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한 사유가 있다기보다 어떤 날은 '선우정아'의 '도망가자'를 들어 버렸다거나, 백아의 '첫사랑'을 들어 버렸을 때, 너무 쉽게 마음이 동요하는 날이 있다. 기왕 그런 마음의 주파수를 내뿜게 된 김에 아예 귀에 에어팟을 꽂고 한곡 무한 재상으로 같은 곡을 재생한다.
본래 '루틴'에 맞지 않게 집으로 바로 들어가지 않았다. 걸어서 몇 분을 더 걸어 동네 서점으로 들어간다. 무언가 찾는 책도 없으면서 한참을 서성인다.
'오늘 몇시까지 하시나요?' 물었더니, 11시라고 답하신다.
시계를 보니 10시다.
어떤 강박이 있어서 남의 사업장에 들어가면 물건을 훑거나 헤집는 행위, 오랫동안 머무르면서 구경하는 행위를 하지 못한다. 빨리 구매하고 나가주는 게 어쩐지 '예의바른 손님'일까 생각한다. 이런 강박에서 벗어나게 해주는 거의 유일한 장소는 '서점'이다.
서점은 그저 책을 들었다 놓고, 제목을 살피고 표지의 디자인을 평가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독서'와 '사색'의 시간을 주는 곳이다.
'이동진 평론가'가 '책을 고르는 행위도 독서다'라고 말했던 것이 생각난다. 실제 그렇다. 하도 책을 많이 보다보니, 사실 제목에 속아 넘어가는 일은 이제 많지 않다. 제목은 '특별한 경우'인 '역사, 인문'가 아니면 '내용'과 크게 상관 없다. 특히 '에세이'나 '소설', '자기계발서'가 그렇다.
고로 하나하나 직접 꺼내어 내용을 살펴보는 게 좋다.
아무개는 목차를 먼저 살핀다는데 나는 그냥 아무데나 펴고 휘리릭 넘긴다. 작가의 문체를 살피는 것이다. 책의 구성이라던지, 종이나 넘어갈 때 촉감이나 두께, 냄새, 이런 것들을 골고루 느껴본다.
'지금 내가 얼만큼 시간을 뺄 수 있지?'
이런 고민을 하고 어떤 책은 무척 마음에 들지만 내려놓고, 어떤 책은 덜 마음에 들지만 구매하게 된다.
서점에 가면 그저 스치는 공간은 '베스트셀러'가 있는 곳이다. '베스트셀러'는 단순히 많이 팔린 책이지 꼭 나에게 맞는 책을 의미하지 않는다. 우스께소리로 대한민국에서 가장 많이 팔린 책은 운전면허시험지와 수학의 정석이라고 한다는데, 그렇다고 내가 그것을 구매하고 나올수는 없지 않은가.
그냥..., '요즘 사람들은 이런 걸 읽는구나...'하고 넘어간다.
가장 오래 머무는 곳은 '인문학, 철학, 역사, 종교, 과학, 정치, 사회'
뭐 이런 곳 같다. 그곳에 가면 꽤 표면적으로 알고 있던 정보에 현미경을 갖다댄 것 같은 제목들이 보인다.
가령 '신발의 역사'에 관한 책이라던지, '수면시간이 인생에 미치는 영향'에 관한 글이라던지, 곤충의 이야기, 동물의 이야기, 장애인의 이야기 등 평소 깊게 생각해 보지 않았던 종류의 책들이 최소한 500쪽 가까이 되는 분량으로 놓여져 있다.
'저 주제로 저렇게 수다를 떨 수 있구나', 그런 경외심을 갖고 '다음에 읽어 보리다' 생각한다.
세계 정세에 관한 코너를 가면 '중국이 말할 수 밖에 없는 이유'와 '중국의 앞으로 미래가 밝은 이유'가 서로 등을 맞대고 치열하게 싸우고 있다. 대충 훑어보면 그들의 말하는 논리 구조가 탄탄하여 이걸 반박할 수 있을까, 싶은 이야기들이 팽팽하다. 칼과 방패, 그 모순을 보며.. '다음에 꼭! 읽어보리다'하고 다시 내려 놓는다.
찾고 있는 무언가가 있는 것처럼 서점이 닫기 전까지 같은 곳을 몇 번이나 오다니며 살폈다. 나는 무엇을 찾고 있는 것일까. 최근 가장 많이 보는 곳은 '성경', '불경', '금강경' 등이 있는 종교 코너와 '니체', '칸트', '공자', '맹자'하는 철학 코너다.
내가 거기 서 있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고리타분'하고 '재미없는 사람인가'를 설명하는 듯하여 가볍게 고개를 끄덕거린다.
사람들은 왜 이런 생각을 하고 살았을까. 사람들은 왜 이런 종교를 믿는 것일까. 뭐.. 그런 호기심으로 책을 집었다가 두었다가... 그런다.
최근들어 아이가 방학을 해서 그런지, 책 읽을 시간이 좀처럼 나질 않는다. 글을 조금 천천히 여유있게 읽고 싶은데... 읽고 싶은 책은 많아서 시간이 부족한 이 아이러니를 벗어나고자 잠을 줄였더니, 글을 읽어도 글자가 머리에 들어오지 않는다. 그래서 잔뜩 책쇼핑을 하면서 제목이라도 실컷 보고 왔다.
오랫만에 서점에서 시간을 보내고 나름의 힐링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