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시아 문화권에서는 우주 만물의 생성 원리로 상호 대응하는 두가지 성질이 있다고 믿었다. 이 두가지 성질은 멈춰 있지 않고 끊임없이 움직이며 상호작용하는데 이를 음과 양으로 구분했다. 음과 양은 특별할 것없는 기본적이고 평범한 개념이었다. 마치 해와 달 혹은 겉과 속처럼 상응하는 성질이 구성이 만물에 적용된다는 것을 원리로 했다. 암컷과 수컷, 삶과 죽음, 겉과 속, 해와 달, 낮과 밤 등 우리가 쉽게 구분할 수 있는 이분법적인 것들부터 시작해서 사람 몸의 오장육부, 생년의 난월 난시까지 그 개념은 점차 넓어지고 포괄적이게 되었다. 우주와 자연 만물에는 음양의 이치가 있다는 것이 이 철학이 갖고 있는 포괄적인 의미가 됐다. 현재의 의미로 확대해 보자면, 부와 빈, 성공과 실패 등의 세속적인 의미에도 적용 가능하다. 그렇다면 상대하는 개념 없이 한 쪽의 것만을 취하는 것은 가능할까. 그것이 행복과 불행을 나누는 기준에도 중요하다. 빈곤한 사람이 없다면 부유한 사람이 탄생할까? 겉이 없다면 속은 존재할까? 애초에 이 질문에는 한가지 오류가 있다. 이분법이란 두가지를 빗대어 기준을 두고 서로를 정의함으로 한가지가 없다면 다른 한가지도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이다.
행복을 이분법으로 생각하고 음과 양의 구분으로 둔다면 어느 쪽에 속할까? 그게 음이던 양이던 중요하진 않지만 행복의 반대가 불행인 것만은 그것을 정의하는 언어로 봤을 때 분명해진다. 그렇다면 인생에 불행을 지워버린다면 행복이 가능할까? 그렇지 않다. 자석의 N극과 S극은 상호 그 힘이 균형을 이루고 있다. 한쪽에 힘이 강해진다면 다른 한쪽의 힘도 강해지고, 한쪽의 힘이 약해진다면 다른 한쪽의 힘도 약해진다. 결국 불행을 줄이고 싶다면 행복과 불행이 구성하고 있는 행,불행 전체 파이를 줄여야 한다. 공부하는 인내의 시간과 결과 얻어내는 기쁨은 비례한다. 생각하고 움직이는 행동력과 사회적 지위의 성공 여부도 비례한다. 한 쪽의 것을 지우고 반대쪽만 갖겠다는 것은 욕심이고 이것은 동아시아의 주된 철학인 음양설에 극명히 위반된다. 음양설은 동서양을 포함해 가장 오래된 철학 중 하나다. 인간이 수 많은 세월 간, 수많은 사람과 상황으로 직접 경험해오고 시행착오를 겪어왔던 철학이다. 이것을 위반하고 음이나 양 한 쪽을 취하겠다는 것이 얼마나 몰상식한 일인지는 조금만 생각해보면 알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인간은 무지의 산물이라 이 욕심을 조금만 이용하면 많은 욕심이 붙은 돈을 얻어 낼 수 있다. 쉽고 빠르게 목표를 달성하는 방법은 큰 돈을 벌어다 준다. 많이 먹어도 살빼는 방법이나 조금만 공부해도 성적이 오르는 방법, 급등주를 찾아서 전날 미리 매집을 하는 프로그램 등. 머리는 알면서도 이 유혹을 뿌리치기 쉽지 않는 것은 당연하다. 그렇다면 행복할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여기서 우리가 원하는 것은 '불행을 철저하게 피하고 행복만 취하는 방법'을 이야기한다. 굳이 내가 말하지 않는다 해도 이미 결과값은 추론가능하다. 정답은 '없다' 불행을 피하고 싶다면 스스로 행복이라는 감정을 줄여야 하고, 행복을 키우고 싶다면 불행이라고 생각하는 영역을 감내할 자신이 있어야 한다. 그렇다면 '불교'에서 말하는 해탈이나 열반처럼 행복으로 여겨지는 수행의 정점에는 무엇이 있는 것일까. 해탈이나 열반은 행복을 키우는 방법이 아니라, 불행을 없애는 방법이다. 즉, 행복과 불행 모두를 탐하지 않음으로서 세속에 존재하는 감정을 출렁이는 결박이나 장애로 부터 벗어나는 것이다.
