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이 잘 됐으면 좋겠다. 전제는 '한국이 훨씬 더 잘 됐으면'이다. 상대를 이기고 싶다면 상대가 약해지기를 기다리지말고 스스로 강해지는길을 택해야한다. 최근처럼 한일 감정이 좋지 않은 적이 없다. 'NO재팬'이 공공연하게 구호로 사용되는 요즘, 나도 굳이 일본 제품을 찾아 쓰진 않는다. 격세지감이라 할 수 있는 게 있다면, 요즘 우리에게 '일본제품'이란 '찾아 써야 하는 제품'이다. 일본의 제조업의 위상이 예전만 하지 못하다. 나 또한 예전만큼 일본에 대한 신뢰가 많지 않다. 굳이 같은 제품군이면 국산을 사용하지 일제를 사용하지 않는다. 여기에는 '애국심'이 포함되지 않는다. 그저 현명한 소비자로써 일본제품은 경쟁력이 없다. 일본이 경제적으로 미국의 70%까지 쫒았던 기간이 있다. 당시 일본의 위상은 어마 어마했다. 그 뒤로 언론에서 자주 접하는 말은 '잃어버린 10년... 잃어버린 20년... 잃어버린 30년...'이다. 하지만 굳이 생각해 보자면 이제 곧 잃어버린 40년을 바라보는 일본의 경제를 다시 봐야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해야한다. 일본의 경제의 불황은 '잃어버린' 것이 아니라 어쩌면 '반짝'에 가까웠다. 일본 패망인 1945년 뒤로, 80년이 흘렀다. 이 중에는 세계경제를 휘두르던 경제 호황인 시기도 있었지만 이젠 불황인 시기가 더 길질 판이다.
글의 제목은 많은 한국인들로부터 비난받을 만하다. '일본이 잘돼야 하다니!'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난 일본이 잘 됐으면 좋겠다. 모두가 아닌 척하지만 우리는 '동남아' 혹은 '아프리카' 사람들에 대한 일종의 편견이 존재한다. 물론 분명하게 사라져야 할 이런 선입견이 존재하는 것은 '그 지역'이 갖고 있는 이미지 때문이다. 아주 오래 전, 동양이 쥐고 있던 패권이 산업혁명 이후로 유럽으로 넘어갔다고들 말한다. 하지만 21세기 현대에 유럽과 아시아의 GDP는 역전됐다. 드디어 아시아로의 경제 패권이 넘어가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여기서 일본이라는 거대 경제 국가는 경제가 축소되고 있다. 이성적으로만 보더라도 일본의 경제는 회복 불가능한 수준으로 엉망이다. 나는 일본의 경제가 앞으로도 꾸준히 좋지 못할 것이고 얼마 지나지 않아 모든 면에서 한국에게 추월 당할 것이라고 확신한다. 여기는 애국심이라는 감정적인 마음이 들어가 있지 않다. 많은 사람들이 일본의 몰락을 환영할 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웃국가의 몰락은 다른 이웃국가에게 득이 될 리 없다. 옆나라에 전쟁이 터져 전쟁 수혜를 받았다는 이야기를 종종 듣곤 한다. 전쟁 특수만큼 우리도 중국과 일본이 경제 대국인 특수도 분명하게 봤다.
