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제주에 대한 이야기_어머니의 루이비통

by 오인환

제주어:

'패랭이라도 썽 뎅기주 경 탕 안 아프쿠냐'

(밀짚모자라도 쓰고 다니지 그렇게 타면 안아프니?)

어린 시절 제사나 명절을 지낼 때면 롤케익과 환타, 과자를 마음껏 먹을 수 있었다. 이 문화가 조금 독특하다는 사실은 내가 군입대를 하고 난 뒤 였다. 내 어린 시절인 제주 제사상에는 환타와 롤케익, 카스테라를 포함해 달달하고 맛있는 음식들이 올라왔다. 이런 문화를 보고 '제주의 조상'들은 '입맛이 신식인가 보구나' 하고 농담하는 분들도 많았다. 왜 그런지에 대한 고민은 하지 않았다. 그러다 나중에서야 그 이유를 알게 됐다. 현무암 제질의 토양인 제주는 옛부터 쌀농사가 어려운 지역이었다. 고로 '논'이 아닌 '밭'에서 재배되는 '보리'가 주식이었다. 제주에는 쌀이 귀하기 때문에 보리나 밀, 콩 등을 재배했다. 1980년 대까지 제주인들의 주식은 보리였으며 당시의 제주농가의 주 소득 작물 또한 보리였다. '제주맥주'는 유명하다. 밋밋한 맛에 '소맥'의 재료 정도로 사용하는 우리나라 맥주와는 다르게 제주의 맥주는 그런 의미에서 유래와 역사적 정통성이 있는 음료이기도 하다. 쌀이 귀한 제주는 '떡' 보다 '빵'이 구하기 쉬웠다. 제주는 그런 이유로 빵을 만들어 제삿상에 올린 것이 었다. 제주인의 특징은 섬지역의 특성처럼 보수적이기도 하지만 매우 현실적이고 실용적이다.

제주도민이 실용적인 이유는 아마 오랜 기간 척박한 환경 속에서 살아 온 탓이 강할 것이다. 제주는 토양이 척박하다. 돌이 많고 물을 대기 쉽지 않다. 이런 제주는 예로부터 정치범들의 유배지이기도 했다. 내륙과 널리 떨어진 지리적 특성과 더불어 바람 많고 변화무쌍한 기후적 특성이 제주인들의 성격을 길들였다. 척박한 땅과 기후에 적응해야 하는 제주인들은 투박하지만 외지인에 대해 막연한 동경도 있다. 광해군을 비롯해 추사 김정희를 비롯해 대학자와 정치적 거물들이 제주로 유배를 왔다. 그들은 제주도민들에게 학문을 가르치기도 하고 견문을 넓혀주기도 했다. 유별나다는 서울 강남 못지 않은 교육열로 지금도 제주도는 전국 수학능력평가 시험의 평균점수가 가장 높은 지역 중 하나이기도 하다. 제주 영어 마을에 위치한 국제학교의 인기가 높은 이유도 같은 이유일 것이다. 4.3사건 이후 다수의 제주인들이 일본으로 도피했던 역사도 있다. 제주의 역사에서 일본은 다른 대한민국의 도시와는 다르게 조금 더 특별한 유대관계가 있다. 다수의 재일교포는 그 출신이 제주인 경우가 많다. 또한 제주인들은 국제 결혼을 통해 일본과 많은 교류가 있었다. 이런 독특한 문화와 감정은 산업이 먼저 발달한 일본의 문화를 쉽게 흡수하게 했다. 제주인들은 당시 세계 최강국이던 일본의 문물과 문화를 쉽게 흡수하고 받아 들였다.

