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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빵과 함께 하는 인류의 이야기

빵으로 읽는 세계사 독후감

by 오인환

할아버지는 빵집을 하셨다. 제주도의 화산회토는 통기와 투수성은 뛰어나 밭농사에는 최적이지만 벼농사를 하기는 적절치 못했다. 어린시절 제사를 지낼 때면, 카스테라와 롤케익이 올라왔다. 환타와 과즐 같은 과자를 비롯해 초코파이를 보기도 했다. 상황에 따라 모카빵을 올리는 곳이나 소보루 빵과 같은 현대 음식이 올라가곤 했다. 추석이나 설날과 같은 명절이 되면 제주에서 가장 바쁜 곳 중 하나는 '빵 집'이었다. 대량 예약 주문이 몰려와 타지역과는 다르게 제주의 빵집은 명절에 큰 대목이기도 했다. 어린시절 떡에 대한 추억 만큼이나 빵에 대한 추억이 많다. 아무리 외각지역으로 가더라도 마을마다 하나씩 반드시 있던 빵집 덕분인지, 프랜차이즈 베이커리가 타지역 만큼이나 많지는 않다. 지금도 제주는 유명 빵집이 많다. 함덕에 있는 오드랑베이커리나 메종드쁘띠푸르, 명당양과, 어머니 빵집, 키스테라 등 거대자본 프랜차이즈 베이커리가 들어오기 전부터 제주도에는 유명한 빵집들이 이미 터줏대감처럼 자리 잡고 있었다. 자그마치 6천 500년 전, 한반도의 여러 지역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재배되던 벼는 세계 최초의 벼농사라고 알려져 있다. 이런 일로 우리의 쌀에 대한 사랑은 엄청나다. 막걸리며 떡과 누룽지, 식혜. 한과, 초청, 엿처럼 쌀을 이용한 다양한 문화가 발전되던 타지역과 다른 독특한 문화적 배경으로 빵은 나에게 친숙하다.

일찍부터 미국으로부터 개항을 해야 했던 일본은 오랜기간 동안 우리와 같이 쇄국정책을 고수했다. 그러다 서구문물이 제법 들어오면서 빵에 대한 접근도 우리보다 빨랐다. 우리가 부르는 '빵'은 실제 일본의 발음에서 가지고 왔다. 따지고보자면 빵이라는 단어는 '팡(pao)'이라는 포르투칼에서 온 것이다. 포르투칼이 일본에게 전해줬던 빵은 카스티야라는 스페인 스펀지 케익이었다. 이것이 조금 더 일본의 상황에 맞게 변화되어 우리가 먹고 있는 부드러운 카스테라가 되었고 제주의 차례, 제삿상에도 올라가는 것이다. 포르투갈(portugal)의 국명에는 이미 port라는 영어 단어가 속해져 있다. Port는 현재 수도 리스본 다음가는 포르투칼의 제2의 도시이기도 하다. port는 항구를 뜻한다. 남유럽 끝자락에 스페인에 의해 고립되어 있던 포르투칼의 땅은 꽤 척박하다. 실제로 이 나라의 국가 원수의 작위는 백작에 불과 했다. 위로는 스페인에 가로막혀 유럽의 문명에 닿지 못하고 농사 지을 수 있는 땅이 부족하였다. 그들의 이런 고립은 바다 밖으로 나가야 하는 필연을 만들었다. 그들의 이름처럼 항구(port)를 통해 유럽에서 최초로 대항해 시대를 열었던 그들은 생존 방법을 찾아 바다를 누비고 다녔다. 그들이 떠나고 찾았던 대륙은 아메리카와 아프리카 아시아들이었다. 그곳에 그들은 식민지를 건설하고 막대한 무역 흑자를 얻었다. 그들이 먹던 음식이 식민지와 다른 교역국에 전해지면서 세계 많은 곳은 Bread라는 영문명이 아니라 빵(pao)이라는 포르투갈의 말이 더 많이 사용되어진다.

강수량이 많은 곳에서 많은 인력을 동원해야 재배가 가능한 벼농사와는 다르게 밀농사의 특징은 강수량이 비교적 적다. 밀을 생산하던 곳에서는 찌거나 끓이거나 삶는 조립법 보다는 굽는 조리법이 조금 더 효율적이 었을 것이다. 이런 단순한 환경의 차이가 문화의 차이를 만들어내고 비교적 건조하며 보관이 용이한 빵이라는 식품이 탄생했다. 이는 더 넓은 곳으로 이동할 수 있게 하는 원동력이기도 하다. 실제로 유랑민족이던 유대인의 대표적 빵인 '베이글'이 그렇다. 베이글은 원래 우유나 버터도 들어가지 않은 마른 빵이다. 이 빵은 속이 비어 있어 더욱 고르게 바삭하도록 만들수 있었다. 가운데가 비어있던 이 빵을 유대인들은 줄로 엮어 다니며 이동에 유리했다. 따지고보자면 인구가 더 번창하고 더 커다란 문명사회를 이루던 동양이 아닌 서양의 사회가 된 지금은 이런 효율성이 기본이 되게 했던 빵이 역할이 아닌가 생각하게 한다. 빵은 간편식품이기도 하다. 과일을 설탕과 함께 조려 만든 쨈을 바르기만 하면 언제든 쉽게 먹을 수 있으며 오랜기간 보관하기 유리했다. 우리의 디저트로는 떡이 있지만, 떡은 쉽게 상하기도 하였다. 가지고 다닐 수 있는 마른 음식이 존재하는 서양의 문화가 더 빠르게 세계로 뻗어갔다는 점에서 빵이 세계사에 기여한 부분이 적다고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인류 최초의 문명이었던 수메르 문명은 티크리스와 유프라테스 강 사이에 있는 건조한 땅에서 시작했다. 중동의 건조한 땅에서 시작한 이 문명이 재배했던 작물은 벼가 아니라 밀이었다. 그들이 밀을 재배하고 재배한 밀을 기록함에 있어 최초의 문자가 활용됐다. 밀의 수확량과 각종 거래를 기록한 것은 인류최초의 문자가 되고 인류최초의 회계가 되기도 했다. 이런 수확량을 관리하는 이와 노동하는 계층이 구분되었다. 문자를 아는 사람과 문자를 알지못하는 사람은 계층으로 구분되어 신분이 되고 글을 아는 이들이 얻어가는 특권은 단순히 노동량이 높은 노동가보다 많았다. 마른 곡식이 저장이 가능해지면서 사회는 자본 축적이 일어난다. 채집과 사냥으로 얻은 과일과 고기처럼 오랜기간 보관하기 어려운 음식은 곧 평등사회를 말했다. 함께 수확한 수확량을 함께 나눠 모두 소비해 버리는 평등사회는 자본 축적이 가능해진 이후부터 사라지기 시작했다. 어쩌면 우리가 지금 겪는 자본주의도 여기서 시작하지 않았을까 싶다.

책은 쉽고 또 쉽다. 세계사에 대해 깊이 알지 못하던 사람들이 쉽게 세계사를 접할 수 있는 흥미로운 책이다. 다만 몇 가지 사실관계가 다른 부분이 조금 보이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처럼 '빵'이라는 재밌는 소재로 이처럼 세계사를 묶어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는 점이 매우 매력적인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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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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