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이 우리를 정말 가난하게 만들지는 않았던 것처럼. 불행이 우리를 정말 불행하게 만들지는 않았던 것처럼.'
택시를 타고 한참을 이동할 일이 있어서 전날 조금 일찍 일어났다. 일찍 일어난 이유는 일찍 출발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택시에서 '쪽잠'을 자기 위해서.
마흔이 된 나에게 간혹 '향수'처럼 찾아오는 기억이 하나 있는데, 그닥 유쾌한 기억은 아니다. 어린시절부터 체력이 약한 편이라 정기적으로 찾아오는 '체력장'이라는 시간은 고통스러운 시간이었다.
지금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한 여름, 천장에 달린 회전식 선풍기 서너대로 더위를 식히던 시절. 초등학교, 중학교 체육시간에 '체력장'이라는 것을 실시했다.
'팔굽혀펴기'라던지, '윗몸일으키기', '오래달리기' 뭐 이런 것들을 하면서 '기록'을 측정하던 시험이었는데, 대부분의 운동에 소질이 없었지만 '오래달리기'만은 지독하게 소질이 없었다.
운동장을 4바퀴인가, 5바퀴인가 돌고 있을 때쯤, 체육선생님께서는 혼자서 돌고 있는 '나'를 기다리기 '뭣'하여 다음 차례의 '여학생'들을 그냥 출발 시키셨다.
마지막 바퀴는 쌩쌩 달리는 '여학생들'과 함께 뛰게 되는데 그게 그 당시에는 꽤나 수치스러웠다.
그러나 그보다 더 힘든 것은 '수치심'이라는 감정보다 턱끝까지 차오른 숨이었다. 얼굴이 붉어지고 마지막에 '전대미문'의 기록을 남긴 후에 나는 하늘을 향해 누웠다. 내가 느낀 수치심이란 꽤 진지하지 못한 감정이라 아이들과 체육 선생님과 시덥잖은 '농담'을 주고 받고 살짝 웃음을 머금은 채 눈을 감고 살랑 살랑 불어오는 바람을 느꼈다.
심장에서 뿜어낸 혈액이 얼굴로 '불끈불끈' 올라오는 것이 느껴졌다. 혈액이 얼굴로 펌프질 되듯 올라오자, 눈앞의 시야 역시 그 박동에 맞춰 밝아졌다, 어두워졌다를 반복했다.
그렇게 한참을 누워 있다가 일어나면 팔꿈치며 머리에 소금처럼 굵은 모래알이 붙어 올라왔다. 건물 앞에 있던 '세면대'에는 수도꼭지가 45도로 기울어져 있었는데 아이들은 그곳에서 머리를 감고 입을 쳐박고 꼴딱꼴딱 물을 마셨다.
마흔이 되어, 자꾸 그때 기억이 생각이 나는데, 추우면 '난방'을 떼고, 더우면 '에어컨'을 켜서 '고통'을 최소화 할 수 있는 '통제능력'이 생겼기 때문이지 않을까.
나는 언제 ' 신체적으로 통제 하지 못한 고통'에 놓여 있었는가.
가만 생각해보면 까마득하다. 트레이너 선생님께 매번 견딜 수 있는 신체적 고통을 돈주고 사오면서 가만 그런 생각을 했다. 왜 그때는 강제적이었던 것을, 지금은 돈을 주고 사오고 있는가.
'당근 마켓'에 이런 저런 물건을 팔다보니, 참 희안한 것들을 많이 사고 살았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어떤 것은 한번이나 썼나?, 싶은 것들도 있다. 그것들의 운명은 '매장'에 있다가 우리집으로 옮겨왔을 뿐, 조금의 손상도 없던 것들이 단지 '구매시기'에 따라 크게 감가상각이 됐다.
가만보면 무언가에 돈을 지불하는 것은 '필요'에 의해서가 아니라 '언제든 쓸 수 있는 상태'를 구매하는 것 같다. 구매하는 대부분의 것들이 '항상, 매일' 필요한 것은 아니다. 최근 구매한 '스탠바이미'나, '4K'가 출력되는 빔프로젝트도 구매후 몇번 켜 보지도 않았다.
사물에 한하여겠지만, '내가 통제할 수 있다'는 '작은 권력욕'은 어떤 의미에서 가장 비싼 비용을 치뤄야 얻을 수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어떤 의미에서 내가 통제할 수 있는 환경이란 다른 사물들에 비해 훨씬 비쌀 것이다. 시간이 다가오면 할 수 밖에 없는 '체력장'과 돈을 지불하고 받는 트레이닝의 차이처럼 어떤 상황에 쳐해 있던 '내가 통제할 수 있다'라는 자신감이 있다면 가난과 불행도 때로는 '삶'이 던져준 '게임의 퀘스트'가 될 뿐이다.
그또한 놀이다. 어떤 것이든 '놀이'로 생각하면 때로는 '고난'도 흥겨운 놀이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