어떤 상황을 마주 하더라도 극하게 기뻐하지도 않고 극하게 슬퍼하지도 않는 초월의 상태를 해탈이라고 하고 이 해탈의 경지의 최고조를 열반이라고 부른다. 이것은 2500년 전 붓다가 발견한 인생의 원리다. 책에 소개된 몇 가지 사례에는 실제로 행복이라고 여겨지는 것 뒤로 불행이라고 생각하는 부분이 존재한다. 보기에 따라 한쪽 부분을 부각해서 볼 수 있다. 즉 우리는 음과 양이 모두 존재하는 하나의 현상과 상황에 대해 일부를 극대화시킨다. 그 감정의 출렁거림에 쉽게 자극받는다. 책 표지에는 '어제보다 더 행복해지기 위한 56가지 마음 훈련법'이라고 적혀 있다. '훈련'이라는 용어는 현대인들에게 쉽게 사용되는 어휘지만 지금 산속이나 오래 전 선인들은 이런 훈련을 '수행'이라고 불렀다. 우리는 살면서 불행이라고 판단되는 몇 가지 사건에 틀림없이 직면한다. 또한 행복이라 판단되는 사건에도 틀림없이 직면한다. 하지만 행복함 가운데 불행에 대한 대비는 필연이고, 불행함 가운데 행복이라는 선물이 필연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면 우리는 감정에 의해 왜곡하는 일련의 사건을 중립적이고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다. 이렇게 어떤 것에 대해 객관적이고 중립적으로 왜곡없이 바라보는 마음을 '긍정'이라고 말한다.
혹자는 '긍정'이라는 단어를 좋은 쪽으로 왜곡해서 생각하는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긍정'이란, 내가 이미 어쩔 수 없는 사건이 벌어졌을 때, 그것에 대해 객관적으로 바라보면서 음의 영역과 양의 영역을 중립적인 입장에서 찾아내는 것이다. 우리는 흔히 실패하는 사람에게 위로의 말로 자주 사용하는 말이 있다.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다.'라고 말해준다. 일리가 있다. 하지만 실패가 성공의 어머니지만 성공 또한 실패를 이어 낫는다. 실패를 통해 성공을 얻고 생사의 삶의 고리가 끊어지는 것이 아니라면 다시 성공은 실패를 낳고, 실패는 또다시 성공을 낳는다. 그 순환고리에 있다. 이렇게 삶의 고와 락이 반복하며 돌도 도는 것을 불교적 용어로 '윤회'라고 부른다. 좋은 일이 있으면 틀림없이 나쁜일이 있고, 나쁜 일이 있으면 틀림없이 좋은 일도 있다. 이미 존재해버린 어떤 사건의 양과 음의 영역을 객관화햐여 중립적으로 바라보고 거기서 양의 영역에 해당되는 부분으로 기회를 찾아내는 것은 우주의 이치를 유일하게 벗어낼 수 있는 인간의 영역이다.
행복의 시크릿은 그렇다. 우리에게 우주나 외부세계가 주는 일종의 자극에서 벗어나 스스로 상황 속에서 양의 부분에서 기회를 찾고 확장하며 불행이라 여겨지는 사건에 행복을 찾아내고 행복이라 여겨지는 사건에서 불행을 찾아내어 어두운 부분을 인정하며 밝은 부분을 바라보는 것이다. 우리 인간이 신이 창조해낸 만물과 우주에서 유일하게 능동적으로 대처할 수 있는 '마음먹기 수행'을 통해 삶을 긍정적이고 밝게 살아가라는 즐겁고 유쾌한 이야기 56가지가 책에 쓰여 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