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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발] 왜 우리는 인간관계로 부터 고통받는가?

인간관계 착취 독후감

by 오인환

세계의 문화권은 크게 두 부류로 나눠지는데, 적도 방향으로 큰 태평양을 끼고 있는 동쪽대륙과 아프리카 대륙을 끼고 있는 서쪽 문화권이 그렇다. 이 둘은 지리적 특성 때문에 기후적 특성이 달라졌다. 태평양을 끼고 있던 동쪽 대륙에는 집중 호우식 장마철이 존재하고 서쪽대륙에는 동쪽에 비해 강수량이 상대적으로 적다. 따라서 1년에 1000mm 이상의 비가 내리는 지역에는 벼를 재배하고, 그 이하의 지역에서는 밀을 재배했다. 벼를 재배하는 지역은 농경지에 물을 대는 관개사업이 필수적이다. 또한 보를 만들어야 하는 토목 공사도 중요했다. 이처럼 동양에서는 여러 사람의 노동력이 필수적이었다. 이런 이유로 벼농사 지역의 사람들은 집단의식이 강하고 반대로 노동 방식 면에서 합심할 필요가 없는 서양에서는 마른 땅에서도 쉽게 자라는 밀농사를 짓게 되었다. 이런 오랜 기간 동안 이어진 삶의 방식은 문화가 되어 동양에서는 집단의식이 강하고 서양은 개인주의가 강해지게 됐다. 실제로 쌀은 단위 면적당 생산량과 인구 부양력이 다른 어떤 곡물보다 높은 편이었는데, 밀 혹은 보리보다 2배 가까운 생산량을 가졌다. 이런 이유로 동양은 과거 오랜 기간 동안 서양에 비해 더 높은 문명 수준을 갖고 있었고 그 것을 근거로 더 복잡하고 세분화된 관계 형성이 필요했다.


Sister를 굳이 말하자면 여자 형제정도로 볼 수 있다. 하지만 동양에서는 여동생과 누나, 언니 등. 누가 부르냐에 따라 상하관계와 남녀 상의 차이를 확실하게 두었다. brother 또한 누가 부르냐에 따라 오빠, 형, 남동새으로 상하, 남녀 차이를 확실하게 구분했다. Aunt는 고모이기도 하면서 이모이기도 하고, 숙모이기도 하면서, 외숙모이기도 하다. 서양에서는 관계 형성에 큰 신경을 쓰지 않는다. '선생님, 오빠, 선배, 사장님,' 등의 호칭이 관계 형성 시 굉장히 중요한 이슈인 동양과는 달리 서양은 사장님이나 직원, 선배, 후배 상관없이 모두 이름을 부른다. 이처럼 지리와 기후는 우리 문화에 큰 영향을 주었다. 이런 과정에서 인간관계는 당연히 동양에게 더 큰 이슈가 됐다.


아들러(Alfred Adler)는 모든 고민은 관계의 고통 속에서 오고, 모든 기쁨 역시 인간관계를 통해 만들어진다고 했다. 그렇다면 관계 속에서 고통받는 이들은 서양보다 동양에서 더 클 수밖에 없다. 어떤 이유에서든 2020년 한국의 행복지수는 61위이고, 일본은 62위, 홍콩78위, 베트남 83위, 인도네시아 84위, 중국 94위를 기록한다. 반면 1위부터 25위까지의 모든 국가는 서양의 국가들이 차지하고 있다. 이유가 어찌 됐던 아들러가 말한 모든 고통이 관계 속에 있다는 것은 이처럼 국가별 행복지수에 간접적으로 들어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생각이 든다. 쌀 생산량이 많은 국가일수록 행복하지 않다는 것은 어쩌면 우리가 너무 많은 관계에 속박되어 개인보다 집단의 이익을 우선시하던 사회와 문명을 비추고 있는 건 아닌가 생각이 든다.

어찌됐건 우리는 모두 주관적 세상 속에 살고 있다. 제주도 중심에 높게 솟아 있는 한라산은 남쪽에서 보기엔 북쪽의 산이고 북쪽에서 보기엔 남쪽의 산이다. 서울에 있는 남산은 조선왕조가 한양으로 천도한 1394년 이후 남쪽에 있는 목면산의 이름을 남산이라고 불렀으며 대한민국의 대부분의 국토에서 보기에 실제로 북산이나 다름없다. 또한 북한산의 이름 또한 한강 이북에 있어 북한산이 되었지만 남산과 북한산의 거리는 남북으로 10km밖에 차이 나질 않는다. 이처럼 관점에 따라 완전히 반대가 되기도 하는 것처럼 관계라는 것은 어디에서 보느냐, 어디를 보느냐에 따라 첨예하게 달라진다. 사람은 시간이 흘렀다고 저절로 성숙해 지지 않는다. 그 말인 즉, 관계형성은 나이가 들었다고 저절로 깨치지 않는다. 누구나 그에 맞는 적당한 경험과 배움이라는 훈련의 과정이 필수적이다.


