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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글 쓰는 사람의 여행 에세이

조금 긴 여행을 했었어 독후감

by 오인환


여행 에세이를 자주 읽는다. 팬데믹으로 이동하지 못하는 욕구를 활자로 푸는 듯하다. 워낙 많은 여행 서적을 읽다보니 대충 어떤 컨셉인지 느낌이 잡히긴 한다. 이 책 또한 그러리라 생각했다. 겉표지에는 '소설가의 세계 여행 에세이'라고 적혀 있다. 소설가가 여행하면 뭐가 다른가. 특별하게 생각해 보지 않던 이 고민이 책의 초반부에 해결됐다. 문체가 다르다. 책의 문체는 '김훈 작가'의 문체를 닮았다. '김훈 작가'의 문체는 무엇인가. 책을 읽다보면 유려하고 감성적이며 화려한 문체를 만날 때가 있다. '어떻게 이걸 이렇게 표현했을까' 싶은 말랑말랑 거리는 문체와는 다르게 김훈 작가의 문체는 단단하고 간결하며 깔끔하다. 조잡한 조미료가 들어가 깊은 맛을 내는 사골이 아니라 깔끔하고 단단하며 간결한 시원하고 칼칼한 콩나물 북어국 같은 느낌이 난다. 나 또한 김훈 작가의 글을 좋아한다. 불필요한 접속사가 생략되고 주어와 술어를 짧게 끊어 쉽게 읽히고 빠르게 이해된다. 글을 다루는 소설가의 글이라는 사실을 굳이 확인시켜주지 않더라도 아마 예측 가능했을 듯한 문체다. 박재현 작가는 '좋은생각' 출판사에서 몸을 담고 있다가 소설가로 활동하는 듯 하다. 이 책은 책과 사진, 모두가 박재현 작가의 것이다.



글도 글이지만 사진이 너무 좋다. 여행 에세이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글', '사진', '소재' 등이다. 이 삼박자가 고로 갖춰져 있다. 책은 '출발'로 시작하여 '집으로'로 끝난다. 여행 에세이를 자주 읽다보면 이런 구성이 많다. 가족과 헤어져, 다시 가족의 품으로 돌아가고 집을 나서며 다시 집으로 돌아간다. 이런 구성은 사실상 인생과 맞닿아 있다. 삶이란 일정의 목적지를 향해 가는 것이 아니다. 어딘가를 향해 가는 듯 하면서도 결국 우리는 제자리로 돌아가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우리가 가야 할 목적지로 알고 있는 다수는 사실 '경유지'에 불과하다. 세계여행을 떠나며 작가는 이곳과 저곳을 여행한다. 그 와중에 좋은 사람을 만나고 연인을 찾기도 하며 나쁜 일도 겪기도 한다. 이런 다수의 경험은 반드시 우리가 목표한 바가 아니다. 생각치도 못한 일에 능동적으로 대처해가는 재미가 바로 여행이다. 어제 만난 친구와 다음 여행지를 함께 하기 위해 기존의 여행 계획을 수정하거나 하루 머물기로 했던 곳에서 수 일을 더 머무는 변수들은 사실상 목적지로 가는데 시간을 지체한다고 여긴다. 하지만 우리의 목적지는 어차피 출발했던 '집'인 경우가 많다. 빨리 가는 것이 목적인 사회에서 사실상 여행을 빨리 마무리 짓고 싶다면, 출발하지 않는 방법이 가장 많다. 여행은 최대한 시간의 여유를 두고 실패도 시간을 녹여 발효시킨다.



