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바벨'을 좋아한다. 네이버에서 '바벨'의 평점을 살폈더니 6점대로 나온다.
'네이버 평점'을 신뢰해오다 와르르 무너지는 순간이다. 개인적으로 '바벨'을 평가하자면 9점 이상은 된다고 본다. 워낙 좋아하는 편이라 유학시절에는 소장해서 몇 번이나 돌려보곤 했다.
영화는 보고난 뒤에 '아, 재밌네'하는 영화도 있고, 한참 동안 생각나는 영화가 있다. '바벨'이 후다. '바벨'은 영화보는 내내 생각할 시간을 충분히 준다. 보고 난 뒤에도 불쑥 장면이 떠오른다.
'잔잔'하고 '고요'하지만 극적인 4개의 요소가 섞이며 하나의 이야기를 만들어간다. 영화 '바벨'의 이름이 '바벨'이라는 것은 '소통'이 주제이기 때문이라고 들었다. 제목을 듣고나서 다시금 생각할 거리가 많아진다.
바벨에 매력을 느낀 다른 한 가지가 또 있다. 개인적으로 '선진국'이라 불려지는 문명보다 '후진국'으로 불려지는 문명을 더 좋아한다. 이유는 잘 모르겠다. 에펠탑을 보고도 별 감흥이 오지 않지만 '아프리카'의 어느 도시 풍경을 보면 가슴이 '두근'거린다.
바벨은 일본 모로코, 멕시코, 미국에서 일어난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다. '모로코'라면 유럽의 '모나코'를 떠올리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모로코는 완전히 다른 국가다. 모로코는 알제리 옆에 있는 아프리카 국가다. 국민 99%가 이슬람교를 믿고 그중 수니파를 믿는다. 이곳의 1인당 gdp는 대략 3700달러로 한국의 10분의 1 수준이다. 영화 첫 장면은 이곳 모로코에서 시작한다.
다른 이들은 모르겠지만 내가 첫 장면에서 매력을 느낀 이유다. 이곳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는 '영화'가 아니라 '다큐멘터리'인가 하는 착각이 들 정도다. 그리고 일본이라는 '선진국'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모로코에서는 미국인들의 이야기가 펼쳐지고 이들은 '멕시코'의 이야기와 엮인다. 얼핏 완전히 다른 영화 몇편이 완전히 따로 노는 듯 하지만 영화는 결국 '총'하나로 벌어지는 이야기다.
이런 식의 흐름에 동경을 갖는다. '드라마 허준'을 보면 전혀 연결관계가 없던 여러 사람들이 인연을 맺으며 다양한 이야기를 만들어낸다. 그들은 점차 가족처럼 가까워진다. 허준의 마지막을 보면 철전지원수 같은 '유도지'와 '허준'의 묘한 인연이 매력적이다.
작은 연결고리가 이어져 서로를 잇고 있다는 느낌.
어려서부터 그런 감정을 좋아했다. 일상 생활에서 그런 감정은 쉽게 느낄 수 있다. 신호대기를 하던 중 살짝 브레이크를 놓으면 몇 바퀴 앞으로 나아간다. 그때 뒤에 있는 차가 간격을 좁히며 따라오는 경우가 있다.
별거 아닌 순간이지만 그 순간 알지 못하는 뭉클함을 느낀다. 무언가 존재가 연결되어 있다는 '4차원적'인 감정.
바벨은 그런 의미에서 나의 욕구를 완전 충족하는 영화였다. 연결될리 없을 것 같은 사람과 관계, 국가가 모두 연결되어 있다. 언어는 다르고 상황도 다르고 모든 것은 다르지만 결국 우리는 모두 연결되어 있다. 그렇지 않는가. 영화를 보면 선진국과 도상국의 차이가 명확하게 느껴진다. 누군가는 우월해보이고 누군가는 열등해 보이지만 사실 그런 것 따위는 없다. 바벨을 짓던 당시 우리 모두는 평등했다. 인류는 하나의 언어를 사용하며 평등한 상태에서 협력하고 살고 있었다.
사람들이 힘을 합쳐 하늘에 도달하려 들다가 우리는 평등에서 분열된 사회로 나눠진다. 다양한 문화와 민족이 형성된다. 우리가 그렇게 나눠진 것은 단순한 처벌이 아니라 어쩌면 필연의 과정이었을지 모른다. 우리는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고 대로는 적대적이며, 다름을 차별하지만, 결국은 같은 본질을 공유하는 존재다. 바벨탑이 무너진 이후로 우리는 끊임없이 다시 연결되려 하고, 서로의 언어를 배우고, 문화를 나누며 공통된 감정을 공유하려 애써 왔다.
'바벨'이 보여주는 것은 그 과정의 연장선이다. 언어가 달라도, 삶의 방식은 달라도, 환경이 다르고 배경이 달라도, 우리가 느끼는 슬픔과 기쁨, 외로움과 사랑은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 총 한자루가 만들어낸 비극이지만, 그 안에서 우리는 또다른 관계를 맺고 서로의 삶에 영향을 주고 받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