어린시절 어머니를 보면 항상 먼저 드는 생각은 '실용적'이라는 단어다. 실용적이라는 말은 '본질'의 의미를 알고 있다는 의미와 같다. 격식과 절차보다 실용적인 것을 따지는 문화는 굉장히 합리적인 선택을 할 수 있도록 한다. 가령 전국에서 전기차 보급률이 가장 높은 지역이 제주라는 점과 1인당 자산수준이 전국 최상위라는 것을 보자면 어쩌면 제주인들의 실용적인 문화가 현대의 제주를 만들고 앞으로의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한다. 어린시절 학교 선생님 중에 과수원을 하고 있지 않은 선생님은 없으셨다. 은행을 가면 일반 은행원 중에도 과수원이 없는 사람들이 없었다. 농협이나 새마을금고에 예금하시던 부모님을 따라갔던 나는 항상 직원분과 '농약'과 '비료'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시는 부모님을 보곤 했다. 모두가 그렇다고 분명히 일반화 할 수는 없다. 그러나 분명 제주인들은 주말에는 과수를 돌보고 주중에는 급여 생활을 하며 토지를 소유하는 자본가이자 노동을 하는 노동가의 두 모습을 가지고 있었다. 제주의 정낭 문화는 제주 뿐만 아니라 제주를 위로 하는 여러 남태평양 및 동남 아시아 지역에서 발견된다. 돌 기둥에 3개의 나무 기둥을 어떤 모양으로 끼웠는지를 통해 다른 사람들과 소통했다.

그들은 3개의 기둥 한쪽을 모두 내려 놓는 방식으로 손님에게 들어 와도 좋다는 의사를 표현했고, 두개만 끼워 놓음으로써, 잠시 외출한다는 표현을 했으며 모두 끼워 놓음으로 오래 집을 비워 두겠다는 의사를 표현했다. 현대의 돌과, 바람, 여자가 많은 제주 삼다와 더불어 도둑, 거지, 대문이 없다는 삼무는 제주인들의 신뢰문화가 얼마나 잘 형성이 되어 있는지 알 수 있게 한다. 화산섬인 이유로 돌이 많고 바람이 많은 특성은 제주를 대표하는 상징이기도 하다. 또한 여자가 많다는 것도 제주의 상징이기도 하다. 지금은 어찌 됐는지 모르지만, 내가 초등학교를 다니던 시기에는 항상 남자보다 여자아이의 숫자가 많아 학교에서 정한 '남녀 짝궁' 문화에서 짝을 갖지 못한 여자 아이들끼리 짝도 꽤 많았다. 제주의 여자가 많은 이유는 배를 타고 나간 남편이 돌아오지 않아서 그렇다는 이유도 있다. 제주의 여자는 남편이 배를타고 나가면 집안 살림부터 밭농사까지 책임지곤 했다. 그런 문화적 이유는 여성들의 생활력을 강하게 만들었다. 제주에는 '요망지다'라는 말이 있다. 정확히 표준어로 바꿔 부를 말은 없으나, 굳이 바꿔보자면 '똑부러진다' 정도로 바꿀 수 있다. 여성이 생활력이 강한 문화 탓에 제주의 여성들은 '요망지다'라는 표현이 적합해보인다. 다만 남성의 경우는 남자가 귀한 탓에 조금 유순하게 자라는 탓이 있는 듯하다.

책은 내 고향의 바로 옆에 거주하는 '송일만 작가'님의 글이다. 나와 나이차이는 분명하게 있지만, 정서적으로 가깝게 느껴지는 이유는 아마 비슷한 지역에서 추억을 쌓았기 때문일 것이다. 지금도 쉽게 들리는 제주도 사투리는 글로 볼 기회가 많지 않다. 책에서 문자로 접하는 제주도 사투리는 몇 번을 머뭇하고 돌이켜 봐야 겨우 이해가 가능하다. 그런 이유로 속독도 불가능하다. 책은 제주의 언어가 다수있고 그 번역을 함께 사용해 적혀 있다. 제주도의 말에 호기심이 있고 문화에 호기심이 있는 분들은 읽어봤으면 좋겠다. 제주의 여성, 어머니, 문화를 함께 볼 있는 좋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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