썩어야 할 것들은 썩도록 놔두고, 익혀야 할 것은 익도록 둬야 한다. 모든 것들은 시간이 필요하다. 삶을 살다보면 예상치 못했던 변수를 항상 만나곤 한다. 그것이 내 눈앞에 닥칠 때면 마치 그것이 영원할 것이라는 착각에 빠진다. 작가는 13시간이나 되는 열차를 짐칸에서 불편하게 이동한다. 해외의 물갈이 탓에 속이 좋지 못함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그 경험이 곧 '글감'이 될 것이라고 위안했다. 하지만 바로 닥친 현실에 '그런 것 조차 필요없다'로 바뀌며 현실의 절박함에 촛점을 둔다. 제3자인 내가 돌이켜보건데, 그의 그런 지옥같은 경험은 결국 정말 '글감'이 되어 나와 같은 독자의 내부에도 남는 훌륭한 자산이 되었다. 유럽이나 미국을 가까이 하고 있지 않아, 우리는 여행하기 어려운 곳이라는 불평을 듣기도 한다. 유럽이나 미국으로 가려면 10시간에 가까운 비행기를 타야하고 여행비보다 경비가 더 많이 든다고 불평하는 사람들이 많다. 반대로 생각해보면 우리의 주변에는 저렴하고 훌륭한 문화와 사회를 갖고 있는 국가들이 많다. 값싼 물가로 언제든 즐길 수 있는 동남아 여행지가 저렴한 경비로 감당할 수 있는 좋은 위치이기도 하다. 일본과 중국이라는 동양의 커다란 문화권을 언제든 즐길 수 있으며 오세아니아와 러시아를 비롯해, 유럽, 오세아니아, 아시아 이렇게 3대륙이 최단거리에 위치하고 있다.



작가는 세계여행을 한다. 동남아시아와 구소련의 국가들을 비롯해 개발도상국으로 시작한다. 그리고 유럽과 미국을 거치며 선진국으로 여행한다. 어쩌면 세계를 돌며 개발의 순차를 모두 경험해 볼 수 있지 않았을까 싶다. 미국과 유럽과 같은 선진국들을 인접하고 있었다면 우리 국민의 다수는 해외여행을 쉽게 경험해 못했을 지도 모른다. 우리는 대학생 신분으로 친구들과 가볍게 동남아시아를 여행지로 다녀온다. 젊은 나이에 호주나 뉴질랜드로 워킹홀리데이를 떠나기도 하고 일본과 중국과 같이 서구인들이 동경하는 곳을 저렴하게 다녀오기도 한다. 동서양의 문화를 모두 쉽고 가깝게 옮겨 다니며 학습하는 우리의 습관은 우리를 문화적 흡수성을 키웠다. 오늘 대한민국의 여권파워가 세계 2위라는 기사를 접했다. 우리는 비자 없이 입국할 수 있는 무비자 입국국가만 190개 국에 이른다. 이렇게 열려 있는 기회를 통해 우리 국민들이 세계로 나가는 것은 '외화반출은 죄악'처럼 느꼈던 IMF시대의 관념과 다르다. 현재 넷플릭스 83개국 중 오징어 게임은 1위를 하고 있다. 이는 그저 재밌는 컨텐츠 하나가 동양의 국가에서 터진 것과 다르다. 오징어 게임은 우리의 어린 시절 '놀이'와 '문화'를 담고 있는 문화컨텐츠다.



문화에 대한 동경은 엄청난 파워를 가진다. 빠르게 먹을 수 있는 햄버거와 콜라, 감자튀김을 파는 요식업체인 '맥도날드'는 시가총액이 220조원을 돌파했다. 이는 현대차, 기아차, LG전자, 대한항공, 포스코의 시가총액을 모두 더한 값의 2배에 가까운 규모다. 정말 햄버거는 훌륭한 맛을 인정받아 이처럼 판매되고 있는 것일까. 문화산업이란 그래서 중요하다. 우리가 유럽 문화에 대한 동경을 갖고 있기 때문에 영국, 프랑스, 이탈리아 등의 서구 유럽국가 다수의 회사 시가총액은 지금도 '패션', '직물' 등이다. 여행은 짧게 보면 아무런 생산활동하지 않고 멀리 돌아 집에서 집으로 도착하는 비효율적인 활동일 지도 모른다. 하지만 최대효율이란 태어남과 동시에 죽음을 맞는 것이다. 삶에는 효율이란 있을 수 없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삶을 대하는 태도를 변화하고 사람들에게 좋은 영향을 끼치며 스스로 좋은 영향을 받고 오는 것이다. 여행을 떠났던 지가 꽤 오래 됐다. 책을 읽고 나 또한 혼자 조용히 여행하며 글을 쓰는 삶을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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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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