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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현대판 노동자들의 슬픈 반란_달까지 가자

by 오인환


2017년 1월 암호화폐 이더리움의 가치는 9,000원이었다. 다시 2018년 1월 이더리움의 가치가 200만 원을 넘어섰고, 같은해 12월 다시 9만원 대로 떨어졌다. 이 것의 가치가 2021년 5월 다시 530만 원을 넘어 설 수 있었을 거란 예상할 수 있던 사람은 얼마나 됐을까? 누군가는 사행성이 짙은 도박이라고 말하고 누군가는 앞으로 미래를 위한 현명한 투자했다. 암호화폐 시장은 양면이 분명한 분야다. 누구나 마음 먹으면 쉽게 '새로운 코인'을 복제해 사업할 수 있으며 수 십, 수 백 배를 뻥튀기하고 물량을 무책임하게 내던져도 아무런 법적 처벌을 받지 않는 무법의 공간이다. 9천 원짜리를 디지털신호를 구매하고 다른 누군가에게 530만원에 넘기기만 하면 이기는 '나만 아니면 돼'의 공간이다. 소설은 이더리움을 구매한 평범한 흙수저 여사원 셋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일확천금이라고 말하기 소소한 3억의 수익을 얻고 인생이 일 순간에 변하는 이야기다.




3억이라는 돈은 크다면 크고 작다면 작다. 인생이 달라진다고 하기엔 민망한 금액이다. 그들이 인생을 송두리채로 걸었던 리스크에 비하면 터무니없는 금액이기도 하다. 무너진다면 아예 회생불가능한 인생을 감수하고 적금과 보험, 대출을 포함해 '영끌'하고 사이버 자산에 투입시킨다. 사실 그렇게 그들이 얻었던 돈으론 서울에서 아파트 한 채도 살 수 없다. '한탕주의'라고 하는 어감에는 '크게 한 방하고 인생역전 하자'가 아니라, '이것 밖에는 탈출구가 없다.'가 더 강하다. 젊은 세대는 이처럼 '암호화페'에 목숨을 거는가. 암호화폐는 자극적이고 극단적이지만 분명 '자본주의 원리'를 젊은이들에게 학습시키는 효과가 있었다. 수요와 공급의 원리에 따라 자산의 가치가 결정되고 실체없는 자본주의의 거품을 이용해 부를 축적하는 '자본주의 놀이'의 축소판이다.




누군가가 말하길 가상재산을 구매하는 행위는 자신보다 더 큰 바보가 나타나기를 바라는 '바보 게임'이라고했다. 하지만 사실은 모든 자본주의의 원리가 비슷하다. 지난 4년간 서울의 아파트 가격은 93%가 올랐다. 아파트는 어디도 가지 않고 그 자리에 있는데, 심지어 인구는 줄어들고 있는데, 가격은 2배가 올랐다. '아파트'의 본질은 '거주'다. 하지만 '부동산 시장'에서 아파트의 본질은 '거주'가 아니라 더 큰 바보가 나타나 더 비싼 가격으로 사주길 바라는 일종의 '가상 재산'과 같다. 이것은 부동산 거품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다. 자본주의의 원리를 말하고자 하는 것이다. 코스피, 코스닥 상장사들을 보면 도통 뭘하는지 모를 회사들이 하루만에 상한가를 기록하곤 한다. 오전 10시까지 조용하던 회사의 가치가 10시 30분이 되자 30%로 치솟는 현상도 어렵지 않게 본다. 그렇다면 회사의 가치는 30분만에 30%가 오른 것일까. 그렇지 않다. 공급자가 공급량을 조절함으로써 수요자가 요구하는 가격이 오르고 내리는 것은 '애덤스미스'가 말하는 '보이지 않는 손'일 뿐이다. 그렇다면 우리 사회는 어째서 자본의 원리를 이처럼 왜곡되게 설명하는 것일까?




초등, 중등, 고등교육에서 우리가 하던 일의 대부분은 '시킨 일'이었다. 학습방법은 '교사'의 지도하에 이뤄졌다. 목적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숙제'를 한아름 떠안고 방학을 맞이하고 나면, 교육의 이름으로 포장된 '노동'의 시간을 보내곤 했다. 방학 전에 몰아쓰는 '일기'나 의미 없는 '영어단어 10번 쓰기'는 단지 교사의 명령에 복종을 해야한다는 학습일 뿐, 일기의 필요성이나 영어의 필요성에 대한 이해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 이에 대한 보상은 확실했다. 목표량을 채우지 못한 '게으름'에 대한 처벌과 포상을 통해 우리가 학습했던 건, '교육'이 아니라 '복종하라'의 세뇌였다. 사회는 소수의 자본가와 다수의 노동가를 필요로 한다. 사회가 필요한 인재는 주도적인 소수와 수동적인 다수다. 그렇게 '교사'의 권위에 움직이던 이들은 성인이 된 뒤부터 '자본'의 권위에 움직이게 됐다. 자본이 조금 내어주는 일정한 수익에 하루의 거의 절반을 내바치고 산다. 겨우 일상을 유지할 정도의 돈이면 대부분의 노동가들은 물가인상률에도 못미치는 '연봉인상이나 승진' 따위의 소소한 꿈을 갖고 또다시 하루를 기꺼이 자본에 내어 놓는다. 자본을 소유하는 사람과 자본으로 하여 소유 당하는 계층이 존재한다는 것은 노예시대를 불합리하다고 생각하는 우리 시대에 이미 존재하는 노예계급이다.




