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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인환 Mar 20. 2021

[역사] 유관순은허구 인물이다

유관순이 절도범이라는 주장?


 애국이란 무엇일까? 뜨거운 가슴으로 태극기를 달고 있는 한국 국가대표 축구 경기를 응원하며 우리는 애국심을 불태운다. 위안부 할머니들의 가슴 아픈 사연을 품에 담고 그들을 대신하여 일본 정부에 열렬히 항의한다. BTS가 전 세계에서 엄청난 인기를 끌 때, 마치 자기 일인 것 마냥 기뻐한다. 나 또한 그렇다. 한국의 어떤 분야가 일본의 어떤 분야를 넘어섰다는 뉴스 기사를 보면 가슴이 뜨거워진다. 문뜩 그런 생각이 든다. 애국이란 무엇일까?




 단순히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은 애국이다. 그렇다면 애국이란 교육되는가? '독도는 우리 땅'이라는 명제에 누구라도 '참'을 외치지만 그를 뒷받침할 근거를 정확하게 알고 있지는 못하다. 또한 일본 주장하는 근거 또한 들을 생각이 없다. 다만, '일단, 일본은 거짓말쟁이들이니 우리 땅이고 본다.'가 우리가 생각하는 애국의 정이다. 




 시간을 조금 거슬러 올라가 볼 때, 조선으로 넘어가면, 조선 백성들은 '애국'이라는 단어를 어떤 형태로 인식하고 있을까? 쉽게 유추할 수 있지만 그들은 '애국'이라는 개념조차 정의하지 않고 살았을 가능성이 높다. 따지고 보자면 애국이란 모호한 개념은 정치적으로 이용하기 가장 좋은 감정이기도 했다. 건드려서는 안 되는 절대 불가침의 영역을 설정해놓고 이 영역에 의구심을 갖는 이를 사회적으로 매도한다. 이런 사회적 분위기는 '무조건적인 애국'에 '표'와 '돈'을 오가게 하고 그에 반하는 주장에는 철저한 응징을 한다. 




 파시즘 나 나치즘은 '애국'이라는 타이틀을 걸고 국가를 결속시켰고 공산주의와 사회주의는 좀 더 합리적이고 정의로운 공동체라는 이름으로 '애국'의 정의를 형성하여 국가를 결속시켰다. 애국에서 말하는 '사랑'이란 '무' 조건적이고 극단적인 감정이다. 정확한 정의를 내리기 어려운 '사랑'이라는 단어를 두고 사람들은 '같은 것을 사랑하는 사람'을 결속시켰다. 대의민주주의는 결국 대표성이 짙은 인물을 선출하는 일이므로 공동체가 원하는 이상을 실천해야 한다. 다수를 결속시키는 감정에 대한 충분한 이해가 필요하다. 




 일제강점기에 우리를 결속시키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제5공화국 대한민국을 결속시키는 감정은 무엇이었을까? 


영화 '변호인'에서 재판 장면에 배우 송강호와 곽도원이 대립되는 장면이 나온다. 서로 다른 애국의 충돌이다. 군사독재 정부를 대표하는 공안정국의 경감과 그런 비정상적인 결속에 문제가 있다고 주장하고 그것을 해결해 나가야 한다고 생각하는 변호인간의 '애국'에 대한 관점 차이가 발생한다.




 결국 사람이 인식하는 '애국'의 정의에 따라, 진보와 보수 진영이 나눠지고 그렇게 정의된 서로의 '애국'의 시선에서 상대의 '애국'은 '매국'으로 치부된다. 4대 강이라는 22조 원가 들어간 국가적 사업이 '매국' 혹은 '애국'으로 생각하는 사람과 160조가 들어간 한국형 뉴딜을 '매국' 혹은 '애국'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중 스스로의 가치판단이 어느 쪽에 '애국'과 '매국'으로 설정되느냐에 따라 '정치성향'이 결정되며 같은 가치 판단하는 사람들과 결속한다. 하지만 진정한 애국이라념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 그 순수성을 지니고 있어야 한다. 




