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 작은 물방을이라도 끊임없이 떨어지면 바위를 뚫

by 오인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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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데스벨리에 '움직이는 돌' 현상이 있다. 아무도 건드리지 않은 바위가 진흙 바닥 위를 미끌어지며 긴 흔적을 만들어 내는 현상이다. 아무도 건들이지 않았는데 커다란 바위가 혼자서 긴 자국을 만들어내며 길을 만든다. 어떤 경우에는 400미터 이상 이동한 흔적이 발견되기도 한다.

장정 여럿이 붙어도 쉽지 않을 것 같은 이 돌을 움직이는 방법은 무엇일까.

단순하게 말하자면 '얕은 물, 얉은 얼음, 약한 바람, 살짝 미끄러운 진흙 바닥'이 원인이다.

'점적천석(點滴穿石)'

'작은 물방울이라도 끊임없이 떨어지면 결국엔 바위를 뚫는다.'

바위를 움직이는 것은 '깊은 바다, 두꺼운 얼음, 강한 바람'이 아니다. 미세한 조건들이 꾸준하게 만들어내는 결정들이다.

세상 모든 것이 그렇지 않겠는가.

세계에서 가장 높은 '에베레스트 산' 역시 그렇다.

에베레스트 산은 앞서 말한 작은 영향력들이 쌓여 지각이 접히고 밀리면서 만들어졌다. 인도판이 북으로 이동하고 유라시아판과 충돌하며 밀어 올라간다는 설명도 거대한 지구적 규모라 위대해 보이지만 '움직이는 돌'처럼 그저 작은 현상들의 충접이 만들어낸 결과일 뿐이다.

지금도 에베레스트산은 연간 5mm씩 상승하고 있다. 이는 인간의 손톱이 자라는 속도 수준이다. 어떤 화산은 하루 아침에 만들어지기도 하고 어떤 변화는 한번에 만들어지는 것 같지만 그 역시 내부를 살펴보면 작은 중첩이 만들어낸 에너지의 웅축이 폭발하면서 만들어진 결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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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에는 '천재'를 동경했다. 특히 어린 시절부터 천부적인 재능을 받고 자란 이들을 말이다. 그들이 나뿐만 아니라 사람들에게서 동경 받는 이유는 우리가 그 '원리'를 모르기 때문이다.


'노력'과 '시간'이라는 투명한 과정을 알고 난 뒤에는 '나도 하면 되지'라는 '해 볼만 하다'는 인식이 생긴다. 여기에는 '동경'이 들어 갈 자리가 없다. 그러나 어느날 갑자기 나타난 천재 즉, 당췌 어떤 경위로 지금의 위치에 올라섰는지 알 수 없는 이에 대해서는 '경외로움'과 '두려움'을 갖는다. 그것이 '천재'를 바라보는 '범인'의 마음이지 않을까 싶다.



근대 이전 시대까지 세계에는 '귀족'이라는 것이 존재했다. 그들이 '고귀한 이유'는 단순히 '핏줄'에 있었다. 그저 고귀하기에 고귀하다는 논리가 사라진 '비논리'가 논리로 자리 잡힌 세상을 가능케 하는 것은 그저 '시간'일 뿐이다.



'명태조' 주원장 이후 300년간 '주원장'의 직계 후손은 '주 씨' 일족은 황족 신분을 유지했다. 이들의 직계, 주원장을 포함한 영락제, 승정제는 '천자'라고 불려지며 하늘의 아들이라는 칭호를 받았다. 그러나 곰곰히 생각해 보자면 주원장은 '생존'을 위해 떠돌이 생활을 하던 농민 출신으로 그들의 가족은 대부분 굶주림과 역병, 가뭄으로 사망했다. 쉽게 말해 그는 '천자' 이전에 '거지' 출신이었다. 이후 그는 절에 등러가 스님을 했고, 이후 홍건적의 난에 참여하여 반란군의 수장이 되기도 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며 주원장의 다른 배경은 모두 사라지고 '천자'라는 결과만 남는다. 그의 아들은 그것을 물려받고, 그의 아들의 아들은 그것을 물려 받으니 결과적으로 그저 '고귀한 핏줄'로 변천하는 것.



사실 어떻게 그가 고귀해졌는가,를 살펴보면 그 배경에는 치열함과 악착같은, 혹은 천할만큼 '행'을 우선시 해는 선택들이 담겨 있는 것이다. 여기서 '천하다'는 것은 '사고'를 고귀함으로 '행동'을 천으로 여기는 사상을 기반으로 봤을 때 그렇다는 것이다.



고로 중요한 것은 '아무 이유없는 기적'이 일어나길 바랄 것이 아니라 '작은 변화', '꾸준한 행동', '충분한 시간'이 에너지를 만들어 낼 때까지 '생존'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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