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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인환 Mar 20. 2021

[역사] 헤이세이 일본의 잃어버린 30년

 일본 경제가 이미 꺾여 있던 2000년대에도 일본의 경제 위엄은 실로 엄청났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일제에 대한 환상이 있었고 일본 패션이나 제품은 그때까지도 많은 이들의 동경경의 대상이었다. 나의 첫 핸드폰은 '산요'에서 나온 폴더 폰이었다. 당시 75만 원이라는 거금으로 구매했던 기억이 있다. 그 핸드폰은 당시 주변인들 사이에서 관심의 대상이 곤 했다. '일제' 하면 일단 고품질로 인정하던 시기를 지나 우리는 지금 일본과 무역 전쟁을 할 만큼 격세지감을 느끼고 있다. 

 내가 유학을 하던 시기에도 한국은 일본의 아류 국가 정도였다. 마치 우리가 캐내다 하면 떠올리는 이미지가 '미국'과 비슷하지만 작다라는 이미지인 것처럼 한국은 일본과 비슷하지만 조금 저렴하고 규모가 작은 나라일 뿐이었다. 

 88년 세계 10대 기업에서 IBM과 엑슨을 제외하고는 모두가 일본 기업이었다. 그뿐만 아니라 전 세계 50대 기업 중에서 34개가 일본 기업이었을 정도다. 지금 니케이 지수가 20,000포인트를 겨우 넘었던 것에 비해, 이미 89년도 니케이 지수는 거의 4만 불에 육박할 정도였다. 정기예금 금리가 8%에 소비지출로 미국을 넘어서고 일본 국영기업인 NTT 하나만으로 독일의 모든 회사의 주식가치를 넘어서는 엄청난 시기를 거쳤던 일본은 이제 힘 빠진 호랑이 같은 느낌이 되어버렸다. 이 책은 잃어버린 30년을 맞이한 일본에 대한 뼈아픈 참회의 책이다. 

 책은 경제로 시작한다. 나는 일본 경제를 좋아한다. '일본의 경제' 그 자체를 좋아한다기보다, 일본 경제가 담고 있는 스토리를 좋아한다. 신라가 삼국을 통일하거나 유럽의 변방인 포르투갈이 세계 패권을 쥐거나 떠돌이 유목민이었던 몽고가 세계를 지배하듯, 우리는 반전을 좋아한다. 이것이 역사가 재밌는 이유이다. 일본의 반전은 아래에서 위로의 반전도 있지만, 그 반대의 반전도 있다. 현재 진행형인 우리나라를 비롯해 근현대사 100년 가장 다이내믹한 흥망성쇠를 기록하고 있는 국가가 바로 일본이다.

 2차 세계대전에서 기세를 세우던 아시아 패권국에서 1950년대 영국 GDP 50% 수준까지 떨어졌던 일본 경제는 다시 반등 하시 시작하여 결국 40만에 영국의 3배 가까운 GDP를 기록할 정도로 급성장한다. 이제는 우리나라도 일본과 경제 전쟁에서 '해볼 만하다'라는 의견들이 들려온다. 그 이유는 우리나라의 성장도 있겠지만 가장 크게는 일본의 빠른 속도의 몰락이 이유이다.

 일본의 버블경제와 잃어버린 30년을 이야기할 때 대부분은 '플라자 합의'를 이야기한다. 마치 미국이 일본의 경제만 망치기 위해 한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이는 철저히 버블경제의 영광에서 벗어나지 못한 일본인의 그리움일 뿐이다.  사실 플라자 합의는 미국의 대규모 재정적자에 대한 조치가 명분이었다. 달러화의 가치 상승이 세계 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크기에, 마르크화도 엔화와 마찬가지로 7% 이상 가치 절상되며 경제에 타격이 가해졌다. 하지만 현재 독일과 일본은 전혀 상황이 다르다. 힘든 구조조정을 통해 노동의 건전성을 유지하였던 독일과는 다르게 일본은 기존 자신들에게 영광을 안겨 준 여러 가지 방식을 고수했다. 화폐개혁이나, 구조조정 혹은 정권교체도 없이 일본은 가진 것에 대해서만 유지하기 위한 보수적인 정책을 폈다. 이는 일본을 최강국의 자리에서 유지하게 했지만, 성장 없이 머물거나 조금씩 침체하게 만들기도 했다.

 유럽은 유럽 통합이라는 커다란 이벤트를 통해 위기를 극복했다는 행운 적인 요소도 있다. 하지만 그 요인은 결코 그저 행운이라고 치부할 수는 없다. 독일은 패전 후 각 국가들에 사죄와 반성의 뜻을 빠르게 내비쳤고 그로 인해 타 국가와의 교역 양이 늘어나면서 생필품 가격이 낮아지고 물가 안정과 주택 가격 안정이 일어났다. 독일의 실질 부동산 가격은 1975~2007년 사이에 지속적으로 하락하였다는 점에서 일본과는 전혀 다르다. 이는 역사를 바라보는 시선이 정치뿐만 아니라 외교와 경제에도 지대한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점을 시사하기도 한다.

