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분들의 서평을 보니, 중학생 혹은 청소년을 위한 과학책이라는 서평이 많던데 나는 문과라서 그런지 나에게 적당히 맞는 것 같다. 장은 총 12개로 이루어져 있는데, 제목 그대로 지구와 생명의 탄생과 과정에 대해 서술되어 있다. 책은 그다지 어렵지 않지만 그렇다고 중학생들이 읽을 만큼 쉬운 건 아닌 것 같다. 다만 누구라도 쉽게 접할 수 있도록 교과서에서 볼 수 있는 재밌는 그림과 사진들이 책에 수록되어 있어 책이 무겁지 않아 좋다.
사실 전공과목이 아니라면 그렇게 깊게 까지 알아야 할 필요는 없는 것 같다. 적당한 호기심을 불러일으켜 주고 다시 해결해주는 이 정도의 책은 참으로 감사할 따름이다. 책의 표지가 조금 화려하다고 해서 책 내용이 유치하다거나 하지는 않다. 저자인 곽영직 님은 서울대학교 자연과학대학에서 물리학을 공부하고 켄터키대학교 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수료할 만큼 신임할만하다.
사실 원어민이 초등학생을 가르치는 마음이라는 것이 그런 것 같다. 자신이 아무리 어려운 공부를 했다고 해서 상대에게 어렵게만 설명하려고 한다는 것은 관련 전공에 대한 사랑이 부족해서이다. 배우려는 이들의 스펙트럼을 넓게 잡고 초보부터 중급과 고수까지 모두 해당 내용에 관심을 갖게 하려는 애착심이 있어야 함 가능하다. 나는 사실 환경 문제에 무관심했었다. 하지만 도널드 트럼프가 미국 대통령으로 당선이 되고 난 후(따지고 보자면 그 훨씬 전부터), 세상은 급격하게 환경변화를 겪고 있다. 우리가 겪는 여러 가지 천재지변이 다만 예전에도 있었다고 치부해버린다면 우리는 '그 잘난 경제'를 살리고자 집 안에 불을 지르는 것과도 같다.
지구가 없고서야, 초일류국이 무슨 상관이며, 선진국이 무슨 상관일까. 아주 크게 보자면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 질서라는 것도 100년도 되지 않았다. 이 작은 세계질서에서 누가 더 풍요롭게 살 수 있느냐를 가지고 싸우기 때문에 우리는 무차별적인 개발을 하게 된다. 가장 우려되는 것은 지구 온난화다. 우리나라는 아주 운 좋게 이번 장마 전선에 대한 피해가 적었다. 하지만 우리의 동쪽과 서쪽으로 중국과 일본은 역대 최악의 강수량을 기록했다. 모든 것이 지구 온난화 때문이다. 시베리아 대륙의 기온이 40도에 육박하고 베네치아와 같은 저지대 도심이 물에 잠기며 일본과 중국은 폭우가 쏟아지고 전 세계적인 폭염이 지구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다. 페름기 말에는 대기 중에 포함된 이산화탄소의 양이 전체 대기의 3~10% 정도 되었다고 한다. 이 당시의 생명 대멸종은 지구 생물의 95%를 멸종시켰다는 주장도 있다. 이산화탄소를 이렇게 내뿜고 있는 우리가 아무런 반성도 하지 않는다면 우리의 과오를 우리 인간뿐만 아니라 함께 생존하고 있는 죄 없는 생명체들에게도 엄청난 민폐를 끼치게 될 것이다. 우리는 미래의 인간을 예상할 때 항상 두뇌가 큰 인간을 그리곤 한다. 하지만 이처럼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많아지게 되면, 폐름기 마 대멸종 사건에서 살아남았던 동물들처럼 빼 내부에 공기주머니인 기낭을 발전시킨 인류가 탄생할지도 모른다. 산소가 적은 환경에서 살아남기 위해 몸집을 키웠던 공룡처럼, 우리 인류도 몸무게 20톤에 키가 30미터씩 되는 인류가 생겨나진 않을까?
바다와 대기에 산소가 없던 시생 누대와 바다와 대기에 산소가 증가하는 원생 누대, 그리고 현생 누대 사이사이에는 수 천 만년에 가까운 빙하기가 있었다. 지구온난화던 빙하기던 생명체의 활동으로 지구 전체의 기후가 급작스럽게 달라지고 2500만 년 혹은 5000만 년에 가깝도록 회복하지 않았다. 오스트랄로피테쿠스의 탄생이 고작 300만 년이던가? 지구의 시간에서 인간이라는 조그마한 미생의 한계가 느껴진다. 책은 지구의 탄생부터 시작해서 꼬물꼬물 생명체가 나오기 시작하는 세포부터 차례대로 진행된다. '천조국'이라 부르는 미국이던,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는 중국이던 우리는 한낫 미생일 뿐이라는 생각이 자꾸 든다. 누가 누구를 차별하고 누가 누구를 미워하는 것이 얼마나 부질없는가.
