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의 시간에 대한 묘사..._시간이 있었으면 좋겠다

by 오인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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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신지 작가'의 '시간이 있었으면 좋겠다'를 읽다가 가슴에 '콕'하고 박힌 부분이 있다.



'누군가의 하루를 촘촘히 묘사한 부분이 나오면 두 번 세 번 읽는다'는 부분.



사실 그렇다.



문학을 읽을 때, '묘사'는 얼마나 중요한가.



'알랭 로브그리예'의 '질투'를 보면 소설에 서사가 없다. 묘사만 잔뜩 있다.


한창 어떻게 이야기를 전개할까.., 하고 텍스트를 따라가다보면 이미 소설은 끝나 있다.



어떤 이들은 '스펙타클'한 서사를 기대하겠지만 그것은 '문학'이 가져야 할 필수요소는 아니다.



'그림'을 통해 '서사'를 전달하는 것만이 '그림'의 목적이 아니다. 만화는 충분히 '서사'를 만들어 낼 수 있지만 '피카소'의 '게르니카'는 '서사' 한점 없이 '1937년 스페인 내전'을 설명했다.



'피카소'의 게르니카는 마치 당시 신문 사진처럼 보이도록 '흑백'으로만 그림을 구성했다. 절규하는 말, 죽은 아이를 안고 우는 어머니, 부서진 건물과 혼란. 이런 것들은 형체를 왜곡하여 표현했다.



구체적인 전투 장면도 없고, '사건 발생 연도'도 없다. 작가의 설명도 역시 없다. 그러나 그 어떤 '스팩타클'한 서사보다 더 '폭력'과 '독재'를 잘 보여준다.



'실재'를 보는 것과 '묘사'를 하는 것에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



어쩌면 앞서 말한 차이가 있지는 않을까.



누군가는 태양을 보며, '뜨거운 태양'이라고 표현할 수도 있고, 누군가는 '찬란한 태양'이라고 표현할 수도 있다. 그림이 같은 대상을 가지고 여러 방식으로 표현할 수 있 듯, 문학도 그렇다.



고로 심심하면 빈 종이에 무언가를 낙서하듯, 우리의 끄적임도 한폭의 그림이나 문학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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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것 없다. 눈앞에 놓여 있는 '끝이 부러진 연필'이 될 수도 있고, 다 쓴 치약 뚜껑도 될 수 있다. 그것을 묘사하는 것이다. 묘사할 때는 '겉'이 아니라 '그것이 가지고 있는 기억', '시간', '역사'를 표현할 수도 있다.


어쩌면 그것의 색깔, 냄새를 묘사할 수도 있다. 방법은 다양한다. 꼭 대단한 '이야기'만 '글이 된다는 생각'을 해서는 이미 세상아 잔뜩 나와 있는 '참신한 스토리라인'에 아류가 될 뿐이다.



중요한 것은 무엇을 얼마나, 어떻게 묘사할 수 있는가.



글을 읽다보니, 막 글을 쓰고 싶고. 또 누군가의 묘사를 막 읽고 싶다.



이런 자극을 주는 걸 보니, 이 책은 나에게 꽤 괜찮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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