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유일신 어떻게 시간을 만들었나_유대인 바로보기

by 오인환

유대교에는 여러 분파가 존재한다. 바리새파, 사두개파, 에세네파, 열심당 이 그렇다. 이런 다양한 분파가 있지만, 이들을 '유대교'라고 하는 이유가 있다. 모두를 하나로 묶을 수 있는 공통된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바로 '윤리적 유일신앙'이다. 그들에게 절대신은 하나 였다. 모두가 같은 절대자를 모시고 있고 그들 모두가 절대신에게 일종의 계약을 맺는다고 생각했다. 그들은 다른 분파임에도 공동의 문화를 소유하게 됐다. 모두가 같은 예배의 시간을 공유하고 서로가 절대자에게 일종의 계약을 했다는 믿음을 갖게 됐다. 유발하라리의 '사피엔스'를 보자면 호모사피엔스는 상상력을 매개로 대규모 집단을 형성하며 상호 협력하고 행동 할 수 있었다. 이를 인지혁명이라고 하는데, 이런 인지혁명에 따르면 공통의 믿음은 우리 문명을 고도로 발전 시켰다. 민족이나 공통의 신을 위해 단일한 목표를 세우고 협력하는 것은 사회구조와 문화를 성숙하게 만들었다. 어쩌면 고대부터 유일신을 섬겼던 유대인들은 이런 이유로 타민족보다 두터운 민족의식을 갖게 했는지도 모른다. 같은 믿음은 같은 사상을 만들고 더 큰 덩어리를 움직이게하는 무형의 연결끈이 된다. 이런 의식의 확장은 시간으로도 확장됐다. 종교 간의 갈등은 꽤 역사가 깊다. 믿고 있는 믿음의 주체가 다르다는 것은 그 만큼 이질감과 적대심을 갖게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같은 것을 믿는 이들끼리의 단합은 배타성을 지니기도 했다. 어찌됐던 그들간의 신뢰는 시간과 약속, 상대에 대한 믿음을 만들어냈다.


일류는 문명의 성장과 함께 꽤 커다란 제국을 몇 차례 생성했다. 대륙과 대륙을 넘나들 정도의 커다란 제국은 여러 문제를 만들어 내기도 했지만 대체적으로 도량형이나 시간 단위 등을 통일하는데 커다란 역할을 하기도 한다. 같은 국가가 아니라면 통일할 이유가 없는 다양한 민족과 문화의 도량형이 통일한데는 '유발하라리'가 말한 '상상의 매개'가 한 몫을 했다. 진시황제의 진나라가 중국 전국을 통일하기 전까지 제나라의 서적을 연나라 사람이 읽을 수 없거나 거리의 단위가 달라 유통의 커다란 문제가 있기도 했다. 통일 이전의 중국에서는 화폐나 무게, 길이 등의 단위와 심지어 한자도 제각각이었다. 진나라 이후 도량형이 통일되면서 '진'이라는 나라에 속해있는 다양한 사람들은 '같은 국가'에 속하여 통일된 믿음을 갖고 더 빠른 문명의 발전을 이룰 수 있는 기반을 가졌다. 이중 가장 강력한 약속 중 하나는 '시간'이다. 절대신을 믿는 유대인의 사고와 같이 그들에게 시간은 절대적인 존재였다.


배타성은 반대로 내부 결속을 의미하기도 한다. 배타성이 강한 집단일수록 내부 결속이 강해질 수밖에 없다. 반대로 말하자면 역사적으로 독재자들은 내부 결속을 위해 배타성을 이용하곤 했다. 이에 가장 큰 피해를 당한 이 또한 아이러니하게도 2차세계대전의 유대인들이다. 동양의 역사에서도 이런 예시는 분명하게 많다. 일본 전국을 막 통일했던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외부의 적을 만들어 내부의 결속을 다지려 했다. 이런 배타성의 폭발은 임진왜란으로 이어졌다. 우리의 역사에서도 이런 예시는 적지 않게 찾아 볼 수 있다. 다수의 군사독재자들은 북한과 일본을 정치적으로 활용하곤 했다. 외부의 적을 만들어 내부의 결속을 다지는 일이다. 이처럼 외부 배타성과 내부 결속성의 상관관계는 시간에 대해서도 연결해 볼 수 있다. 시간 잘 지키는 사람들은 시간을 지키지 않는 이들에 대한 배타성을 가지고 시간을 잘 지키는 이들끼리 내부 결속성을 갖는다. 나 또한 시간을 철저하게 지키는 이들에 대한 무한한 믿음을 갖는 편이며 이를 하찮게 여기는 이들에 대한 배타성을 갖고 있다. 유대교에서 분리된 기독교 신자들은 서로를 '형제, 자메'라고 부르며 절대자를 '아버지'로 여긴다. 이는 우리가 엄청난 내부 결속의 힘이기도 하다.


약속이란 어찌보기에 신뢰의 문제다. 이를 가볍게 여기는 사람이 다른 일에서 신뢰늘 줄 것이라는 믿음은 생기지 않는다. 종교 갈등을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단순히 믿고 있는 절대자가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쉽게 갈등과 오해가 생겨 많은 사람이 죽는다. 실제 종교는 가장 많은 인간을 죽이는 명분 중 하나다. 신뢰가 형성되지 않는 사회에 대한 분명한 메시지가 역사에 담겨져 있다. 나는 시간을 몹시 중요하게 생각한다. 사람을 보고 만날 때, 시간 약속을 얼마나 철저하게 지키는가로 거의 그 사람의 많은 부분을 판단한다. 간혹 시간 약속을 지키지 않으면서 성공한 이들을 보기도 한다. 우리가 알고 있는 연예인이나 예술인 등 대부분 자유로운 창작활동을 하는 이들이 대게 그런 편이다. 하지만 분명히 말하길 우리의 사회는 자유로운 창작활동을 하는 이들의 수보다 더 절대적으로 약속과 약속으로 업무를 처리하는 이들의 수가 더 많다. 약속한 시간에 맞춰오지 못할 경우에는 최소한의 사과 문자와 도착 예정 시간 정도는 상대에게 고지해 줘야한다. 이런 기본적인 매너가 없는 사람에 대한 신뢰는 반드시 그 값을 되받는다. 시간을 제대로 지키지 않는 이와 함께 일하는 것은 엄청난 고역이며 그들과 함께 하고 있다면 반드시 그에 따른 출혈을 감당해야 할 것이다. 반대로 나는 상대와의 약속과 신뢰를 얼마나 지켜주고 있는지도 또 올려야 할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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