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의 내 모습에는 내게 머물다간 사람들의 흔적이 곳곳에 남아 있다.'
음식점, 카페.
어디를 가건 '화장실 청결 상태'를 가장 먼저 확인한다. 결벽증적 성격 탓이 아니라누군가의 습관에서 묻어 나온 일종의 전염 같은 것이다. 예전 나에게서 머물다간 누군가의 흔적이다.
왜 그렇게까지 하느냐.며 타박하고 고개를 갸웃거리던 나의 과거 모습과 그렇게까지하고 있는 현재 나의 모습이 오버랩되며 피식하고 웃음이 난다.
이렇게 자각하지 못한 흔적이 나에게서 얼마나 남아 있을까,
'손민지' 작가의 '나는 너를 영원히 오해하기로 했다'라는 수필을 읽었다. 그닥 '사랑'이나 '이별' 따위의 단어에 연관없는 '삶'을 살고 있는 지금 이 책이 어째서 나에게 왔는지 모른다.
가볍게 읽고자, 했던 글들에서 잊혀졌던 기억들이 슬며시 떠올랐다. 한창 그 '파고'에서 함께 출렁거리고 있을 때는 세상이 흔들려 보였는데 그 풍경에서 벗어나 멀리서 바라보고 있는 위치가 되니, 그것이 또 윤슬을 만들어 내며 출렁거리는 아름다운 풍경이 었다는 걸 깨닫게 된다.
치열하게 사랑하고 이별했던, 온몸으로 경험했던 감정이 아니었더라면, 나는 좋은 글과 좋은 영상, 좋은 음악에서 얼마나 더 생경한 감정을 놓치고 살고 있을까, 그런 생각이 든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이별'을 경험하고 많이 듣던 노래가 있다. 청승맞게 당시에는 그 가사에 꽂혀 마치 잘 짜여진 극본의 주인공이 된 것 마냥, 노래 가사와 스스로를 이입하며 내멋대로 지난 이야기를 편집하곤 했다.
'비와 당신'이라는 노래 첫 소절은 이렇게 시작한다.
'이젠 당신이 그립지 않죠. 보고 싶은 마음도 없죠...'
그립지 않고 보고 싶은 마음도 없는 사람을 위한 '이별 노래'라니, 이별 전후에는 그렇게 한심했던 노래 가사가 시간이 한참 흐르고 난 뒤에는 덤덤하니 추억이 된 이별이 가진 나름의 감성이 느껴졌다.
'손민지 작가'의 글을 보면서 그냥 불현듯 상황이되면 의도치 않게 떠오르는 몇몇 장면이 떠올랐다.
그냥 스치고 지나가던 감정과 느낌을 작가는 어떻게 하나씩 콕콕 찝어 기억해 내고 그것을 글로 담았을까, 생각이 들었따.
'내가 고백한 내 단점은 나에 대한 편견을 만드는 데 일조했다'
이 문장을 읽으면서 상대가 떠올랐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상대는 자기고백적 성찰을 종종 농담처럼 내뱉곤 했다.
'스스로 이런 점이 단점이다...'면서 아무렇지 않게 내뱉던 말들 중 일부는 실제로 조금씩 상대의 문제로 보여지기 시작했고 당시에는 인지하지 못했던 나의 말습관에서 나에게도 비슷한 문제가 있었다는 사실을 지금에서 깨닫는다.
너무 편안해서 간혹 입밖으로 꺼내면 안되는 단어들이 '툭 툭'하고 내뱉어질 때, 그것이 부메랑이 되어 돌아 올 것이라는 생각을 당시에는 못했다.
그렇게 서로가 서로에게 '자신의 단점'이라며 내뱉은 말에는 어떤 심리가 있었을가.
'네가 좋아하는 것에는, 이런 단점도 포함되어 있다.'며 마치 상품'을 구매하는 소비자에게 '책임 제한, 면책 사항'같은 걸 고지하는 심리일까.
그냥, 글도 짧고 가볍고... 챕터도 시원시원하게 넘어가는 듯해서 고른 책에서 잊혀지고 있던 오래 된 추억과 감정들이 스믈스물 떠오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