요즘 우리 사회에 자주 대두되는 용어중 하나는 가스라이팅(gaslighting)이다. 이는 타인의 심리나 상황을 교묘하게 조작해 그 사람이 스스로 의심하게 만듦으로써 타인네 대한 지배력을 강화하는 것을 말한다. 이처럼 우리는 철저하게 개인적인 판단으로 삶을 살고 있는 듯 하지만 관계에 있어 자유롭지 못하며 타인에 의해 스스로의 감정마저 지배되는 폭력에 노출되어 있다. 이 관계라는 것은 현대 사회에서 가족과 직장 등에서 형성되는데 쉽게 말해 자신의 자녀나 사장과 직원들 사이에서도 존재한다. 꾸준히 자신이 원하는대로 상대가 움직이기를 바라는 것은 인간관계 착취다. 마르크스(Karl Marx) 이론에 의하면 착취란 노동계급이 실제 가치보다 낮은 임금으로 자본가를 위해 일하고, 자본가는 노동계급의 성과에 대한 잉여가치를 수탈하는 것을 가리킨다. 우리는 관계에 의해 너무나 쉽게 착취당하고 이것을 스스로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사회심리학에서 프리드먼(Freedman)과 프레이저(Fraser)가 1966년에 제기한 '문간에 발 들여 놓기 기법(foot in the door technique)'이 있다. 처음에는 작은 요구를 하고, 상대방이 수락하면 좀더 높은 요구를 하게 되는데, 이때 상대방이 이 '더 어려운 요구'를 받아들일 확룰이 높아진다는 것이다. 즉 상대방이 뒤이어 제시한(변종) 요구에 순종할 가능성이 커진다. 이처럼 상대를 착취하는 것은 아주 은은하게 조금씩 스며든다.


자녀나 친구에게 조언을 하는 일 또한 이와 비슷한 맥락이다. 사상가 프리드리히 하이에크는 '지옥으로 가는 길은 선의로 포장되어 있다'라는 말을 했다. 사람은 '호의'를 가지고 좋은 이야기를 해준다고 한다. 하지만 이런 선의들은 따지고보면 더욱 관계를 악화시키는 경우가 많다. 우리는 인간이 다른 동물보다 낫다고 말한다. 하지만 우리 사회에서 심심찮게 들리는 부모자신관계의 갈등은 동물세계에서는 일어지 않는다. 부모의 잔소리나 자녀의 일탈 또한 자연에서는 존재하지 않는다. 이 모든 것들은 자신의 기준으로 타인의 행동이나 감정을 착취하려는 노력과도 같다. 매슬로의 욕구 단계이론은 총 다섯 단계로 나눈다. 생리적 욕구, 안전의 욕구, 소속과 애정의 욕구, 자기존중의 욕구, 자아실현의 욕구로 나눠진다. 이중 소속과 애정의 욕구와 안전의 욕구는 외부에 기인한 욕구고 나머지 3가지 욕구는 스스로에 기인한다.


따지고 보자면 관계는 외부에의해 정의된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그렇지않다. '자아긍정'을 할 줄 모르는 사람은 늘 다른 사람에게 무언가를 바란다. 반대로 '자아긍정'을 할줄 아는 사람은 스스로에서 그 원인과 해결책을 찾는다. 진정한 자신감은 '자아 긍정'과 자신을 정확히 아는 것부터 시작되고 노자는 남을 아는 사람은 지혜롭고, 자신을 아는 사람은 명철하다고 말했다. 심리학자이자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대니얼 카너먼(Daniel Kahneman) 박사는 '초점의 오류(focusing illusion)이라는 개념을 제시 했다. 특정한 촛점 하나에 꽂혀서 다른 중요한 부분을 놓치는 것을 말한다. 관계라는 것은 사람과 사람 간에 형성되는 것이다. 이 모든 원인에 상대에게 있다는 것은 초점의 오류와도 같다. 모든 관계에서는 '내'가 중심에 서 있음으로 관계의 문제라는 것은 '나'를 살펴보는 일이 필연적이다. 심리학자 대니얼 길버트(Daniel Gilbert)는 자신의 상상 및 판단력을 과대평가하기 때문에 항상 미래에 후회할 결정을 하게 된다고 말했다. 어쩌면 우리가 생각하는 인간관계의 착취란 상대의 잘못만 탓할 것이 아니라 스스로가 스스로를 잘 아는 것 부터 시작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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