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사불범정:그른 것이 바른 것을 범할 수 없다

이재명은 합니다 독후감

by 오인환

경기도 국정감사를 라이브로 시청했다. 일과 중이라 전체를 보지는 못했다. 2021년 10월의 경기도 국정감사를 먼저 들여도 보기라도 하듯 그의 책 '이재명은 합니다'의 118쪽에는 2014년도 국정감사의 풍경을 묘사하고 있다. 너무나 닮아 있다. 질의에 대답할 기회를 주지 않고 장황한 연설과 호통을 치는 모습에 대해 묘사되어 있다. 사안과 상관없이 본질없는 질의가 이어지고 청문회인지, 국정감사인지 알 수 없는 질문들이 쏟아진다. 이번 국정감사에서도 크게 다르지 않다. 이 국정감사의 내용이 잘못됐다고 지적하는 것은 '여'와 '야'의 편을 드는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 정치의 본질은 '정권잡기'가 아니다. 정치의 본질은 '여러 이해 관계가 얽혀 있는 상호 간의 이해를 조정하고 사회 질서를 잡는 일이다.' 본질없는 질의에 이재명은 2014년도 국정감사 현장에서 웃음이 난다. 2021년 10월 국정감사에서 이재명은 같은 형식의 질문을 받고 같은 반응을 보였다. 7년이라는 시간이 지났지만 대한민국 정치의 방식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크게 소리치며 호통치고 대답할 기회를 주지 않으며 윽박지르면 TV의 편집된 화면에서는 꼼짝하지 못하는 상대의 모습과 잘못을 면박주는 질의자의 모습이 함께 담긴다. 문제의 본질과 상관없이 당황해하는 사람의 표정을 담기 충분하고 격양된 분위기를 조성함으로써 의혹 뿐인 일들에 대해 이미 커다란 죄를 지었다는 인식을 심어 줄 수 있다.

이것이 과연 진짜 정치인가? 국정감사를 지켜보던 나는 실제 '이재명 지사'가 꼼짝도 하지 못할 엄청난 사건의 전말이 밝혀질 것이라고 기대했다. 민주주의는 그렇다. 누군가는 비열한 정치공작이라고 말 할 수도 있지만, 여와 야가 적당히 서로를 견재하고 행정, 입법, 사법이 서로 분리되어 견제하는 상호 견제, 보완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이에 김무성 전 의원은 '민주주의는 시끄러운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100% 공감하는 바이다. 자신이 지지하는 정치인에 대한 견제를 기분 나쁘게 생각해서는 안된다. 견제는 민주주의에서 필수적인 장치이며 이것이 민주주의의 부패를 막는 수단이다. 이번 국정감사에서 야당의 실력발휘를 통해 '이재명'의 잘못에 대해 크게 꾸짖고 밝혀내는 견제의 역할이 충분했으면 하고 기대했다. 스스로도 이재명 지사가 갖고 있는 수많은 의혹들에 대해 궁금하기도 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도 '기술'뿐인 정치 공세들이었다. 국회가 국정에 대해 감사한다는 국정감사에는 잘못에 대한 감독과 감사가 아니라 TV에 자신의 역할을 돋보이려는 노력들로 가득했다. 국정감사가 '감사'의 역할을 하기 때문에 이곳에서 논리적 토론을 기대할 수는 없다. 하지만 최소한 질의에 대한 대답을 충분히 들어야 한다고 본다. 마치 자신이 했던 질문에 대한 '명쾌한 대답'이 나올 것을 견제라도 하듯 대답을 못하게 하려고 기를 쓰는 모습을 보자니 적잖히 실망스러웠다. 이것은 '관습'이 아니라 '악습'이다.

