가 보였다. 또다시 '일', '집', '일', '집'하며 재미없는 시간을 채우고 있는 건 아닌지 돌이켜 보게 됐다.

 20대의 나의 선택은 그런식이었다. '내가 선택하지 않을 것을 선택해보자.' 나는 나를 너무 잘안다. 스무 살의 나는 '학교와 집'의 반복이었다. 나는 루틴을 지키며 재미없는 행동을 반복하는 사람이다. 그러니 특별한 일은 좀처럼 일어나지 않았다. 그렇게 되기 어렵다는 평범한 사람이 나는 너무 쉽게 되는 사람이었다.

 그 뒤로 내가 하지 않을 것을 선택하는 습관이 생겼다. 20대에 JYP오디션을 본 적이 있다. 노래와 춤을 추고 인기상을 받았다. 과묵하고 내성적인 내가 하지 않을 선택이지 않은가. 난데없이 가방하나 들처매고 유학을 떠나고 구글에 노출된 세계 바이어들에게 메일을 보내 컨테이너 단위의 상품을 수출하기도 했다.

 20대에 나를 움직이던 생각은 '언제 해보겠어?' 였다. '언제 해보겠어?'는 꼭 좋은 모습으로 결과를 만들진 않았다. 고통스러운 방식으로 나에게 돌아오는 경우가 있었다. 서른 넘어서 삶이란 '즐기는 것'에서 '생존해 내는 것'으로 바뀌었다. 닥친 문제를 해결하기 급급하다보니 뭘하고 있는줄 모르게 시간이 흘렀다.

 김영하 작가가 중국으로 글을 쓰러 갔을 때, 비자 문제로 되돌아오는 일이 있었다. 그는 최악의 상황을 맞이하며 '이 또한 소재가 되겠네' 했단다. 번뜩이는 말이다. 가만히 보면 모든 것은 소재다. 문학이든, 영화든, 드라마든 일상을 빼다박은 지지부진한 이야기에는 누구도 관심을 두지 않는다. '공포', '스릴러'와 같은 '극적인 상황'을 모두는 선호한다. 누군가는 돈주고도 구경하는 그 일을 직접 체험 해 볼 수 있다면 그 또한 축복이지 않을까.

 잊혀졌던 나의 철학이 스믈스믈 살아난다. 삶은 '살아내는 것'이 아니라 '살아가는 것'이다. 진부한 이야기 같지만 듣는 것보다는 보는 것이 재밌고, 보는 것 보다는 해보는 것이 재밌다. 그런 의미에서 희노애락을 경험하는 것은 축복같은 일이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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