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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을책] 결심은 방향이고, 시간은 속도다_늦은 건 시

by 오인환

늦은 건 시간이 아니라 결심이다. 이십대 초반 '생각이 많아지면 행동은 느려진다'라는 문장을 봤다. 해당 책의 작가에 대한 일종의 실망을 한 뒤에도 그 문장은 계속해서 남았다.

'생각이 많아지면 행동은 느려진다.'

대부분의 무능은 '많은 생각과 느린 행동' 혹은 '생각 없음과 빠른 행동'에 기인하는 것 같다. 이 두 무능의 유형 중 그나마 행복한 쪽을 찾으라면 후자쪽이다.

두 무능이 후회를 낳는다면 '하고 후회, 안하고 후회' 중 그나마 '하고 후회'가 낫다는 쪽의 손을 든다.

과거 스탠포드 대학교에서 '의사 결정의 지연'에 관한 연구를 했었다. 피실험자들에게 두가지 중 하나를 선택하게 하는 실험이다. 이는 '마시멜로 실험'과 비슷한 실험인데 '지금 당장 받을 수 있는 적은 보상과 며칠 뒤에 받는 더 큰 보상에 대한 실험이다.

이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미래의 더 큰 보상보다 당장의 적은 보상을 선택했다.

실험자와 우리가 크게 다른가. 그렇지 않다. 우리 대부분은 현실 세계에 필연과 같지 존재하는 '인플레이션'을 알고 있다. 즉 상대적으로 소득의 일부가 재화보다 자산에 들어가야 한다는 사실을 안다.

모든 재화는 소비되고 자산은 증식된다. 즉 같은 돈의 흐름이라도 현재를 위해 쓰느냐, 미래를 위해 쓰느냐의 차이가 있다. 당장 3만원짜리 '배달 음식'과 3만원 너치 '배당 ETF' 중 우리는 어디에 소득을 투여하는가.

스탠포드 실험으로 돌아가서, 피실험자 대부분이 즉각적인 보상을 선택한 이유는 '기다릴 자신이 없어서'가 아니라 '결정 자체의 피로' 때문이었다. 즉 '시간'이 아니라 '결심'의 부재다.

사람들은 흔히 이런 착각을 한다. 이작 시간이 있으니, 늦지 않았다고. 다만 시간이 있다고 해서 모든 게 가능한 것은 아니다. 결심이 없는 시간은 텅 빈 공간과 다를 바 없다. 3년 간 책상에 앉아 있어도 한 줄 못 쓰는 작가가 있는 반면, 결심한 하루 만에 완고를 완성하는 사람도 있다. 둘의 차이는 재능도, 여유도 아니다. 바로 결심이다.

2014년에 한 심리학 논문이 있었다. 수천 명의 사례를 이용하여 '인생에서 가장 후회하는 일이 무엇이냐'고 분석하는 논문이다. 이 논문에서 사람들은 대부분 '하지 않은 일'이라고 밝혔다. 그리고 그들이 '하지 않은 일'의 대부분은 '시간 부족'이 아니라 '결정을 미룬 결과' 였다.

왜 결심은 이렇게 어렵고 늦어지는 걸까. 이유는 이렇다. 뇌구조 때문이다. 뇌과학자들은 인간의 뇌가 변화보다는 익숙함을 선호한다고 말한다. 새로운 결정을 내리는 것은 뇌에게 엄청나게 큰 '에너지 소모'다.

'마크 주커버그', '워렌버핏', '스티브잡스'가 매일 같은 옷, 같은 식사, 일정한 생활 루틴을 갖는 것도 '결정 피로'를 최소화하는 데 기인한다. 즉 모든 결정은 루틴화 시키거나 아니면 '아무 생각 없이 내리는 것'이다.

'흰 옷을 입을지, 검은 옷을 입을지'가 아니라, 옷장 가장 왼쪽에 있는 옷부터 입는다,라는 원칙을 정하고 결정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해야 하는가, 말아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해야한다'라는 원칙을 무조건 두고 살아가는 것이다. 모든 결정에 대한 피로를 최소화하고 나면 삶은 '행동' 밖에 남지 않는다. 드디어 인간의 뇌에 들어가는 엄청난 양의 에너지가 절약되고 '행동'으로 옮겨갈 수 있다.

생각해보면 우리 삶의 대부분은 결심의 타이밍으로 나눠진다. 어떤 사람은 25살에 공부를 시작하고, 어떤 사람은 40에 이직을 결심한다. 어떤 사람은 60에 그림을 배우고, 어떤 사람은 70에 운동을 하기도 한다.

사회는 그들에게 종종 '이제 너무 늦었다'라고 말하지만, 실은 늦은 것은 시간이 아니라 결심이다. 그리고 그러한 결정은 '시간'과 무관하게 아무 생각없이 해야 한다고 느끼면 그냥 하면 그만이다.

시간은 유용한 자원이지만 무능한 자들에게 아주 좋은 핑계가 되기도 한다. 모든 순간에는 결심이 필요하다. 거기에 어떠한 에너지를 사용할 필요가 없다. 그저 해야하면 하고, 하기로 했으면 하면 그만이다. 지금 이 글을 쓰는 순간에도 작은 결심이 이어지고 있다. 한 문장을 끝내는 일, 다음 문단으로 넘어가는 일, 생각을 마무리하지 않고 계속 이어가는 일. 이 모든 것이 결심이다.

모든 순간에 '장고'를 하고 머뭇거림이 있다면 벌써 이 장문의 글은 완성하지 못했다. 실수를 줄이는 가장 좋은 방법은 실수를 하는 것이다. 일단 비문과 오타로 가득한 문장이지만 일단 뱉고 이후 수정하는 편이 낫다. 완전한 순간을 기다리고 있었다면 지금 이 글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이제 '늦었다'라는 말에 속지 않기로 했다. 그것은 시간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일이다.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데, 나의 무능은 오로지 '시간'이 만들어 낸 것 같은 자기착오에 빠지면 안된다. 시간이 나를 놓고 간 것이 아니라. 내가 시간을 놓아버리는 것이다.

결심은 방향이고, 시간은 속도다. 방향이 다르면 속도가 빛의 속도라 한들 무의미하다. 방향만 맞게 설정됐다면 늦어도 상관 없다. 그러니 늦은 '시간'에 매몰되지 말고 늦은 '결심'에 몰입하여 지금 당장 아무 생각없이 결정해야 한다.

짜장을 먹던, 짬뽕을 먹던,

흰옷을 입던, 검은 옷을 입던,

머뭇거리고 망설이는 그것을 뒤로 미뤘다고 해서 더 나아지는 건 없다.

고로 모든 결정은

지금, 여기부터 시작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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