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서 보건데,
'독서'가 '원인'이 아니라 '현상'이라고 했다.
'성공한 사람들의 습관'으로 여겨지는 '독서'가 '성공'의 원인이 아니라 '성공'할 사람들이 보이는 공통적 '현상'일 뿐이라는 것이다.
쉽게 말해서 열이 나기 때문에 감기에 걸린 것이 아니라 감기에 걸려서 열이 난 것처럼 인과관계가 뒤집어진 것이란다.
일리가 있다.
그렇다면 '독서'라는 현상을 불러 일으키는 '원인'은 무엇일까.
'원인'에 해당하는 것은 '능동적 탐구욕'이다. '왜 그럴까'하는 호기심은 '탐구욕'을 만든다. 탐구욕은 '질문'으로 시작한다. 그리고 답을 구하러 다닌다. 묻거나 생각해보기도 하고 관찰하거나 실험한다. 이는 '능동성'을 갖게 한다.
즉, '왜 그러지'하고 스스로 의문을 가진 사람들은 공통적으로 '탐구욕'을 갖게 된다. 탐구욕은 능동성을 갖게 한다. 능동성은 '영상' 알려주는 수동적 정보를 답답하게 여기고 '인터넷'이 알려주는 단편적 지식을 부족하다고 여긴다.
이 사람들이 최종적으로 정착하는 곳 중 하나가 '독서'다.
표면적으로 지식을 알아가기 위해서는 영상매체나 인터넷도 있다. 다만 이 둘은 이들의 탐구욕을 해결해 주지 못한다. 이들의 탐구욕이 깊어지면 이들의 결국 찾는 곳이 '책'이라는 논리다.
고로 '공부'를 잘하는 사람들의 특징은 '책'을 많이 읽는다가 아니라 '탐구욕'이 많다는 것이다. 혹은 능동성을 가졌다는 것이다.
'성공'한 사람들의 특징도 '책'을 많이 읽는다가 아니라 '탐구욕'이 많아서 그렇다는 것이다. 혹은 능동성을 가졌다는 것이다.
실제로 인류 역사에서 현대적 개념의 '책'이 만들어진데는 얼마되지 않는다. 고로 책이 모든 것의 진리라고 볼 수는 없다. 이 매체 이전에도 특별한 성취를 달성한 이들이 있고 이들의 공통점은 아마 '능동성'일 것이다.
이런 결론은 꽤 설득력이 높은데 '독서'를 하다보면 '탐구욕'이 생기고 그렇게 생긴 탐구욕은 '독서'가 아닌 방향으로 해결하기 쉽지 않다.
'유대인'에 관한 책을 쓸 때, 영어 원서를 포함하여 책만 십 수권을 참고했다. 인터넷이 '정보의 바다'라고 하지만 내가 책에서 찾은 정보 중 거의 대다수가 인터넷에 존재조차 하지 않았다. 어떤 정보는 영어로만 존재한 경우도 있다. 아마 해당 도서를 출간할 때 어떤 내용은 거의 최초로 한국어로 쓰게 됐다. 결국 인터넷에 있는 정보는 책에 있는 정보의 1%도 되지 않았다.
책을 읽다가 흥미로운 부분이 있으면 인터넷으로 교차검증해 볼 때가 있다. 이때 아주 놀라울 확률로 관련 정보가 인터넷에 없다. 누군가가 그 책을 읽고 해당 문구를 '리뷰'로 올리는 경우가 아니라면 비슷한 문구는 거의 찾기 힘들다.
어떤 일이 발생할 때, 현상과 원인은 구분하기 힘들다. 인간은 직립보행을 하면서 두 손이 자유로워졌다고 알려졌다. 두 손이 자유로워지자 도구를 만들 수 있었다. 반면 인간은 도구를 사용하고자 두 발을 이용해 섰다고도 볼 수 있다. 두발을 이용하다보니 직립보행이 가능해졌다고도 볼 수 있다. 이를 순환적 인과관계라고 한다. 특정 현상이 단순 원인이 아니라 인과관계가 서로 영향을 주면서 원인이 결과가 되고 결과가 원인이 되먀 서로 영향을 주고 받는 구조다. 이런 구조는 반복적으로 이루어진다.
현상은 원인이되고, 원인은 다시 현상이 된다. 이런 순환적 작용이 독서에서도 발생한다.
고로 책 한권 읽지 않았지만 통찰력이 있는 사람이 있고, 무수하게 많은 책을 읽음에도 무식하기 짝이 없는 사람도 있다. 결론적으로 현상과 원인이 순환적으로 작동하기 위에 최초로 필요한 발화점은 '능동적 탐구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