책에서 말하는 공생 이론을 보면 '리처드 도킨스'의 '이기적인 유전자'가 생각이 난다. 우리는 한낱 유전자들 사이의 공생을 위한 하나의 융합체일 거라는 이야기도 책에 일부 나와 흥미롭다. 이전부터 생각하던 무성생식이 더 유리할 텐데 왜 유성생식의 방식을 유전자가 택했는가 하는 의심도 이 책에서 너무 쉽게 풀어 주었다. 유성생식을 통해 자손을 생산해 내는 것이 복제본을 만들어내는 무성생식보다 더 유리한 이유는 다름 아닌 진화에 더 유리하기 때문이다. 변화하는 자연환경에 살아남기 위해 새로운 환경에 적응할 수 있는 다양한 자손을 낳고 그중 자연선택에 의해 적합한 유전자가 우월하게 살아남으며 진화해간다. 그러고 보면, 내 자식들은 나의 업그레이드 버전이나 다름없다. 이런 간단한 과학적 상식을 놓고 보자면 나의 자손이 나보다 우월하다.
가장 빠르게 이동하는 오스트레일리아 판은 매년 북쪽으로 7cm씩 이동한다고 하는데 이 또한 모르고 있던 내용이다. 호주나 뉴질랜드는 화산활동과 지진활동이 많기는 하지만 이토록 빠르게 이동하고 있다면 우리가 사용하는 지도는 얼마나 이용 가능할까 싶기도 하다. 머지 않아 오스트레일리아 대륙이 북상하며 동남아시아와 충돌할 것이라고 하고 2억 5천 만년 후에는 모든 대륙이 다시 또 하나의 대륙이 될 것이라고 한다. 물론 그때가 되면 나와 내 아이들 혹은 이 글을 보는 이들은 존재조차 사라지거나 미래의 생존인들의 박물관에 뼈만 들어내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외우기 어렵던 캄브리아기가 영국의 웨일스의 옛 이름인 캄브리아에서 유리했다는 사실도 이를 통해 알게 됐다. 또한 진핵생물에서 나눠지며 동물계로 뻗어나가고 다시 동물계에서 여러 가지 형태의 동물들로 뻗어나가는 그림은 매우 이해가 쉽고 흥미로웠다. 책의 전개는 육기 어류를 스치고 지나 꾸준하게 생물을 진화시킨다. 책장을 넘기며 지구의 역사를 통으로 지켜보는 것이 참으로 흥미롭다. 책에는 실러캔스라는 육기 어류 종을 잠시 소개했는데 사진이 없는 것은 조금 아쉬웠다. 너무 궁금해서 실러캔스를 검색해봤다. 왠지 이런 게 도롱뇽이나 개구리와 비슷해 보이기도 한다.
육지가 건조해지면서 일부 동물들이 물이 통과할 수 없는 단단한 껍질로 둘러싸인 알을 낳기 시작했다는데, 무언가 번뜩였다. 생물은 너무나도 자연에 맞춰 진해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냥 알을 낳게 태어난 것이 아니었구나. 재밌는 내용이 많다. 책을 읽다가 식물에 관한 글이 있어 표시해 두었다. 나중에 식물에 관한 글을 쓸 때 참고하면 좋을 듯하다. 나름 확인할 수 없을 정도로 머나먼 과거는 공상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하지만 현실과 현실이 쌓여 만들어진 것이 과거이듯 우리가 확인하지 못했지만 지구의 탄생부터 공룡의 시대와 사피엔스의 등장까지 모두 오늘과 같은 현실이었다. 나의 오늘과 내일도 그때와 같이 스쳐 지나가는 시간의 한 점일 뿐이다. 고통받을 일도 아주 새로울 것도 없다. 그저 하루하루 생물의 한 종으로서 부여받은 생명의 책임을 다하고 살뿐이다. 좋은 책 참 잘 읽었다. 물리학은 타임머신을 발명하지 못했지만, 문학은 발명했다는 점에서 문학이 어쩌면 더 고도의 발전을 이루었다고 할 수 있으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