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다보면 본질을 잊는 경우가 있다. 우리 사회에도 있고 내 주변에도 있고 내 오늘 하루에도 있다. 군 입대를 하고 나면 일과를 마치곤 난 뒤에, 전투화를 닦는 시간이 있다. 그 시간에는 무조건 전투화를 닦아야 한다. 전투화를 신었던 날이거나 신지 않는 날에도 무조건 그 시간이 되면 전투화를 가지고 나가서 쪼그려 있어야 했다. 이미 깨끗한 전투화를 들과 대충 10분 정도 닦는 시늉을 하다가 들어간다. 그런 시늉을 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내무반의 평화는 보장됐다. 회사 생활에서 인사 담당으로 일하다보면 '휴가신청서'를 받을 때가 있다. 거기에는 '회사이름'을 적는 곳이 있었다. 그곳에 '(주)XXXX' 라고 적어야 한다. 직원들에게 그런 교육을 한다. 가끔 'XXXX(주)'라고 쓰거나 그냥 'XXXX'라고 쓰거나 '주식회사 XXXX'라고 쓴다면 나머지 해당 신청서는 폐기하고 새로 작성해야 했다. 이유를 모르고 상급자에게 물어보면 그들도 잘 모른다. 이처럼 어떤 본질을 위해 행위를 지속할 때, 행위가 본질을 잊으면 행위만 남은 불필요한 악습이 지속된다.
'출판등록'을 하려고 했던 적이 있다. 출판등록은 허가제가 아니라 신고제기 때문에 누구나 쉽게 등록 할 수 있다. 이런 이유로 우리나라 출판사 숫자 6만 8천개로 는 편의점이나 치킨집보다 거의 두배 가까이 많은 편이기도 하다. 어쨌거나 이처럼 쉽고 많은 출판사를 갖게 된 이유중 하나는 쉬운 정차 때문이다. 인터넷에서 간단한 서칭으로 준비서류 몇 가지를 준비하면 언제든지 등록 가능하다. 나 또한 출판등록 신청을 하려고 시도했다. 인터넷에 나와있는 것과 다르게 공무원은 꽤 많은 걸 요구했다. 그중 임대차등록증의 요구는 조금 이해하기 어려웠다. 실거주지와 출판사 등록지의 주소가 같으면 임대차계약서의 절차는 생략이 가능하다. 또한 거주지가 직계가족의 건물인 경우는 더더욱 임대차 계약서를 갖고 있지 않다. 하지만 공무원은 집요하게 임대차등록증을 요구했다. 가족임에도 불구하고 임대차 계약서를 준비하라고 했다. 또한 임대차계약서를 준비가 완료가 되면 그에 공증을 받아야 한다고 했다. 이 모든 것은 실제 그곳에서 출판업이 가능한지 확인하는 절차라고 했다. 또한 이 절차가 완료됐다고 하더라도 1~2회 정도 실제로 공무원이 장소를 방문하여 점검 후에 등록을 해주겠다는 것이다.
같은 일로 몇 번을 공무원을 만나고 통화를 했다. 그러다 갑작스럽게 일이 많아지면서 결국 출판업등록을 완료하지 못했다. 이런 어이없은 행정을 겪으면서 아무리 공무원에게 말해도 "'메뉴얼'에 적혀 있는 건, 일단 다 하셔야 돼요." 라는 답변만 돌아왔다. 가장 쉽게 본질을 잃을 수 있는 곳은 행정이다. 집단의 규모가 클수록, 본질은 사라지고 행위만 남는 경우가 많다. 카드 결제 후 사인 하는 행위 또한 본질을 잃어버린 행위중 하나다. 도난 방지를 위해 필요하다던 결제 후 사인은 보통 음식점 직원이 하는 경우가 많다. 사인도 아니고 그저 '직'하고 카드 모서리로 긁는 행위를 보면서 "왜? 멋대로 하세요?"라고 따지는 사람은 없다. 되려 '제가 싸인했어요~'라고 말하는 직원에게 '감사합니다'라고 하는 경우가 더 많지 않나 싶다.
본질의 이야기는 이외로도 많다. 본질은 중요하다. 2021년 지금까지 총 내가 읽은 책의 권수는 88권이라고 적혀 있다. 이는 블로그에 포스팅한 갯수를 기준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이 보다 많을 수도 적을 수도 있다. 책을 읽고 포스팅하지 않는 경우도 많기 때문이다. 그런데 곰곰히 생각해봤다. 책을 왜 읽는가? 혹여 본질은 사라지고 읽는 행위만 남아 1년에 읽어 넘기는 권 수만 채워가는 건 아닌가 싶기도 하다. 예전 어떤 유튜브의 업로드 영상 중 "책 많이 읽은 사람일 수록 멍청하다."라는 주제의 이야기를 들은 적 있다. 그의 주장은 그렇다' 다독하는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사람일수록 무지의 열등감을 숨기기 위한 허세일 뿐이다.' 였다. 일리는 있다. 보통 1일 1독을 하거나 1년에 몇 권의 책을 읽었다는 것을 목표로 삼는 경우는 '본질'을 잃어버리는 경우가 많다. 책을 읽는 일의 본질은 숫자를 채우기 위함이 아니다. 책에서 지적 호기심을 충족시키고 거기서 재미를 찾는 것이다. 하지만 본질을 잃은 행위에는 그런게 없다. 최대한 얇고 읽기 쉬운 책을 찾아 그날 목표량을 해치우는 것만 남는다.
물론 그렇게 시작해서 독서의 재미를 찾아 다음 본질로 넘어간다면 그것은 분명 좋은 일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앞서 말한 전투화 닦기 처럼 본질을 잃은 행위가 다시 본질로 넘어가기 위해서는 스스로 자각과 필요성을 깨닳아야한다. 하지만 습관처럼 전투화를 가지고 나가며 대충이라고 닦기 때문에 본질에 대해 깊게 생각해보지 않더라도 전투화는 적당하게 깔끔해져 있게 된다. 그럼 진짜 본질을 생각할 필요를 잊는다.
앞으로 내가 선물받은 책과 읽으려고 산 책들은 꽤 많다. 그중 앞으로 2주 안에 읽을 책들의 리스트는 이렇다. '송휘령 작가님'의 '자작나무 어린이집' '정미숙 작가님'의 '성장하는 오십은 늙지 않는다.', '황준연 작가' 님의 평생 직장은 없어도 평생직업은 있다. 그리고 다음주 부터 읽으려고 생각 중인 '인간관계 착취'와 현재 절반 정도 읽은 '잔잔한 파도에 빠지다'가 있다. 이 책들을 읽으려고 하면서 이런 생각이든다. 대충 읽고 해치우는 행위가 아니라 진짜 독서의 본질에 맞게 배우고 느끼고 사색하자.
5년 전부터, 한국에 자리잡고 와 있다. 그 뒤로 모아 둔 책이 대충 2천 권 정도 되는 듯 하다. 모두 읽었냐고 묻는다면 아니다. 아마 이중 30%는 사놓기만 하고 읽지도 않았다. 정말 읽고 싶어서 구매해 놓고 계속 좋은 책들이 쏟아짐에, 읽지 못하고 있다. 어느 세월에 이 것들을 다 들여다 볼 수 있으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