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족 출신의 간디는 대영제국의 변호사라는 것에 자부심을 갖고 있었다. 카스트제도가 있는 인도에서 천민과 접촉해서는 안된다는 사상을 갖고 있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서로 조화롭게 살아라'라고 말한다. 그는 줄루 전쟁이나 보아 전쟁, 세계 1차 대전 등 총 3차례의 전쟁에서 영국을 위한 참전 신청을 제출했으나, 비폭력 주의를 내세웠다. 조선왕조실록에는 세종 7년(1425년) '우마를 도살하는 자를 수색 체포하여 엄히 금단하게 하라'라는 내용이 있었지만 세종대왕은 고기를 즐겨하는 임금이었고 아인슈타인은 사촌누나인 엘사 로벤탈과 불륜을 저지르고 노벨상으로 받은 상금의 대부분을 전 부인에게 위자료로 지급했다. 역사적인 악인으로 모두에게 기억되고 있는 히틀러는 '역사의식이 없는 사람은 귀도 눈도 없는 사람이다'라는 말을 했다. 명확하지는 않지만 책을 읽는 이유에는 책 뒷면에 가려져 있는 글쓴이의 이중성까지 배우려고 하는 것이 아니다. 비록 거짓말쟁이의 거짓말이라고 하더라도 그것으로 인해 얻을 수 있다면 분명 읽을 만한 가치는 있다.
비록 간디가 스스로 뱉은 말에 이중적인 태도를 취했다고 하더라도 나는 '조화롭게 살아라'라는 그의 말을 따를 것이며, 비록 세종이 본인은 지키지 못하는 국법을 강요한다고 했더라도 그의 말에 동의할 것이다. 비록 아인슈타인이 사생활적인 이중성을 갖고 있고 그가 했던 이야기들에 가식과 인성문제가 있다고 하더라도 상대성이론을 외면하지 않을 것이며, 역사를 말할 자격이 없다 하더라도 나는 그이 말처럼 '역사의식'에 대해 생각해 볼 것이다. 만일 어떤 살인자가 '착하게 사세요'라고 말한다면 말한 사람이 살인자이기 때문에 그 말이 들을 가치 조차 없는 건 아니다. 본질은 누가 말했느냐가 아니라 내가 어떻게 받아들이느냐가 있다. 어떤 사람이 말해도 정의롭다고 생각하는 부분은 정의로 받아들이고 어떤 사람이 말했다고 하더라도 잘못된 부분은 잘못됐다고 말해야 한다.
이준석이라는 사람이 '공정'을 말할 자격이 있느냐?라고 묻는다면 자격이 있으나 없으나 공정은 우리 사회에 중요한 이슈고 비록 그가 담은 이야기가 진심인지, 가식인지는 모르겠으나 사회적으로 공정이 필요하다는 내용이라면 히틀러의 이야기라도 귀 기울여야 한다. 나는 책을 읽고 리뷰를 올린다. 정치적 입장에 대해서는 최대한 감춘다. 사실 '공정한 경쟁'이라는 책의 리뷰에서도 나는 '보수'나 '진보'에 대해 어느 쪽이 옳다고 말하지 안 않고 이준석이라는 사람이 공정한 사람인지, 공정하지 않는 사람인지에 대해 언급하지 않았다. 그저 우리 사회는 공정해야 한다는 그의 말에는 공감한다. 비록 그가 그런 말을 할 자격이 없는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나는 사회는 공정해야 한다는 사실에는 공감한다. 얼마 전 혜민스님의 풀 소유 논란이 이슈화 된 적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혜민 스님의 책에서 배울 수 있다. 나중에 알게 된 저자의 '진실'에 내가 책을 읽으며 느꼈던 감정이 부정해지는 것은 좋지 못하다. 하는 말마다 거짓말투성이에 인생 전체가 범법자인 살인마가 '사람을 죽이지 말아'라고 말하면 우리는 그의 말을 하등 들을 가치 없는 이야기로 치부해야 하는가.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내가 올리는 책의 리뷰에는 핫한 이슈나 정치적인 내용은 가급적 피한다. 굳이 말하면 나는 '김대중', '노무현', '이명박', '박근혜' 대통령 모두 대통령이 될 자질이 있었다고 생각한다. '오바마', '트럼프', 바이든' 모두 대통령이 될 자질이 있었다. 내 정치적 견해를 제외하고 그것이 진실이 아니라면 민주주의의 원칙에 따라 그들은 대통령이 될 수 없었다. 어쨌건 적법한 절차에 따라 국민 다수가 지지했던 시대의 대표다. 내가 당선인을 지지하지 않는다는 건, 내가 소수에 속한다는 것이다. 정치의 본질은 '나라를 다스리는 일'이고 사회질서를 바로 잡는 일이다. 여기에 나 또한 소중한 한 표를 행사겠지만, 내가 지지 하지하지 않는 사람이 당선된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불의라고 정의할 수 없다. 내가 얻고자 하는 정보가 누구 손에 들려 있는가 보다 중요한 것은 그것을 얻어내는 행위다. '너한테 받느니 더러워서 받지 않겠어'라고 하는 것은 결국 파괴적인 생각일 수도 있다. 다시 말하지만 나는 이준석이라는 인물을 지지하기 때문에 이 책의 리뷰를 올린 것이 아니다.
