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마다 마음의 위안이 되는 곳이 어느 곳이든 있다. 스무살 언저리 즈음에 본 책에서 사람은 누구나 자신만의 '위안의 장소'가 하나 쯤은 있어야 한다 봤다.
'역마살'이 단단히 끼어있는 나의 삶에서 '위안의 장소'는 항상 있었다.
뉴질랜드에서는 '회사'에서 '저층 호텔(?)'을 임대해 주었다. 매일 일을 마치면 그 호텔 옥상으로 올라가 별을 보곤 했다. 옥상에는 사우나, TV, 그리고 커다란 수영장이 있었는데 '코로나 맥주병'에 '6등분'으로 자른 '레몬'을 끼워 넣고 올라가서 혼자 별을 바라보곤 했다.
그 기간이 짧았지만 그래도 최소 3년은 된 듯하다. 업무처가 다른 곳으로 바뀌었을 때도 그랬다. '크라이스트처치' 근처에 있는 작은 마을에서 잠시 살았었는데 그 마을 외곽으로 빠져 나가면 정말 '인류최초로 내가 방문하지 않았을까' 하는 목장의 어느곳으로 들어가게 된다.
당연히 사람이 다닌 흔적은 없고 주인조차 방문해 보지 않을 법한 목장의 구석이었다. 거기에 차를 세워 놓고 혼자 조용히 사색의 시간을 갖곤 했다.
밤이 되면 그곳은 밤이 되는 것이 아니라 우주 공간으로 떨어져 나가는 느낌이 든다. 눈을 조금 밝게 뜨면 저 별이 가진 '모공'까지 보일 것만 같다.
무척이나 심심하고 외롭고 갑갑했던 그곳에서 항상 '한국에 가면...'을 떠올리곤 했는데 여기오고 나니, '다시 그곳이 그리워지는 것은 어쩌면 그곳'이 아니라 '그때'라서 그러지 않을까 싶다.
유학을 하던 시기에는 비교적 번화가에 거주했다. 번화가라고 해도 우리나라 중소형 도시정도 수준 밖에는 안되는 곳이었지만 그곳에서 그 어린 나이에 나는 왜 그렇게 많은 번뇌를 쥐고 살았는지 항상 안식처를 찾곤 했다.
한인교회도 다녀보고 현지인 교회도 다녀봤지만 극I의 성향인 나에게 교회는 한인교회든, 현지교회든 '인싸'들의 모여 있는 곳이었다. 모르는 사람들의 초대가 매번 부담스럽고 INFJ 특유의 가면을 갈아끼우는 일도 적잖은 에너지소모를 불러 일으켰다.
도심 한가운데 꽤 커다란 '성당'이 하나 있었는데 가끔 성당에 들어가 가만히 앉아 있다가 나오곤 했다.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에도 '종교'라면 잘 알지 못한다. 다만 성당은 들어오는 사람도 나가는 사람도 신경쓰지 않았기에 '신앙심'과 관련없이 가만히 앉아서 조용히 들려오는 '오르관' 소리를 들으면 뭔가 마음이 녹아 들어가는 느낌이었다.
제주에 와서는 종종 '관악사'를 방문하곤 했다. 절은 그 특성상 꽤 산에 가야 되는데, 산에 들어가면 마음이 편해지는 것이 있어 아이와 함께 방문하여 따뜻한 유자차 한잔씩 먹고 돌아왔다.
그 밖에도 항상 어딘가로 이동하여 가만히 마음을 씻어내는 행동을 하곤 했는데, 아이가 태어나고 그닥 그런 위안처를 찾지는 못했다.
HSP라는 용어를 듣고나서 '그것이 바로 나다!'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극단적으로 예민한 사람'의 정의에 완전히 나는 부합했다. 나도 꽤 무던한 사람이 되고 싶고, 겉으로 그렇게 보이려 노력하기에 어떤 사람들은 나를 그렇게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눈으로 들어오는 정보, 귀로 들어오는 정보, 이미 들어와서 머리속을 헤집고 다니는 정보. 그 정보들이 포화상태에 이르러 뇌 어딘가에서 얹힌 기분...
그런 기분이면 마치 소화제 하나를 물과 함께 삼켜 내리고 싶은 기분이 막 든다.
마흔이 된 나에게 그런 장소는 과연 어디 일까. 시간이 남으면 집으로 들어가기 보다 어딘가에서 시간을 보내면 나는 마음이 편안해지는가.
그런 고민을 하다가, 그곳이 '서점'이라는 것을 최근에 알았다. 물론 서점은 본래 내가 좋아하는 장소다. 그러나 그곳이 '마음의 위안처'라는 정의는 끝까지 내리지 않았다. 그러다 지금 '아, 그래. 이 정도면 그런 장소다' 하고 정의를 내리기로 했다.
서점이 좋은 이유는 굳이 만나고 싶지 않은 사람들과 만날 필요가 없으며, 시공간을 뛰어넘은 만나고 싶은 사람들이 즐비한 곳이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 길을 가다가 아는 지인을 만나면, '어?'하고 찰라의 순간 반가움을 느끼지만 찰라 바로 뒤부터 피곤함이 몰려온다. 안부를 서로 묻고, 사는 이야기를 가볍게 주고 받는 일이 꽤 고역이다.
고로 그냥 조용히 내 선택을 기다려주는 많은 '작가'를 만나러 가는 일이 차라리 즐겁다. 또한 '책을 좋아하는 또래'가 많지 않다보니, 서점에가서 '만나게 되는 사람'이 그닥 많지는 않다.
오늘도 가방에 '전자책 하나', '종이책 두 권'을 담고, 완전 군장 상태로 쏘다니다가 서점을 들렸는데 참지 못하고 몇 권 들고 나왔다. 집으로 돌아가 한 호흡에 100쪽을 읽으니 얹혀 있던 무언가가 쑥!하고 내려가는 느낌이다.
그래 이맛이지...
최근 바쁜 일상으로 꽤 참고 있던 책 읽기, 뭐든 참았다가 하게 되면 좋지 못하다. 조금씩 해소 시켜줘야 하는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