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인의 싸움은 대체로 '서면화' 되어 있다. 법정은 '말다툼'이 아니라, '서류싸움'이다. 다수의 천재들도 '말다툼'이 아닌 '논문'으로 서로를 반박한다.
어느날 문뜩 늦게 집에 돌아가 보니 아이들이 울고 있다. 무슨 일이냐 물었더니 둘이 동시에 말한다. 울분에 차서 한참을 말하면 옆에서 '거짓말이야'하며 가로 막는다. 억울한 아이들이 감정적으로 싸우고 있었다.
연필과 종이를 주었다.
'아빠는 글로만 판단할꺼야. 하고 싶은 말은 글로 적어.
꺼이꺼이 울던 아이들은 종이와 펜을 잡더니 영감이 떠오른 작가처럼 써 내려갔다. 한참을 쓴다.
종이를 받아 들고 말했다.
'판결'은 아빠가 씻고 나와서 할테니까, 일단 자,'
서로에게 손가락을 가르키며 일러 바치는 과정은 우애를 상하게 한다. 고로 조용히 글로 써서 제출하도록 했다. 읽어보니 '상대가 거짓말을 한다'라고 하는 부분은 대체로 오해인 경우가 많았다.
우리 어른들 싸움도 그렇지 않은가.
법리적 판단은 언제나 '선'과 '악'을 구별하는데 있지 않다. 말그대로 '해당 법에 대한 해석'의 영역에 있다.
우리 법을 보면 때로는 억울한 일도 있을 수 있고 때로는 통쾌한 일도 있을 수 있지만 법이 온전히 '선'만을 골라내는 것은 아니다. '법'은 '선'을 구별할 능력이 없다. '법'이 할 수 있는 것은 '기준'에 얼마나 부합하는가,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이를 악용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다만 진흙탕처럼 인과관계가 완전히 얽혀 있는 경우에는 선악을 구분해내는 것이 거의 무의미해지는 경우도 있다.
아이들의 다툼도 마찬가지다. 고로 '판결'에는 '선악'에 대한 구분이 아니라 '법리적 해석'에 따른 '오류 교정'를 바탕으로 해야 한다. 잘못된 부분에 있어서만 교정을 할 뿐, 사람에 대한 '선악'과 '잘잘못'을 별하는 일은 옳지 못하다.
'네가 잘못했네!'가 아니라 '이런 부분은 고쳐야겠네'하는 행동에 대한 오류만 선별적으로 교정해야 한다. 아무튼 '글'로 이뤄지는 이런 절차는 꽤 지연된 결과를 가져온다. 지금 당장 제출한 문서가 '말'만큼이나 빠르게 전달되는 것은 아니다. 이 과정에서 '시간'이 소요되고 대부분의 아이들 싸움은 '시간'이 지나면 저절로 해소된다.
어른들의 싸움도 대체로 '시간'이 걸린다. 모든 문제가 '서류'로 진행된다. 그러다보니 거기에는 '감정'이 배제되기 일수다.
홧김에 저지른 일들은 법정에 서고, 몇일이 지나고 서류화 된 절차를 따르다보면 괜히 귀찮기도하고 또 생각해보면 별일 아니었다는 생각이 든다.
민사 소송에서 당사자가 자신의 입장을 정리해 법원에 제출하는 서류를 '소장'과 '답변서'라고 부른다. 이 절차는 몇번의 보충과 반박을 주고 받는 준비서면을 가진다. 사건에 대한 근거와 사실관계를 법원이 파악하면 빠르면 수개월에서 1년 이상이 걸리기도 한다.
억울하다고 하는 원고에게서 소장을 받았고 피고에게서 답변서를 받았다. 현재 서류는 아빠 법원으로 제출됐다. 처리 기간은 대략 45년이다. 지금은 일단 너무 지치고 나중에 시간될 때 서류 검토 예정이다.
원래 사회의 모든 결과는 '지연된 형태'로 나온다. 그것을 아는 것이 중요하다.
아이들의 싸움은 대체로 '감정'에서 시작해서 '감정'으로 끝난다. 고로 실제 '시시비비'를 따져서 한 아이를 나무라는 것은 옳지 못하다. 아이들은 억울함을 글로 써서 일차 해소가 된다. 글을 쓰며 차분해지며 상황이 진정된다. 글로 싸우면 아빠도 아이도 울거나 소리지를 일이 사라진다.
종이로 받은 문제를 비교하니 실제 상황이 그려지는 듯 했다. 잘못은 쌍방에 있었다. 아이에게 일단 잘못에 대한 부분을 서류로 정리해서 줬다. 아이는 이 과정에서 글쓰기 능력이 향상된다. 일기도 이런 일기가 따로 없다. 사람은 원래 억울하면 할말이 많아진다.
효과적인 아이 중재 방법을 찾았고 꽤 유용하게 이용하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