 부동산 가격뿐만 아니다. 그와 함께 농산물 가격도 낮게 유지되었다. 이 또한 남유럽 등지에서 저렴한 가격의 농산물 유입이 가능했기 때문이다. 또한  동유럽에서 저렴한 노동자들도 유입되었다. 실질적으로 2차 세계대전 전범국이던 독일이 주변 국가들에게 커다란 도움을 받았단 것이다. 과거에 대한 사죄나 반성의 자세가 외교의 힘으로 그리고 그것이 경제의 힘으로 이어졌다. 일본의 주변국은 중국과 한국이다. 사실상 한국을 제외한다 하더라도 중국이라는 거대한 시장과 노동력은 일본의 물가와 임금을 안정시킬 수 있는 좋은 곳이다. 하지만 일본은 독일과 반대로 주변국 간의 꾸준한 마찰이 있어 왔다.

 '헤이세이'와 '쇼와'는 이는 일본의 연호이다. 이는 아키히토 일왕 시대의 연호인데, 우연찮게도 일본이 장기 불황을 겪고 있는 1989년부터다. 책은 이 시대를 일본의 잃어버린 30년이라고 부른다. 첫 번째 장에서 경제를 설명하고 두 번째 장에서 정치를 설명한다. 경제는 참으로 재밌게 읽었다. 하지만 정치 부분을 읽을 때는 조금 어렵긴 했다. 아무렴 일본에 대해 정치는 관심이 전혀 없었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책을 중반부까지 읽으면서 느꼈던 건, 우리가 생각하는 잃어버린 30년에 관한 관념이다. 우리가 잃어버린 30년을 이야기할 때 보통, 경제에 관하여만 떠올린다. 하지만 일본은 정치, 경제, 문화, 생활 전반적으로 후퇴해가고 재난을 겪는다. 

 그 무렵 동일본 지진과 후쿠시마 원전 사고를 포함하여, 일본 사회 전반에 암울한 기운을 만드는 여러 가지 이벤트들이 연달아 발생한다. 일본은 경제뿐만 아니라 국민 전체가 잃어버린 30년이라는 가혹한 시간을 맞이한다. 이런 가혹한 시간에 대해 일본인들은 '옴 진리교'를 포함하여 이색적인 돌파구를 찾았는다. 그 괴이한 사회적 활동들이 일본 사회에 일어나며 일본이 얼마나 암울하게 변했는지를 대변해 준다. 이 책은 일본 사회가 갖고 있던 두려움을 전반적으로 훑어준다. 얼핏 미야자키 사건과 같은 극단적인 사건들이 많아지며, 우리는 극단적인 사건과 일본을 동일시하기도 한다. 

  책이 단순 경제 서적이라고 생각했던 나의 판단을 자세와 함께 고쳐 앉고 저자가 말하려는 일본의 잃어버린 30년  간의 사회 상실감에 대해 접했다. 격차사회나 소자화 사회 등 일본의 몰락은 여러 분야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난다. 더욱 무서운 것은 그 현실이 과거가 아닌 현재 진형이라는 것이다. 지금 일본은 해결되지 않은 원전 문제와 코로나라는 국제적인 이슈에 대한 부담도 껴앉고 있다. 

 얼핏 우리나라가 일본보다 부유해지기를 바라는 마음은 대한민국 국민에게 누구나 있는 듯하다. 하지만 막상 일본의 참혹한 내면을 바라보니 그런 일본에게도 동정심이 생기기도 한다. 어쩌면 썩어가는 내부를 숨기기 위한 자격지심이 외교로 나오는 것이 아닌가 싶다. 일본은 어쨌거나 지리적으로, 경제적으로, 문화적으로 우리에게 떼려야 뗄 수 없는 동반자이다. 

 주변 국가가 모두 망하고 나서는 대한민국이 혼자 그 대륙에서 스스로의 역할을 다하기는 쉽지 않다. 마치 아프리카 대륙 한가운데 일류국이 생성되지 못하는 것처럼 우리가 더욱 잘되기 위해서는 주변 국가들이 함께 상생하는 방법밖에는 없다. 다만, 일본의 완전한 몰락보다는 비등비등하지만 대한민국이 조금 더 살기 좋고 외교력이나 경제력에서 일본에게 큰소리칠 수 있는 위치가 되기를 간절히 기대해 본다.

 우리는 흔히 일본을 '악'이라고 분류하는 이분법적인 사고를 하는 사람들을 종종 만나곤 한다. 하지만 '일본'이라는 국가의 관념에서의 라이벌은 존재할지라도 일본인 개개인은 우리와 별반 다르지 않은 일반인일 뿐이다. 이 책은 일본인이 일본을 바라보는 가감 없는 반성문이다. 읽고서 괘씸한 일본 사회가 빠져있는 절망에 통쾌하다고 시작했다가 결국은 연민의 마음이 한편에 들게 했다. 조금 안타까운 게 있다면, 일본 한자 식 번역이 가끔 눈에 거슬리긴 했지만, 그 또한 일본의 저자가 썼다는 감정이입이 되어 나쁘다고만 할 수도 없다. 어쨌든 싸우지 않을 수 있다면 싸우지 않는 것이 최선이겠지만, 일단 싸우게 된다면 이겨야 한다. 일본은 우리의 적이 아니지만 동아시아의 국제적 위상을 함께 드높이는 라이벌 국가로써 두 국가가 함께 공생하고 자라나길 빌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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