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학 시절' 수첩에 적어 두었던 말이 있는데, '지금 편안하다면 내리막을 걷고 있는 것이다'라는 말이다. '고통'이 언제나 '바른 길'을 인도하는 '길라잡이'라 확정할 수는 없지만 그것이 '그렇다', '아니다'라는 문제를 넘어 '그렇다'고 믿는 것이 중요한 것 같다. 지금 있는 고통이 고통으로 끝날 수도 있겠지만 중요한 것은 그것이 그렇게 끝나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을 갖는 것이다.
영화 부당거래를 보면 '찜찜한 일'을 진행하는 '경찰'들이 마지막에 서로 주고 받는 대화가 있다.
"잘하고 있는 거겠죠?" 질문에, "지금 이 마당에 잘하고 못하고가 중요하냐, 잘하고 있다고 믿는게 중요하지"하고 답하는 장면이 있다.
잘하고 못하고는 '결과'가 판단할 문제지, '과정'이 판단하는 문제는 아니다. 결과는 언제나 '하늘'의 몫이기에 던져진 동전이 위를 향할지, 아래를 향할지,는 던져진 마당에 신경 쓸 바가 아니다.
'뭐, 신이 다 알아서 하겠지' 하는 결과에 무책임한 태도로 '과정'에 집중만 하면 그만이다. 사실 '결과'란 어차피 '신'의 영역이고, '과정'이란 '인간'의 영역이라 믿는다. 서로가 스스로의 영역에서 최선을 다 할 때, 비로소 원인과 결과라는 톱니바퀴가 맞물려 돌아가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어린시절 어머니께서 해주신 김치찌개를 먹을 때, 가장 좋아하는 '고기'와 '두부'를 쏙쏙하고 빼먹었던 기억이 있다. 냄비 속 김치찌개는 매번 식탁 위에 올라 갈 때 마다 '두부'와 '고기'가 가득했기에 그것이 식탁 위에 올라가기 전과 치워지고 난 뒤의 상황에 대해 깊게 생각해 보지 않았다.
마흔이 넘고 아이와 밥상 머리에 앉았다. 아이와 김치찌개를 먹는데 '고기'에 손이 가지 않는다. 찌개 속 고기가 없다면 '아이'는 찌개를 먹지 않을 것이다. 아이가 찌개를 맛있게 먹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양파'나 '김치'따위를 먼저 집어 먹는다. 그렇게 먹다보면 냄비 하나가 깔끔하게 비워진다.
그냥 자연스럽게 균형이 맞는다는 생각은 착각이다. 한쪽이 완전하다고 생각한다면 다른 쪽에서 틀림없이 균형을 맞추고 있을 가능성이 있다. 나는 평생 아버지께서 고등어 머리와 빼를 좋아하신다고 생각했다. 어느날 문뜩 아이에게 살코기를 발라주면서 뼈에 붙은 고기를 불편하게 먹는 모습을 보며 깨달았다.
입장이 바뀌기 전까지 혼자서 깨우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는 사실을 말이다. 얼마나 많은 불공정한 관계 속에서 나는 '이득'을 얻고 있을까.
곰곰히 생각해보건데 균형은 그렇게 맞춰진다. 어느쪽이 기울어져 있으면 어느쪽은 틀림없이 반대 방향으로 기울어져 있을 것이다. 그 균형은 인과관계에서도 알 수 있다.
예전 같은 사건을 다르게 보는 지인과 대화했던 적 있다.
나의 경우에는 '론다 번'의 '더시크릿'에 한창 빠져 있던 터라, 좋은 생각은 좋은 결과를 만들어내고, 나쁜 생각은 나쁜 결과를 만들어 낸다는 믿음에 심취해 있을 때 였다.
지인은 이렇게 말했다.
스스로 좋은 일이 생기면 '이제 얼마나 나쁜 일이 오려나',
스스로 나쁜 일이 생기면 '이제 얼마나 좋은 일이 오려나',
이런 사고의 흐름을 갖고 살아간다고 했다.
"바보 같은... 좋은 일이 있어도 좋게 생각하고, 나쁜 일이 있어도 좋게 생각해야지!" 하고 조언을 해 주었는데 살다보니, 극단적 '낙천주의'조차 '현실을 받아 들이지 않는 즉, 수긍하지 않는 부정'에 속한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긍정'과 '부정'에서 '긍정'이란 '그렇다' 하고 인정하는 것이고 부정이란 그렇지 않다고 인정하지 않는 것이란다.
즉 무조건 좋게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상황에 맞게 '그러면 그렇다'하고, '그렇지 않으면 그렇지 않다'하며 자신에게 주어진 상황을 올바르게 받아드리는 것이 먼저인듯 하다. 그렇게 받아들이고 나면 하강 다음에는 상승이 있고, 상승 다음에는 하강이 있는 이치를 깨달아 '중도'를 취할 수 있다.
결과란 언제나 좋을 수 많은 없다. 좋을 수도, 나쁠 수도 있다. 그 결과를 받아 들이는 것은 객관적이고 올바르게 하되, 결과가 좋든 나쁜 스스로는 결과가 어찌되던 잘하고 있다고 믿는 것이 중요한 것 같다.
오르막 길을 올라가고 있을 땐,
오르막길을 올라가는 구나, 곧 내리막길이 있겠구나 하고,
내리막 길을 내려가고 있을 땐,
내리막길을 내려가는 구나, 곧 오르막길이 있겠구나 하며,
그 길이 어찌됐던 오르고 내릴 뿐 '나'는 변함 없이 잘 걸어가고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는 것이 중요한 것 같다.
오늘은 조금 내려가는 길을 걸었지만 나는 쉬지 않고 걸어가고 있으며 그렇게 걷다보면 다시 또 오르막길이 나올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