고도 성장기, 노동의 가치가 충분히 자본을 소유할 여지를 만들어 주던 시기가 있었다. 누구나 열심히 일하면 그만큼의 보상을 얻을 수 있던 시기의 사람들은 도무지 노동으로 자산형성이 불가능한 세대를 이해하지 못했다. '요즘 젊은 것들은 근성이 없어', 노동활동이 자본획득의 기억을 만들었던 윗세대에게 아랫세대는 한심하고, 참을성 없고, 철없어 보일 뿐이다. 이들에게는 '나때는 진득하니 참고 일만했다'. '내가 네 나이 때는 말이야...', '나 때는 말이야...'가 곧 가르침이라고 생각한다. '라떼는...'이라는 유행어가 되어 '꼰대'라는 용어와 함께 풍자 용어가되곤 했다. '젊은이들의 한탕주의'를 꼬집는 윗세대의 풍자로 세대간 불통을 우리는 들여다 볼 수 있다. 최근 정치 변화의 핵심 코드가 '세대'인 것 또한 이를 보면 알 수 있다. 젊은이들이 말하는 '한탕'이란 아버지 세대와 같은 중년 이후에는 적당한 자가 부동산을 하나 갖는 정도니 말이다.




군대생활을 하다보면 '꼬인군번'과 '풀린군번'이 존재한다. 내가 입대할 때, 내무반 70명 중 30명이 병장이었다. 힘든 군생활을 예상하겠지만 3개월이지나자 내무반에 병장은 모두 전역해버렸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짧은 군생활로 선임병사 역할을 하게 됐다. 군대는 '풀린군번'과 '꼬인군번'이 번갈아가며 생긴다. 이는 자대 배치하고나서 구조적으로 생겨나게 된 현상이다. 누군가는 병장계급을 달 때까지 분대 막내로 있지만, 누군가는 입대하고 얼마지나지 않아 고참이 된다. 이런 구조적인 모순에 개인이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다. 최대한 빠르게 순응하고 그에 맞는 현실적인 대안을 찾아야한다.




노동으로 자산을 형성한 아버지 세대는 자산가가 되었다. 자산가는 성실하고 착실한 다수의 노동가를 필요로 한다. 이제 막 자본가가 된 윗세대는 젊은 세대의 노동력을 착취해야 한다. 비록, 자신은 다수의 부동산을 소유하거나 젊은 시기, 두자리 예적금 이자 시대를 살았음에도 불구하고 젊은 세대에게는 1%짜리 예적금 이자를 착실하게 모으면 마치 자신과 같은 자산가가 될 것이라고 조언한다. 그런 그들이 노동에 의심을 품는다면 이제 자산가가 된 이들의 노동의 질에 현격한 문제가 생긴다. 윗세대는 모순을 알면서도 그들에게 착실한 노동가의 모습을 기대한다. 세대 간의 불통과 사회현상에 대해 젊은 세대는 박탈감을 느낀다. 앞서말한 군대 이야기처럼 개인의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 마치 인구 피라미드에서 젊은 사람의 숫자가 줄어드는 것 처럼, 제도와 법, 경제 그 어떤 해결책도 시원하게 해결하지 못하는 구조적인 문제도 존재하는 법이다.




이 소설은 흙수저 젊은 여성들의 평범한 일상이 '이더리움'이라는 암호화폐를 만나고 달라지는 이야기다. 고도 성장기 우리는 IMF를 제외하고 큰 리스크없이 '성장'의 열매를 맛보곤 했다. 오늘을 열심히 살면 내일은 성장할 거라는 기대는 지속성을 주었다. 현재 젊은 이들이 투자하는 암호화폐는 당장 오늘 2배가 오르고 내일은 반토막이 되는 위험성 자산이다. 젊은 세대는 현 시대를 만든 윗세대를 탓한다. 하지만 이는 단순 구도적인 문제일 뿐이다. 머리를 골똘하게 싸매도 나오지 않을 문제다. 이들에게는 성장의 경험은 존재하지 않는다. 앞으로도 고도 성장은 존재하기 힘들다. 비록 리스크를 갖더라도 유일한 탈출구라고 믿는 암호화폐시장에 뛰어들게 된다. 암호화폐시장이 앞으로 어떻게 될 지는 모른다. 다만 '시킨 이에 충성을 다하면, 달콤한 보상이 생긴다'라는 학습을 벗어나, 판을 깨고 스스로 리스크를 감수하는 것은 자본가에게 필요한 일이기도 하다. 어쩌면 단순히 암호화폐의 등락으로 화폐가치가 오르고 내리고를 떠나 이 사회현상은 우리에게 어떤 기억을 만들고 학습하고 있는가. 생각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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