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질랜드 크라이스트처치에서 남쪽방향으로 500km를 내려갔다. 퀸스타운이라는 관광도시가 나온다. 대략 6~7시간이 지나서 도착한다. 가득 채워 놓은 기름이 바닥이 나서야 겨우 목적지가 보인다. 이른 점심을 먹고 출발했으나 숙소에는 늦은 밤이 돼서 도착했다. 미세먼지 하나 없는 완벽한 공기가 커다란 시야를 확보해줬다. 조금만 거리가 멀면 뿌옇고 희미해지는 우리의 자연과는 다르게 내 시력이 허락하는 한 거의 모든 환경이 투명하게 보였다. 이곳을 지나가면서 든 생각이 있다. 영화에서나 볼 법한 엄청나게 큰 산을 몇 개를 넘는다. 산 아래에서 보기에 산 꼭대기에 구름이 걸려 있었다. 가는 길에는 저 산을 타고 넘어서야 했다. 시커먼 구름을 향해 달려 갔다. 구름을 향해 가고 있다는 의식을 놓칠 때 쯤, 자욱한 안개가 꼈다. 비상등을 켜고 조금 달려가면 다닐만 했다. 다시 얼마를 달리자 안개난 걷혔다. 뒤로 멀어지는 관경을 사이드미러를 통해 봤다. 내가 지나온 안개는 '구름'이었다. 모든 것은 그랬다. 겪기 전과 겪은 후에는 명명하는 방법도 달랐고 느껴지는 체감도 달랐다. 산중턱을 완전히 넘어섰을 때도, 그 안개는 '구름'의 형태를 유지하고 있었다. 신선과 천사가 집을 짓고 살고 있을 것 같은 하늘 나라는 막상 도착해 보면 땅 위에 이미 존재하던 '안개' 였을 뿐이다. 뭉실 뭉실 손으로 쥐어 떼어나면 뗄 수 있을 것 같은 모양도 사실은 전혀 없었다. 꿈이란 그처럼 환상과 같은 것이다. 도달하기 전과 도달해서, 도달한 후가 전혀 다르다.
외국을 처음 나가면, 펼쳐질 나의 환상적인 미래에 잠을 설레던 때가 있었다. 머리 노랗고 빨간 외국인 친구와 눈색깔, 피부색깔이 제각각인 사람들 사이에서 멋진 하루를 보낼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비행기에서 내리고 난 뒤에 내가 겪은 모든 것은 머릿 속과 전혀 달랐다. 그저 조금은 다르긴 하지만 언제나의 일상과 비슷한 연장선이었다. 첫 책이 나오거나, 새차를 뽑을 때도, 이루고 싶던 꿈이란 것을 하나 하나 이뤘을때도 신기루 같은 환상은 멀리에서 지켜 볼 때나 멋있었다. 사막에서 신기루를 본다는 것은 조금 더 지친 한 발을 떼게 해주는 초인적 힘의 근원이 된다. 하지만 한걸음 내딜때마다 다시 한걸음 멀어져가는 신기루는 결국 사람을 탈진 시키고 메말라 죽게 만든다. 꿈이란 그렇다.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원동력과 기폭제가 될 수 있지만, 그것은 곧 위험하게 만들 지도 모른다. 인간 생에 이루고저하는 거의 대다수의 것들은 내가 퀸스타운으로 가는 길에 만난 구름과도 같다. 보이기에 아름다운 구름이 막상 도달하고 나면 내가 땅 위에서 쉽게 보던 일반적 현상과 크게 다르지 않다. 구름 위에 살 것 같던 천사와 신선도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남들이 구름 위에 있는 나를 보고 부러워하고 있다는 사실에 대단한 척해도 이미 그들과 내가 전혀 다르지 않는 삶을 살고 있다. 대단한 것과 그렇지 않는 것에 대한 경계는 허무할 정도로 희미하다.
지난 15년 간 미국의 핵무기 코드 비밀번호는 '00000000'이었다. 단순히 0을 8번 누르는 것이 세계 최대 비밀 중 하나였다. 나가사키에 떨어진 원자탄의 폭발으로 사망한 인구는 7만 4천 명으로 대한민국에서 2016년부터 5년 간 자살한 사람이 숫자보다 적다. 우리가 생각하는 대부분의 것들은 이미 현실에 존재한다. 판타지는 머릿속에서만 존재한다. 오늘의 나또한 지난날의 판타지의 현실판일 뿐이다. 예전 가시고기라는 소설책을 읽었다. 중학교 시절 읽었던 듯하다. 소설에서 말하고자 하는 바에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그 소설에는 짧은 문구가 적혀 있었다. '오늘 내가 헛되이 보낸 하루는 어제 죽은 이가 그토록 살고 싶어 했던 내일이다.' 오늘과 지금의 나는 이미 누군가의 판타지를 충족하고 남았으며, 과거의 나의 판타지를 충족하고 남았다. 나에게 주어진 신분증으로 어른들만 할 수 있는 것들을 당당히 할 수 있게 됐다. 가볍게 술과 담배를 사거나 운전을 할 수도 있고, 내게 주어진 자유시간을 내 마음대로 활용 할 수도 있다. 어린시절 부모님은 TV를 못보게 하셨다. 학창시절 MBC드라마 '허준'을 제외하고 그 어떤 프로그램도 당당히 보지 못했다. 지금은 누워서 무엇을 보고 있던, 오늘 할일을 내일 미루던, 조금 나태해지건 누구도 나에게 말하지 않는다. 다만 그 책임 나에게 돌아와 나를 움직이게 할 뿐이다.
과거의 나는, 오늘의 나를 미친듯이 부러워 할 것이다. 오늘의 내가 누군가와 과거의 내가 갖고 있던 모든 판타지를 만족킨다고 하더라도 아직도 만지지 못하는 안개뿐이다. 앞이 보이지 않아 불안하고 씁쓸하고 눅눅하고 찜찜한 감정을 갖고 한발 한발 나아갈 뿐이다. 밑에서 보기에 내가 헤치고 있는 이 안개가 구름 속이라는 사실도 망각하고 말이다. 어린시절 '사랑의 빵'이라던 저금통을 받았었다. 선생님은 불쌍한 북한 어린이들을 위해 용돈을 모아 저금하라고 하셨다. 지금 이 순간에도 굶어 죽는 친구들에게 초콜렛과 사탕을 먹지 않고 참은 댓가를 통 안에 쌓아 두라고 하셨다. 운 좋게 대한민국에서 태어났다. 사실상 그 자체만으로도 전세계에 같은 해에 태어난 동갑내기 친구들 중 1%의 풍요로움에 둘러 쌓여 있다. 구름 속에 들어와보니 안개뿐이더라... 다시 제대로 된 구름으로 나아가보자고 다짐해도 어치피 다시 찾은 구름 또한 도달하면 안개일 뿐이다. 오늘을 만족하지 못하면, 죽을 때까지 내가 바라던 구름의 실체를 파악하지 못하고 죽을 수도 있다. 오늘은 어떤 날이었을까. 정말 내가 느끼는 불안과 씁쓸과 눅눅과 찜찜은 구름이 아니라 안개속에 있기 때문이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