 4대 강이던 뉴딜이던, 국운이 걸린 규모성 국가사업에는 자기 생각과 다르더라도 비난만 일삼을 수는 없다. 다수결은 대의민주주의의 토대이다. 다수결을 부정한다면 민주주의 자체가 부정된다. 국가의 정책 사업이 내 생각과 다르다 할지라도 '다수결'에 의해 결정된 사항들이다. 내가 하고 있는 애국은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이 아니라, 내가 생각하는 애국과 같은 방식으로 애국을 하려는 사람들을 대표하려는 것은 아닐까? 




 다만 수동적인 자세의 대중을 움직이기 위해, 적극적인 소수가 자신의 주장을 끊임없이 피력하는 것은 중요하다. 아무리 진실이라 하더라도 숨겨져 있는 진실은 소수가 주장하지 않는다면 대중 밖으로 나올 수가 없기 때문이다. 한 권의 책을 들었다. '유관순은 허구 인물이다.'라는 책이다. 다소 자극적인 제목이라 작년쯤 인터넷으로 주문했었다. 이런 극적인 주제를 가지고 이야기를 일 끌기 위해선 충분한 주장과 근거가 뒷받침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택배 박스를 열었을 때, 몹시 실망했다. 서점에서 나눠주는 홍보물보다 얇은 두께에 글씨는 얼핏 13포인트 이상으로 출력되어 있었다. 첫 장을 넘겨보고 저자의 설명을 읽었다. 저자는 다소 '정치적인 활동'이 보이는 이력이 있었다. 




 조금 극단적인 방향의 책이라 생각하고 책의 두 번째 장을 넘기지도 않은 상태에서 서재에 넣어 두었다. 오늘 아침 다시 그냥 읽어나 보자는 심산으로 서재에 들려 1년 전, 구매했던 책을 다시 집었다. 분명 소수의 합리적 의심에 귀를 기울이는 것 또한 다른 방식의 애국에 속하지 않을까 생각했다.




 책은 제목과 같이 '한국의 잔다르크 유관순'은 조작되었다고 말한다. 생각해보자면, '잔다르크' 자체가 조작된 인물 인다. 잔다르크의 이야기가 조작되었다는 사실이 유관순이 조작이라는 단정적인 근거가 될 수 있을까? 어쨌건 유관순 열사의 이야기는 '나라 사랑'을 위해서 '여성'이라는 '성'도 18세라는 '나이'도 걸림돌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대표성을 갖고 있다. 어떤 누군가는 이런 방식으로 나라를 사랑하는 사람이 많을수록 지도층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을 수도 있다. 정확한 내용을 읽기에 앞서 그런 마음을 마음속으로 되뇌어가며 책을 읽었다. 




'내가 생각하는 진실이 언제나 진실이 아닐 수도 있다.'




책에서는 다소 국민들이 들고일어날 만한 명제를 '툭'하고 던져 넣는다.




1. 유관순은 허구 인물이다.


2. 유관순은 절도범이다.




 애국지사인 유관순이 허구 인물이라고 하는 주장만으로도 피가 끓을만한 주장이라고 여기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절도범'이라는 더 극적인 타이틀을 씌움으로써 도발적 이야기를 전개한다. 읽으면서는 합리적 의심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한다. 지난번 '두 얼굴의 무궁화'라는 책을 보았다. 몇 가지 합리적인 의심을 책은 품고 있었다. 이런 합리적인 의심은 '반일 종족주의'에서도 물론 있었다. 이런 책들을 반박하는 주장과 글, 영상들이 꾸준하게 올라오지만 분명한 것은 그런 의심을 하는 소수가 있다는 현상 또한 민주주의의 장점일 것이다. 다양한 이야기를 존중하자는 민주주의의 정신대로 나는 그런 이야기 조차 귀를 기울였다.