일본의 경제가 회생이 불가능하다는 것은 알만한 사람은 모두 아는 사실이다. 하지만 일본의 경제 수준이 매우 좋지 않게 됐을 경우 우리는 굉장히 좋은 무역 파트너를 잃는 샘이다. 또한 원래 관광 수익의 대부분은 이웃국가로 부터 생기는 법이다. 만약 일본의 경제가 좋지 못하게 된다면, 옆나라인 우리의 치안도 좋지 않게 될 것이다. 대다수의 미국인이 멕시코 때문에 치안이 좋지 못하다는 인식을 갖고 있는 것과도 같은 이치다. 사실, 우리가 일본을 경계하기에 이제 더이상 일본은 한국에 큰 위협이 되는 나라는 아니다.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났을 때, 조선이 일본에게 침략을 당했던 본질을 살펴보자면, 일본은 막 통일을 끝냈던 시기이자, 꽤 위협적이던 시기다. 이처럼 상대국이 위협적이던 시기에는 분명 경계를 늦춰서는 안된다. 하지만 현재 일본의 자위대는 기본적인 군사 훈련 조차 되지 않는 공무원들이 많은 상태고 군비리가 한국에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많은 나라다. 우리가 경계해야 할 상대는 일본보다는 '중국' 쪽이다. 그렇다고 일본에 대한 경계심이 불필요하다는 것은 아니다. 다만, 과도한 반일감정의 소모로 인해 보이지 보지 못하는 와중 성장하는 중국은 실제 위협이 될 수 있는 국가다.
최근 공산당 창당 100주년 행사에서 중국의 야욕이 표면위로 들어난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중국을 견제하던 강력한 세력은 '한미일 삼각동맹'이다. 중국 공산당은 스스로의 패권 확장을 위해 '한미일 삼각동맹의 와해'는 필수불가결하다. 어째서 중국이 미국과 패권전쟁을 하는 중요한 시기에 한국과 일본은 분쟁이 일어나고 있는가. 이는 다시 생각해봐야 할 문제다. 나는 중국을 좋아한다. 중국의 엄청난 잠재력에 대한 확신을 갖고 있다. 하지만 이는 중국 공산당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며, 내가 일본을 좋아하는 것은 일본의 극우 정권을 좋아하는 것이 아니다. 그들의 정치는 분명 위협적이고 불편한 존재들이다. 철천지 원수 같은 오나라와 월나라도 같은 배를 타고 있다면 같은 일단은 마음을 함께 한다는 '오월동주'처럼 '일본'의 힘은 아직 '적'으로 두기는 위협적이다.
사실상 일본은 러일전쟁과 청일전쟁을 빼곤 국운을 건 국외싸움에서 이긴 역사거 거의 없다. 우리를 식민지화 시켯을 때 조차 일본은 전쟁이 아닌 방식이었다. 이처럼 섬나라에서 조용하게 내적 성장을 하다 갑작스럽게 그 발톱을 들어내는 야욕은 고양이과의 특성이다. 조용히 있다가 단숨에 적의 목숨을 끊어내는 것처럼 어쩌면 평소에는 조용하다가 결정적인 순간에 본성을 드러내는 것처럼 일본인의 모습은 알다가도 모른다. 조용 조용하고 남에게 폐끼치는 것을 무섭게도 싫어하는 일본은 우생보호법에 따라 청각장애인이이나 기타 장애인들에게 국가가 강제로 불임 수술을 시키는 일도 서슴치 않았다. 우리나라와 같으면 전국민이 들고 일어설 이런 사건에 일본은 굉장히 조용하게 넘어간다. 매우 능력있는 일부 엘리트가 다수의 수동적인 국민을 다스리던 군국주의 국가였던 역사를 수 천 년을 지속해오던 일본의 모습은 수차례 정부를 위해 총칼을 들고 일어난 역사가 길었던 우리와 크게 다르다.
이 책은 일본에 대한 '반일'스러운 부분이 꽤 많지만 비난이 가득하진 않다. 우리가 몰랐던 일본의 어두운 부분을 보여주며 갖고 있던 환상 중 일부가 사실이 아니라는 사실을 자각한다. 한일관계에 대해 자세한 입장이 없었더면 이 책 한 권만 읽는 것은 위험할 수도 있다. 이 책에 대한 내용을 균형있는 시선으로 보기 위해선 여러 권의 다른 시각의 책을 함께 읽는 것을 추천한다. 다만 이 책이 그닥 나쁘다고 할 수만도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