나는 난민 이슈로 말이 많았던 배우 정우성 님의 책을 감명 깊게 읽었고 공인이 정치적 이슈를 만들어낸다는 욕을 먹는 방송인 김제동 님의 책에서도 배울 것이 있었다.
기독교와 불교의 책을 동시에 읽기도 하고
친일 책과 반일 책을 함께 읽기도 하며
앞서 말한대로 혜민스님의 책을 영어와 한국어 책으로 총 4개 권을 소장하고 있다.
보수 원희룡 님과 진보 유시민 작가 모두를 좋아하고
미중 패권 전쟁에서 어떤 중국과 미국 양측의 이야기를 한꺼번에 듣는다.
페미니즘의 이슈가 폭발하게 했던 '82년생 김지영'과 페미니즘이 불공정하다고 주장하는 이준석 님의 책을 동시에 읽고
우리 사회가 살만해지고 있다는 책과 점점 나빠지고 있다는 책을 모두 읽는다.
아침 5시 기상해야 한다는 책과 야행성이 좋다는 책을 동시에 읽고
최근 '강의' 내용에 있어서 논란이 되던 설민석 님의 책도 재밌게 읽고 소장 중이다.
급등주를 찾는 방법에 관한 책과 그런 것들이 모두 바보라고 설명하는 책을 함께 읽으며
요즘 이슈가 많은 세계 최고 부자 빌 게이츠와 아프리카의 삶을 함께 읽는다.
페미니즘에 대해 응원하고 있는 서민 님의 글과 '오만하게 제압하라'라고 하는 페미니즘 책에서도 배울 것이 많았다.
게임이 우리 아이들과 우리 국가 산업을 어떻게 경쟁력 있게 만드는지에 관한 책과 독서력이 정답이라고 주장하는 책도 함께 읽는다.
앞으로의 미래는 미국에 있다는 주장과, 앞으로의 미래가 중국에 있다는 주장을 모두 읽는다.
나는 책을 읽을 때, 저자를 가장 먼저 살핀다. 누가 썼느냐는 분명 중요하다. 하지만 나는 비록 히틀러가 '인종차별은 없어야 한다'라고 말하더라도 그가 말하는 바가 내 주체적인 철학에 맞는다면 논리적으로 비판할 것은 비판하되 수용할 것은 충분히 수용해야 한다고 본다. 이준석이 공정한 사람인지, 불공정한 사람인지는 정확하게 이해할 수 없으나, 누가 말해도 공정이라는 이슈는 필요하고 누가 말해도 '세계평화는 좋다'는 명제는 바뀌지 않는다. 내가 읽은 책의 저자를 추종하기 위해 책을 읽는 것이 아니라, 단지 나에게 득을 줄 수 있는 정보를 얻기 위해 책을 읽는다. 나와 반댓편에 서 있다고 들어 볼 가치도 없다면 이것은 큰 문제가 있다.
독도는 우리 땅이라는 명제가 참이 되려면 '나의 이야기' 뿐만 아니라 왜 일본이 독도를 일본땅이라고 주장하는지에 대한 이해가 필수적으로 필요하다. 단지 일본이 주장하기 때문에 알 필요도 없다는 것은 독단이고 자기 세계에 빠질 위험이 많다. 나는 온라인 상에서 내 정치적 성향을 밝히진 않겠으나, 사법기관의 판단에 의해 불법이라고 정의된 내용에 반하지 않는다면 정책상의 이명박, 박근혜, 문재인, 노무현을 가리지 않고 않겠다. 나는 다만 개인적인 지적 호기심 충족을 위해 책을 읽고 스스로를 계발하고 발전해 가기 위해 책을 읽을 뿐이지, 누군가의 사상을 비판하거나 옹호하기 위해 책을 읽지 않는다. 이것이 독서의 본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