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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농담처럼 시작하지만 운명처럼 끝나는 비극

콜카타의 세사람 독후감

by 오인환

이 인도소설은 마치 농담같은 가벼운 일로 시작한다. 주인공 지반은 페이스북에서 글을 하나 남긴다. 별로 크게 위험하다 싶지 않은 가벼운 이 행위는 그녀의 운명으로 바뀐다. 이 운명은 지반이 태어나기 전 부터 오랜 기간 쌓여 온 인도의 사회, 문화, 부패가 함께 하며 비극이 된다. 페이스북의 글 내용은 별 내용이 아니다. 인도의 어느 소외된 지역에 살던 주인공 지반은 낮은 계급층의 여성이다. 그녀의 동네에 기차역 폭발 사고가 일어났다. 그녀의 하루는 자신에게 온전하기도 빠듯하다. 아무도 그녀의 글에 '좋아요'를 누르지 않는다. 지역 기차역 폭발 사고에 관한 글에는 수많은 '좋아요'가 달린다. 그녀는 짧은 글을 기입한다. 그리고 '입력' 버튼을 누른다.

"경찰이 우리 같은 평범한 사람들을 돕지 않는다면, 그냥 지켜본다면 정부역시 테러리스트라는 뜻 아닌가요?"

그렇구나. 싶은 소설 초반 몇 장에 평화로운 여성이 사회 문제에 대해, 생각없이 단 글 뒤로 이야기는 미친듯이 달려가기 시작한다. 평범한 일상은 조금씩 무너져 내린다. 지반은 자신의 했던 행동으로 그녀는 기차테러의 주범으로 몰린다. 체포되고 재판 받는다.

이처럼 한 여성이 언론과 계급, 정치의 희생양으로 재빨리 빨려들어가는 동안, 그녀에 연결된 두사람이 시선이 나온다. 지반에게 영어 수업을 받던 히즈라 계급의 러블리와 지반의 학교 체육선생님이 나온다. 독자는 안다. 지반이 결백하다는 사실을 이를 모두 지켜보고 있는 독자는 지반의 상황에 몰입하며 답답하고 억울함을 함께 느낀다. 주변에 도와 줄 법한 인물의 내적 갈등과 상황을 들여다 보면서, 혹시 어떻게 되진 않을까. 희망을 품어본다. 여기에는 여성과 계급, 부패가 끊임 없이 등장한다. 이 커다란 큰 흐름 중에는 지반에게 영어 수업을 받던 러블리의 작은 흐름도 비슷하게 흐른다. 그녀는 연기를 하고 싶어한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를 A급과 B급 중, B급으로 분류를 한다. 거대 자본과 힘이 있는 사람들이 명령은 무조건 복종해야 한다. 영화에 출연하는 단역들은 그 영화에 어떤 형태로든 함께 하기 위해서 이해하지 못하는 기다림이나 부조리를 인내해야 한다. 그마저 싫다면 영화에서 'B급 단역 배우' 쯤이야 빼어도 문제 되지 않는다. 마치 엄청난 인구이 인도라는 무대에서 큰 흐름에 저항감 있는 것들은 그저 걷어 내면 된다는 식의 인도사회를 비판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지반은 빠져나갈 길이 없다. 잠깐 보이던 희망도 모두 속임이고 억울함 뿐이다. 나를 도울 수 있을 것 같던 작은 희망도 커다란 흐름을 저항하지 못해 맥없이 꺾인다. 빠르게 빠르게 진행되던 소설의 전개가 후반이 되면서 난데없이 더 빠른 속도로 진행된다. 속도감 있는 영화 한편을 보는 것 처럼 흥미롭고 다시 괴롭기도하다. 인도 사회의 어두운 부분을 충분히 보면서 우리나라의 여러 영화가 생각이 났다. '기생충', '부당거래', '살인의 추억' 등 우리사회는 과연 어떠한가. 물론 우리사회는 조금 더 건강하다. 대통령과 정부에 관한 비판과 비난은 유튜브, 인터넷 신문, 커뮤니티에 어느 곳에서도 쉽게 볼 수 있다. 하지만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우리 사회에서도 충분히 일어나고 있는 일이다. 어쩌면 지반이 겪었던 운명의 흐름은 우리 7~80년대 사회와 비슷할 것이다. 1997년 12월 대한민국의 마지막 사형수가 처형됐다. 그 뒤로 20년이 넘도록 우리나라는 사형을 시키지 않는다. 지금도 사형에 대해 찬반 논란이 많다. 증거가 확실하고 자백까지 있는 극악무도한 사형수를 국민의 세금으로 부양해야 할 가치가 있는지를 묻는 사람도 있는 가하면, 국가의 공권력이 국민의 생명을 앗아가도 괜찮은가. 혹은 부당하게 공권력에 의해 살해 당하는 무고한 시민이 한 명이라도 생기는 것이 과연 합당한가에 관한 내용이다.

우리나라의 수감시설은 '감옥'이 아니라 '교정시설'이다. 그 시설의 한자 뜻을 그대로 풀어보자면 矯(바로잡을 교)와 正(바를 정)을 사용한다. 우리나라는 수감자들을 교화시켜 사회에서 다시 재역할을 할 수 있도록 기회를 주는 바에 촛점을 맞추고 있다. 그들에게 운동을 시키고 청소를 시키며, 책을 읽게하고 종교활동을 하게 한다. 한때 감옥(監獄)으로 불리던 곳은 '옥'에 가두고 감시하는 곳이었다. 여기에는 교화의 느낌이 전혀 없다. 많은 사람들이 형기가 짧고 잡으면 바로 풀어주는 우리나라의 이런 법체계에 문제가 있다고 비판한다. 어쨌건 우리나라의 상황에 대한 이야기를 접어두고 다시 인도소설로 들어가보자면 인도는 사형제가 아직 존재한다. 인도는 작년 한에 4명이 사형 집행됐다. 전 세계적으로 보자면 2020년 사형 집행건수가 가장 많은 국가는 중국이다. 중국은 2020년 한해 동안 1천 건 이상의 사형이 집행됐다. 이는 추정치일 뿐 중국은 매년 수 천 명의 사람을 처형하는데 이는 국가 기밀로 분류되어 있어 정확하게 알려진 바는 없다.

소설의 흐름을 보자면 낮은 계급의 누군가가 희생한다면 대중의 관심과 화는 '마녀사냥'을 그에게 쏠린다. 국가는 언론와 함께 사건을 빨리 종결 시키고 사건을 마무리 시키면 '마녀'를 처형하고 사회 정의를 구현하는 평화로운 국가로 이어진다. 아이러니하고 모순적인 국가의 존재 목적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게 되다. 언론은 정직해야하고 재판은 공정해야하며 국가는 소속개인을 보호해야한다. 마치 자신들이 지은 죄를 씻어내기 위해 죄없는 소나 돼지 같은 희생양의 목을 걸어 죄악을 씻어내고 다시 똑같은 일을 반복하는 사회가 되지 않기 위해 어쩌면 조금 더 문화적인 방식으로의 사회적 변화가 꾸준하게 있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소설은 재밌고 흥미롭고 생각할 거리기 많은 소설이었다.

*사형제도의 의견이 아니라 소설에 대한 느낌점으로 봐주셨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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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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