 책에서는 유관순의 생일이 1~5차 교육 과정에는 서술되어 있지 않다가 6차 교육 과정에 갑자기 서술되어 있다고 기재되어 있다. 또한 7차 교육과정에서 심지어 그 날자도 바뀐다. 또한 1~7차 교육과정에서는 7년의 징역형이라고 기재되어 있다가 이후 3년형으로 고쳐 서술되어졌다고 말한다. 그녀의 나이도 최초 17세에서 18세로 바뀌었다가 최종적으로 19세로 각기 다르게 기술되어 있다고 한다. 이렇게 일관적이지 않은 기록을 과연 역사로 인정할 수 있느냐가 그가 들이밀었던 합리적 의심이었다. 




 당시 여성들은 처녀일 경우 '댕기머리'라 하여 머리를 묶어 밑으로 내리는 머리를 하고 유부녀의 경우에 '쪽머리'라고 하여 뒤쪽으로 말아 올린 머리를 한다고 한다. 우리가 알고 있는 유관순 열사의 사진에 나와있는 그녀의 머리는 당시 '쪽머리'를 하고 있었다. 당시 3.1 운동 기념행사 중 수감된 다른 배화 여학교 학생들의 수감 사진을 보면 모든 여학생들이 댕기머리를 하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이는 합리적인 의심이기는 했다. 저자는 국사편찬위원회에 해당 내용을 문제제기를 했고, 이에 대한 답변서를 받았다. 




 국사편찬위원회에서는 당시 시기 상 한국인의 삶이 전 근대적 관습과 많이 달라지는 시기라는 답변이 왔다. 또한 사진 속 인물이 유관순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이야기했다. 양쪽의 말 중, 어느 한쪽의 말을 일방적으로 듣는다면 책을 읽은 균형이 크게 흔들릴 것 같았다. 두 가지 모두에 가능성을 열어두고 계속해서 책을 읽어갔다.




 이번에는 유관순 수형자 기록부의 직업란에 정동 여자고등 보통학교생도라는 글이 적혀있다고 했다. 그리고 기록부의 사진을 책은 비춘다. 하지만 1919년에는 정동 여자고등 보통학교는 없었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또한 유관순을 기재하는 한자가 달랐다는 내용과 170cm에 육박하는 엄청난 엄청난 키도 의구심이 든다고 했다. 또한 실존인물의 이야기를 기재할 때는 보통 '전기'라는 표현을 쓴다. 가령 이순신 전기, 김구 전기처럼 '전기'라는 표현을 쓰는 반면 유관순의 이야기는 소설에서나 쓰는 '유관순 전'으로 쓰여 내려오고 있다는 것이다. 또한 고교 한국사 교과서 8종에서 4곳이 유관순에 대한 서술이 없다.




 더불어 유관순이 다녔던 학교에 대한 의문부터 시작하여 시기에 관한 의문까지 그는 합리적이라고 생각되는 여러 의심들을 근거와 함께 제시한다. 또한 그거 그것을 알 아기기 위해 주고받았던 여러 서신들을 첨부한다. 읽으면서 아쉬운 생각이 든다. 우리나라의 근현대사 역사상 사실 우리가 알고 있는 많은 역사적, 문화적 사실들이 조작되었다는 것은 나도 동의한다. 앞서 말한 대로, 내가 애국 자이 때문에 아무런 합리적인 의심이라 할지라도 모두 배재하고 무조건적인 애국을 할 수는 없다. '유관순이 실존 인물인지, 허구 인물인지' 책을 덮는 마지막 순간에도 나는 몰랐다. 다만 이런 주장에 있어서 반박할 수 조차 없으며 무조건 내가 옳다는 식은 애국이 아니라는 마음만 있다. 




 그것이 알고 싶다를 보면 실제 사건들을 파헤친다. 그러다 보면 종결된 사건 외로 미결 사건들이 나오기도 한다. 그런 미제사건을 볼 때는 항상 찜찜함을 가슴 한쪽에 둔다. 결말 나지 않은 미드의 최종 편을 본 것처럼 찜찜하다. 다만 명제를 해결하기 위한 근거가 다소 빈약하고 저자의 성향에 따라 이 책만이 진실이라고 믿기는 다소 어렵다는 결론을 내렸다. 앞으로 더 많은 옳다는 주장과 그르다는 주장이 나와 이야기를 풍성하게 한다면 우리나라 역사에 더 큰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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