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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 왜 내부적인 변화가 더 중요한가.

by 오인환

학원업을 하게 됐다. 사업자에 출판업이 함께 신고되어 있다. 어쨌거나 '업'에서 '수익성'을 생각하지 않는다면 거짓말이다. 하지만 '교육업'이나 '출판업'은 부가가치세 면세 사업이다. 이는 공익성이 있는 사업에 대해 소비자의 세부담을 덜기 위해 실시한 제도다. 면세사업을 한다는 것은 다시 보자면, 공익적인 부분에 일부 역할을 하고 있다고 봐야한다. 농업, 교육업, 출판업 등 공익적인 일을 한다는 것에는 특별한 직업의식이 필요하다. 인터넷을 켜면 유튜브에 수많은 스타강사들의 강의가 공짜로 나와 있다. 자신의 강의에 자부심을 갖고 있다고 하더라도 그들과 경쟁하는 것은 현명한 일이 아니다. 사실 역량있고 능력있는 선생님에게 배우는 것이 좋을 것이라는 착각에 빠질 수도 있지만, 좋은 선생님에게 배운다고 좋은 실력을 갖는 것은 아니다. 외력에 의해 깨침을 당하는 것은 그닥 현명한 방법은 아니다. 사교육에 대한 안좋은 인식도 이런 부분에서 기인하고 있지 않은가 생각한다. 1642년부터 1649년 사이 영국에서 왕당파와 의회파 사이에 내전이 벌어진다. 흔히 이를 청교도 혁명이라고 부른다. 왕권에 대한 도전은 당시에 '반란'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역사는 청교도 혁명과 프랑스 혁명을 '반란'이 아니라 '혁명'으로 칭하고 있다.

중학교 교과서를 보면 '흥선대원군'에 대한 평을 이렇게 볼 수 있다. '보수적이고 시대에 맞지 않은 폐쇄적인 정치인'. 흔히 우리나라의 근대사가 어두운 이유가 서구 문물을 늦게 수용한 '흥선대원군' 때문이라고 탓한다. 하지만 나의 생각은 철저하게 반대다. 서구의 산업구조가 급격하게 바뀌고 정치체제가 바뀐 것은 외력이 아니라 내부의 혁명들에서 부터 시작했다. 영국에서 시작한 산업혁명이 영국의 산업구조를 변화시켰다. 또한 청교도 혁명과 프랑스 혁명은 내부적에서 시작하여 유럽의 정치구조와 체제를 변화시켰다. 단순히 외부에서 들어오는 문물을 늦게 개방하느냐, 빨리 개방하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내부의 구조적 문제를 스스로 해결하려는 노력이 있었느냐의 문제다. 산업혁명이 일어나기 위해선 '농업생산량'이 증가하거나 '국가 인구가 감소'하거나의 변혁으로 잉여 생산물이 축적되어야 한다. 이런 잉여 생산물을 생산하는 농업의 구조는 잉여 노동력을 발생시키고 이는 인건비를 낮게 만든다. 낮은 인건비의 사람들은 도시와 공장으로 들어가고 자본을 축적한 자본가가 이들을 고용하고 생산설비의 효율화를 고심하면 국가는 '산업혁명'이 일어난다.

값싸고 좋은 '산업국'의 제품이 값비싸고 질나쁜 '비산업국'으로 들어가면 해당 국가는 경쟁력을 잃고 '산업혁명'에서 멀어지게 된다. 흥선대원군이 쇄국정책을 취한 이유는 '자국산업의 보호'라는 명분이지, '보수적인 외통수 노인'이기 때문이 아니다. 1960년대 대한민국에서 산업혁명이 일어났다. 국민들은 농촌에 아버지와 어머니를 두고 도시로 올라가 취업하기를 바랬다. 적은 노동력으로도 충분히 생산을 할 수 있는 농업의 구조 변화는 도시와 공장으로 인구를 몰리게 만들었다. 농업생산량의 증대는 인건비를 낮췄고 이는 자본가가 자본을 축적하게 만들었다. 이렇게 축적된 자본의 소유주는 효율성을 기반으로 하여 생산력을 확대 시킨다. 당시에도 박정희 정부는 국민들에게 '국산품애용'이 바로 '애국'이라는 인식을 심었다. 서양물건을 구매하지말고 국산품을 애용하라는 것은 현대에 와서는 '자국산업보호'라는 명분으로 이해된다. 이는 자국 생산물의 경쟁력을 확보하게 도와준다. 멀리 갈 것도 아니다. 영화산업에서 '스크린쿼터제'를 도입했던 이후 우리의 영화산업은 엄청난 발전을 이뤘다. 외국에서 들어오는 질좋고 재밌는 영화에 대한 규제를 하고 국내 영화산업에 경쟁력을 확보하는 일 또한, 일종의 쇄국정책과 같다.

외력에 의해 '개항'을 하여 산업화를 이룬 국가는 '산업국가'가 되지 못하고 대부분 '식민지 국가'가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다수의 많은 사람들은 우리가 서구 문물을 늦게 받아들였기 때문에 산업화가 늦어졌다는 착각을 한다. 서구 문물을 빨리 받아들였다면 쌀생산을 주력으로 삼고 있던 조선의 쌀값이 폭등하고 이는 인건비 폭등으로 이어지며 앞서말한 다른 서구 선진국과는 다르게 산업혁명의 반대방향으로 역주행하는 꼴이 된다. 사실상 교육업이란 그렇다. 누군가의 발전을 돕는다는 명분으로 그 내부에 휘집고 들어가 억지로 자신의 지식을 심어 놓는 꼴이다. 역사상 외력에 의해 산업화가 된 국가를 이야기할 때, '일본의 개항'을 이야기하곤 한다. 외력에 의해 개항을 했던 일본이 조선보다 빠르게 개항한 탓에 선진국이 되었다는 논리다. 하지만 일본은 개항하고 20년 뒤 바로 조선을 개항했다. 즉, 일본 내에서 발생하는 외화유출을 조선으로 넘기고 서구의 기술을 흡수하여 개항의 충격을 흡수하였다. 실제로 산업혁명은 외부적으로 발생하기 힘들다. 학원에는 선생님이 열심히 푸는 문제를 구경하는 학생들이 앉아 있다. 마치 손대지 않고 코를 푸는 방법으로 학원의 선생님의 문제푸는 것을 구경하는 것이다. 마치 손흥민 선수의 경기를 모두 챙겨봤다고 운동실력이 늘었다고 착각하는 것과 같다.

지식을 쌓는 법을 모르는 이에게 지식을 쌓아주는 일은 이제 막, 낚시법을 배우러 온 이에게 낚시대를 대신 잡아 낚아주고 고기나 쥐어주는 꼴이다. 이런 의미로 보자면 사실상 '교육업'이란 불필요한 일인지도 모른다. 스스로 깨어나기 위해선 훌륭한 선생님이 아니라 '교과서'가 더 효율적이기 때문이다. 마치 교육대학을 졸업한 학교 선생님께 배웠다고 모두가 그 정도 실력이 되지 않는 것 처럼말이다. 교육업에서는 이들이 스스로 깨칠 수 있도록 시간과 장소를 제공해주고 스스로 일어설 수 있도록 간단한 안내와 유도가 필요하다. 어쩌면 강사로써 직무유기에 대해 방관하라는 말 처럼 들리는 이 이야기는 실제로 가장 중요한 철학일 수도 있다. 강사가 느끼는 직무유기에 대한 죄책감을 덜기 위해 학생을 망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본질을 파악하는 것은 몹시 중요하다. 교육이 본질은 가르치는 일이 아니라, 성장시키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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