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 시간이라는 착각

by 오인환

과거와 미래에 집착하면 현재는 아득하게 멀어진다. 단 한번도 현재를 살아보지 못하고 생을 마무리하는 수많은 사람들은 시간이라는 착각에 빠져 생을 소모하는 사람이 많다. 오지 않은 미래를 걱정하고 지나간 과거를 놓지 못하여 현재를 과거와 미래의 중간의 어느 언저리라고 착각하는 삶은 다시 오지 못할 진짜 생을 인지하지 못하고 죽게한다. 단순히 지구가 태양을 한 바퀴 도는 동안, 지구에서 보이는 달의 모양이 바뀌는 주기를 구분지어 12개로 나눠 놓은 시간이라는 개념은 이집트, 수메르, 인도, 중국 등의 고대 문명에서 농사를 짓기 위해 개발한 인간의 상상속 관념일 뿐이다. 시간이 흐른다는 개념은 그저 수많은 현재의 순서 배열에 지나지 않는다. 과거의 나와 현재의 내가 따로 존재하고, 현재의 나와 미래의 내가 따로 존재한다는 착각에 휩싸이게 되면 아직 다가오지 않았지만 이미 존재할 미래에 대한 불안감은 커져간다. 자신의 미래에 대한 불안한 마음을 갖고 있는 사람들은 예지력 있는 이들에게 자신의 미래를 점쳐 본다. 현재의 자신이 할 수 있는 능동적 대처에 무심하고 그저 이미 주어진 미래에 수동적으로 받아들인다는 '운명론'을 나는 크게 신뢰하지 않는다.

산 위에서 흐르는 물이 밑으로 내려와 바다에 만나는 것은, 그 물이 바다에 만나게 될 미래가 정해져 있기 때문이 아니라 그저 위에서 아래로 흐르는 현재의 연속적 순서가 진행됐기 때문이다. 나가 어디로 시작해서 어떤 방향으로 흐르고 있는가는 현재 내가 어떤 중력(이끌림)의 영향을 받고 있는가. 내 위치가 어디에 있으며 순리라는 것은 어디로 작동 되는가에 있다. 그것의 정답은 과거나 미래라는 고대 인간이 만들어 놓은 농사짓기 수월한 관념 속에 갇혀 있는 것이 아니라 이미 그 순리를 타고 흐르고 있는 '오직 지금'에만 존재한다. 삶은 지금도 60분, 24시간, 12개월처럼 12진법, 60진법을 기준으로 생각하는 틀로 고정되어 있지 않다. 10년 전이나 0.1초 전이나 큰 덩어리로 온전히 나로 존재하며 '지금'의 범위를 넓히고 보면 어제의 나도, 10년 전의 나도, 20년 전의 나도 그저 현재의 나일 뿐이다. 10년 후의 나와 20년 후의 나도 온전히 현재의 나일 뿐이며 내가 '지금'이라는 언어가 굳혀놓은 '오늘', '최근 1년', '근 2~3년'이라는 관념을 단순히 확장 시키고 넓힐수록 과거와 미래가 그저 현재라는 하나의 덩어리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불안은 미래에서 오는 것이고 불행은 과거에서 오는 것이다. 과거와 미래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만 깨달아도 불행과 불안은 사라진다.

시간은 착각일 뿐이다. 날짜 변경선의 좌측에 있는 국가들은 세계에서 다른 나라보다 더 먼저 하루를 시작한다. 단지 '동시'라는 관념에도 '시차'가 발생하여 시계를 줄였다. 늘였다. 하는 일에 거부감이 없는 시대를 살면서 어제의 나와 미래의 나를 구분 짓는 일은 참으로 어리석다. 뉴질랜드를 거주할 때, 섬머타임을 경험한 적이 있다. 대학 강의를 들으러 학교를 갔는데 학교에 강의실에 아무도 앉아 있지 않은 것이 국가적으로 한 시간을 늘리고 줄였다는 이유 때문이라는 사실을 알고 시간이 가진 철학적 의미의 허무함이 느껴졌다. 브리티시 항공사는 이미 해가 져서 깜깜한 런던에서 출발하여 뉴욕에 도착하여 노을을 볼 수 있는 콩고드를 취항시키면서 ' 떠나기 전에 도착하라'라는 슬로근을 내걸었다. 이미 해가 진 후에 출발을 한 비행기가 지구의 자전 속도보다 더 빠르게 비행하여 뉴욕에 도착했기 때문에 승객들은 실제로 비행기를 타고 떠나기 전, 보다 먼저 이미 도착해 있는 아이러니한 여행을 하게 됐다. 승객들은 이미 져 있는 태양이 다시 떠오르는 걸 보게 됐고, 출발한 시간보다 더 빠른 시간에 도착하는 특이한 경험을 하게 된다. 과연 우리는 시간을 거스르는 것일까.

후회되는 과거는 많다. 오지 않은 불안한 미래도 있다. 하지만 이 관념에만 존재하는 허상들은 유대교에서 말하는 '사탄'과도 같다. '사탄'이란 말은 현대에 오면서 그 의미가 많이 변질되었으나 문자 그대로 보자면 '방해자(훼방자)'라는 뜻이다. 이 존재는 '하나님(순리)'에 대적하게 인간을 끊임없이 유혹한다. 가만히 있으면 불안에 빠지고 비관에 빠지고 부정적인 생각들에 사로잡히게 되는 인간 뇌의 '디폴트 값'이다. 이런 유혹에 사로잡히지 않기 위해선 떠오르는 부정한 관념을 떨칠 수 있게 왼쪽 뺨을 사정없이 갈기거나 내가 잡고 있는 불순한 유혹의 뿌리를 살펴보는 '명상'과 '기도'가 효과적이다. 사람은 누구나 후회를 하고 불안해 한다. 하지만 그것은 과거와 미래에서 오는 것이 아니고 그 둘은 존재하지도 않으며 끊임없이 이어져 있는 현재의 순서배열에 있을 뿐이다. 그것을 바로잡을 유일한 방법도 현재에 있고 그 과오를 인정하고 끊어낼 수 있는 유일한 순간도 오직 '지금'이고 '여기'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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