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기독교 신자가 아니다. 오히려 무신론자에 가깝다. 나는 나무에 달린 사과가 땅으로 떨어지는 것을 보며, '신의 뜻'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사과가 중력에 이끌려 떨어지고 있다고 생각할 뿐이다. 내가 '조던 B. 피터스'의 '12가지 인생의 법칙'이라는 책을 읽었 때가 생각난다. 너무 큰 기대를 했을까? 나는 정말 큰 실망을 했다.
나와 맞지 않은 책을 발견한 것도 커다란 배움이라고 생각한다. 그 책은 지금도 베스트셀러로 많은 사람들이 찾는 책 중 하나지만, 나에게는 맞지 않았다.
내가 그 책을 좋아하지 않은 이유 중 하나는, 편협한 종교적 가치관 때문이었다. 성경이나 기독교적 배경지식이 없다면, 도저히 이해하기 쉽지 않은 책이라고 생각했다. 예전 '진중권 교수'가 기독교 방송에서 기독교에 대해 비판했던 내용이 떠오른다. 기독교인들은 스스로 '사회 방언'을 만들어 그들끼리의 소통 언어를 가진다고 했다.
기도교가 가진 배타성과 내부 연대성이라는 두 특징 때문에, 기독교는 빠르게 역사에서 승자가 되었지만, 고립되어 생겨진 '사회 방언'이 존재한다고 했다. 실제로 나 또한 그 말에 공감했다. 나는 기독교에 대해 좋은 감정도, 나쁜 감정도 없다. 다만, 나의 와이프는 독실한 기독교 집 안에서 모태신앙 자이다. 하지만, 나는 그 말에 일부 공감한다.
내가 유학할 때, 절망적인 순간과, 어려운 순간이 매 순간 찾아왔던 적이 있다. 어딘가에 의지하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했을 때, 나는 교회와 성당을 다니며, 나의 손을 잡아줄 종교를 갈구했던 기억도 있다. 하지만, 그 당시 내가 깨달았던 생각이 있다. 교회에 가면, 정말 좋은 사람들이 선한 눈빛으로 나를 맞이해주고 진심으로 나를 살펴주는 듯했다. 하지만, 그들이 하는 말은 내가 공부하던 영어보다 어려웠다.
'성령'이라던지, '여호와'라던지, 누구도 쉽게 설명해주지 않은 여러 언어가 쏟아지는 예배시간에 나는 혼자라는 생각이 들었다. 진리가 들어있다는 '성경' 말씀도, 도무지 무슨 말인지 알 수 없을 정도로 어려웠다. 하지만 나의 가장 치한 친구는 모태 신앙 자이고, 나의 와이프도 그러하다. 때문에, 나는 꽤나 많은 예배를 함께 가거나, 선교센터를 방문하거나 했다. 갈 때마다 기독교인들끼리의 끈끈함과 선함 그리고, 종교에 대한 신념이 참 부러웠던 기억이 있다.
본 책은, 기독교의 언어를 거의 사용하지 않았다. 아주 냉철하게 역사적 관점에서 어떻게 기독교가 성장해갔는지를 객관적으로 서사한다. 예민할 수 있는 종교적 문제를 종교적이지 않게, 비기독교인과 기독교인이 함께 공감할 수 있도록 설명한다. 기독교의 우월성에 대한 찬양이나, 하나님에 대한 설명이나, 예수의 철학과 같은 종교적인 이야기 전혀 없이, 기독교가 역사적으로 성장해 온 배경을 설명한다.
나는 기독교에 대해서 잘 모른다. 하지만, 나는 우리가 성인이라고 부르는 붓다와 예수와 같은 인물들이 많은 제자를 가르쳤으며, 그들이 가르침이 종교인들이 말하는 '진리'라고 부르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들이 했던 가르침은, 소크라테스나 괴테의 철학과 마찬가지로 우리 민생들의 고통에서 벗어나게 해주는 보편적 철학이라고 생각한다.
그 좋은 철학이 만인에게 퍼지길 바랬던 이들이 심어 두어야 했던, 종교적 시스템에 기독교와 불교 등은 아이러니하게도 많은 희생 감내했다. 안타까운 일이다.
책의 어느 부분처럼 우리가 기독교냐, 비기독교냐를 떠나, 우리 모두는 기독교의 영향력에서 벗어날 수 없는 삶을 살고 있는 현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