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 시큼하든 달콤하든, 항상 그 맛을 음미하세요

by 오인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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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종류가 많아서 풍성하다. 여름에는 공포가 제격이고 우울한 영화가 괜찮을 때도 있다. 어떤 경우에는 전쟁 영화, 어떤 경우에는 스릴러를 보기도 한다.


밋밋하게 주인공이 출퇴근이나 하고 적당한 행복감을 느끼며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영화라면 흥행하기가 힘들다. 사람들은 그런 영화에 지갑을 열지 않는다.



사람들은 '극적인 이야기'를 선호한다. 공포와 우울 때로는 범죄물을 찾아 다니며 본다. 그런 스트레스를 돈을 주고서 구매하는 이유는 그것이 '재미'있기 때문이다.



그렇다.



'재미'의 범주에는 '코미디'만 있는 것이 아니다. '해피앤딩'만 있는 것도 아니다. 전세계 사람들은 침모하는 배에서 사랑하는 사람을 잃어가는 '타이타닉'이라는 영화를 좋아하고 '라이언일병구하기'처럼 수많은 사람이 총에 맞아 죽는, 누군가에게는 '트라우마'와 같은 영상을 돈주고 산다.



그 '스릴감'과 그 '감정'을 오롯하게 느끼고 싶어서 그럴 것이다.



돈을 주고서라도 느끼고 싶은 그런 감정들.. 더 사실적이고 더 리얼할수록 '더 재미있다'고 느껴지는 그런 작품들.



'모방'이 아니라 '현실'이라면 어떨까.



그것이 '모방'이기 때문에 즐길 수 있지만, '현실'이라면 그럴 수 없을지도 모른다. 이는 '모의투자'와 '실전투자'의 차이와 같다.



여기에는 '책임'이라는 차이가 있다. '영화'에서 벌어지는 상황은 2시간이 지나고 난 뒤의 나에게는 '책임'이 남아 있지 않다. 그저 앉았던 자리나 잘 정리하고 나오면 그만이다.



그러나 침몰하는 배, 총알이 빗발치는 전쟁터에 내가 있는다면 거기서 발생하는 책임의 수위가 지나치게 길어진다.


사람들은 '안전바'가 나를 지켜줄 것이라는 믿음을 갖고 있기에, '롤러코스터'나 '바이킹' 같은 놀이기구를 탄다. 그것이 '안전하게 통제 된 공포'라는 사실을 인지하기만 한다면 대부분의 공포는 '놀이'에 지나지 않는다.



우리 감정은 다시 말해서 '공포 상황' 그자체를 두려워하는 것이 아니라, '통제 가능한가'의 여부를 두려워할 뿐이다.



그런 의미에서 삶은 '극'보다 더 리얼한 공포를 줄 수 있다. 안전바가 얼마나 안전한지 그누구도 보장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것이 통제 가능하던, 통제 가능하지 않던, 그것은 '믿음'의 영역이다. 어떤 놀이기구는 사고가 나기도 하지만 그것을 모르는 사람들은 사고가 나기 전까지 자신에게 주어진 공포를 오롯하게 즐긴다.



즉 이것은 '믿음'의 영역이다.



'통제 가능하다는 자신감', '책임을 지겠다는 의식'만 가지면 거의 대부분의 가슴 떨리는 경험은 '놀이'가 된다.


나는 가끔 악몽을 꾸는 것을 즐긴다. '악몽'을 잘 꾸지는 않지만, 한번 악몽을 꾼다면 그날은 그렇게 기쁠 수가 없다.


악몽은 '텍사스 전기톱 살인사건'이나 '이블데드'처럼 손발이 후들후들 떨리는 감정을 선물해주지면 역시나 공짜이고 영화보다 더 리얼하며 심지어 자고 있는 수면시간에 공짜로 주는 '레저 활동'과 같다.



에리카 알렉스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시큼하든 달콤하든, 항상 그 맛을 음미하세요. 다시 그런 맛을 느낄 기회는 없습니다."



그렇다. 때로는 공포, 때로는 새드앤딩일 수 있지만, 그 하루에 깊은 감정을 두고 음미를 하며 별점 다섯개를 주고 "이번 작품은 정말 리얼했습니다!"라고 평점을 남기면 또 그만큼 재미있는 것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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