상대에게 완벽한 논리와 근거를 가지고 감사하는 것이 아니라, TV에서 한 커트 더 얻어 내기 위한 '쇼'에 불과하다면 여당과 야당에 상관없이 충분히 비판받아 마땅하다. 정치인의 책을 읽다보면 초반 자신의 살았던 이야기의 일반 수필이 일정 부분 이어진다. 정말 재밌게 읽다가 중반부가 넘어가면 자신의 정치 철학이 나오기 시작한다. 이재명 지사의 에세이 또한 마찬가지다. 어느정도의 자신의 배경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난 뒤, 일종의 자기 정치 홍보에 관해 진행된다. 그의 모든 이야기에 동감 할 수는 없다. 다시 그의 모든 말에 아니라고 할 수도 없다. 타 정당의 하는 것은 뭐든 다 반대하고 보는 '이기고 보는 식의 정치'는 사실 우리만의 문제는 아니다. ABT(Anything But Trump), ABO(Anything But Obama)와 같은 용어는 미국 정치에서도 사용가능하다. 오바마 정권이 끝나면 다음 정권은 오바마 정책 지우기에 들어간다. 트럼프 정권이 끝나면 다음 정권 또한 트럼프 지우기에 들어간다. 상대의 정치 철학에 일부 수긍하는 행위가 지지자에게 들키기라도 한다면 표심을 요동친다. 반대로 상대의 철학이 완전하게 잘못됐고 여기에 극명히 반대 할수록 그것이 본질과 얼마나 멀어지느냐와 상관없이 표심은 요동친다.

이런 문제는 사실상 민주주의 태생에 근간한다. 어차피 민주주의란 세종이 집현전에 다양한 의견의 학자를 모아두고 회의(경연)을 하면서 논리적이고 합리적인 토론과 지위막론한 소통의 경연을 하던 배경과는 다르다. 민주주의는 치열하게 싸우면서 상대와 전쟁을 치루듯 발전해 나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종의 이런 경연에 대한 부러움은 아직도 가득하다. 세종 재위 중에는 총 경연이 1,898회가 열려 월평군 6~7회가 있었는데 이는 그가 건강 문제로 중단하기 전까지 꾸준하였다. 이 경연에 당시 정치인들은 과로에 시달리곤 했다. 인조시대 삼전도의 굴욕이나 선조시대 임진왜란을 등을 보면 치열하게 당파싸움을 하더라도 결국 지도자의 선택으로 국가는 커다란 위기를 겪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파 간의 싸움은 필수적이다. 영화 '남한산성'에서 최명길(이병헌)과 김상헌(김윤석)은 서로 간의 의견을 꾸준하게 내비친다. 그들은 어떤 경우는 치열한 전쟁의 적이기도 하면서 같은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자는 공통된 해결책을 모색하는 동료이기도 하다. 이런 치열한 전쟁은 지도자에게 충분한 정보력을 전달한다. 이런 충분한 정보력의 출처는 싸움이다. 하지만 우리의 현대사를 보자면 한쪽으로 쏠려 있는 군사독재의 정치 기간에는 정치와 언론을 포함해 어느 한 쪽도 상대편의 이야기를 들으려 하지 않았다.

고로 적잖은 싸움은 분명 민주주의에 도움이 된다고 본다. 하지만 최소한의 상대쪽의 이야기를 듣고 수궁하고 질문하는 논리적 치열함이 있어야 한다고 본다. 대뜸 '사퇴하세요' 하고 윽박지르거나, '사과하세요'라고 소리치는 본질에 흐려진 싸움은 그것을 바라보고 결정해야 할 국민들에게 일종의 정보편향을 일으키게 하는 매우 나쁜 정치인이다. 그의 책을 읽다보면 그의 정책 방향과 상관없이 얼마나 그가 입지적인 인물인지 알 수 있다. 12살 소년 공장 노동자에서 인권 변호사와 시장 그리고 대통령 후보까지 끝도 모르고 올라가는 그에게는 '대통령'이라는 커다란 목적이 아니라 작지만 세밀하게 쪼개어져 있는 성취 가능한 목표들이 있었다. 그를 상대하는 수많은 천재들과는 다르게 충분이 인간적인 면모도 있다. 자신의 과거의 잘못에 대해 변명하거나 사적인 이야기에 대한 내용들도 이야기하면 변명이고 하지 않으면 뻔뻔해지는 상황에서 기어코 변명을 택하기도 한다. 앞으로 그가 어떻게 될지는 알 수 없으나, 야당의 충분한 견제와 검증을 받고 좋은 결과가 있기를... 그리고 만약 그가 숨기고 있던 거짓이 있다면 이에 충분한 견제와 검증을 통해 걸러 낼 수 있기를... 모든 측면에서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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