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역사의 두 얼굴_주진오의 한국현재사

by 오인환

1253년 몽골의 침입으로 고려인 20만 명이 포로로 잡혀 갔다. 몽골은 수차례 고려를 침입해 왔음으로 포로의 숫자 이상의 사망자가 나왔을 것이다. 당시 고려 인구가 500만 명 안팍으로 추정된다니, 고려인 25명 중 1명 꼴로 원나라에 포로로 잡혀간 샘이다. 당시에는 부원배라는 세력이 존재했다. 그들은 원나라의 힘을 등에 업고 출세하여 백성의 땅과 재산을 강탈했다. 고려는 이렇게 몽골에 지배당하며 90년에 가까운 내전 간섭을 받는다. 반면 국사편찬위원회에 따르면 3.1운동 당시 조선인 사망자는 최대 934명이다. 일본의 기록에는 553명으로 되어 있다. 어째서 우리의 인식에는 몽골에 대한 감정보다 일본에 대한 반일 감정이 훨씬 크게 작동하는 것일까. 간혹 영화나 소설을 보다보면 일본 순사가 군인의 기분에 따라 현장에서 민간 조선인을 즉결처분하는 장면이 나오기도 한다. 유대인 학살을 그렸던 '쉰들러리스트'의 독일군을 연상케 한다. 하지만 일제하에서도 원칙적으로 '법치'는 있었다. 무차별적인 학살과 살상이 아닌 재판을 통해 처벌을 받았다. 일제의 불법적 만행에 대해 옹호하려는 것은 아니지만, 우리의 대부분은 감정을 우선하고 역사가 그것을 뒷받침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1921년에는 이판능이라는 젊은 조선인이 일본의 동경에 돈을 벌기 위해 갔다가 묵고 있는 일본인 하숙집 주인과 말다툼을 벌였다. 이 말다툼 끝에 이판능은 부엌칼로 하숙집 주인 두 부부를 살해한다. 그리고 길거리로 나와서 1시간 동안 17명을 살해했다. 이 사건으로 이판능은 재판을 받게 됐고, 일본 변호사를 선임한다. 그는 1심에서 무기징역을 받았다. 하지만 2심에 와서는 그 형량이 7년 6개월로 감형됐는데, '정신착란'이라는 그의 주장이 받아들여진 것으로 밝혀졌다. 아마 오늘날의 '심신미약'과 같은 이유로 그는 무죄감형을 받게 된 것이다. 이 사건은 일본 사법 역사상 최초로 정신의 문제로 감형된 사건이기도 했다. 완전 무법의 시대일 것 같은 국권피탈의 기간에도 사법은 작동했다. 어린 시절 근대사를 배울 때마다 선생님들은 '일본놈들'이라는 말을 했다. 일본은 '악', 한국은 '선'이라는 이상한 논리가 당시에는 정확하게 맞게 떨어졌다. 시대가 지나고 내가 믿고 있던 것들이 과연 내가 믿고 싶던 것들이었는지 떠올리게 됐다. 어째서 몽골에 비해, 일본에 대한 역사가 조금 더 극단적인 것일까. 추측컨데 이는 '현재의 이해관계'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앞서 소개한 몇 가지 사례에 대해 아마 몇몇은 굉장히 불편한 감정을 느꼈을 것이다. '일본이 나빠야 하는데, 일본을 옹호하는 듯한 글'에 대한 반감이 들었을 수도 있다.


비교적 현재와 가까울수록 정치적, 경제적 이해관계는 복잡하게 얽혀 있다. 영국의 청교도 혁명과 명예혁명, 미국의 독립혁명, 프랑스 혁명을 보면 '승리한 근현대 정치의 상징'으로 묘사한다. 이 혁명들은 왕권을 몰아낸 의회의 승리다. 이 혁명을 통해 영국, 프랑스 등 서구 선진국은 의회정치를 통해 근현대 정치사의 패러다임을 바꾼다. 단순히 따지고 보자면 이 혁명은 우리가 삼국시대 당시 '절대선'으로 여겨지던 '율령반포, 영토확장, 법치주의'의 결과를 만들어낸 '왕권강화'와 완전히 반대되는 개념이다. 왕권약화의 끝을 보여주던 서구의 정치역사는 그렇게 '혁명'을 통해 '절대선'으로 바뀌는 듯 했다. 반면 흥선대원군이 세도가문을 몰아내기 위해 했던 여러 정책 중 이부는 우리가 배운 '왕권강화'가 명분이었다. 동아시아 최강대국이던 '청나라'와 떠오르던 신흥강국 '일본'과의 외교능력은 그렇게 왕권을 확립하는데 도움이 되기도 했다. '동학농민운동'이 서구 선진국과 다르게 성공하지 못했던 여러 이유들이다. 역사는 꼭 정해진 '선'과 '악'이 있지 않다. 시기에 따라 지금 '선'으로 보이는 것들이 '악'이 되기도 하고, '악'으로 보이는 것들이 '선'이 되기도 한다. 누군가는 이런 역사를 이용하려 들기도 한다.


수학과 같이 정해진 정답을 구하는 문제가 아니라, 해석의 여지가 항상 존재하는 '역사'라는 분야에서 우리는 흔들거리는 양팔저울을 떠올리곤 한다. 한 쪽으로 쏠리면 다른 한 쪽에 무게를 실어 균형을 맞추고, 다시 다른 한 쪽으로 무게가 쏠리면 균형을 맞추기 위해 반대 쪽에 무게를 더해간다. 현대에와서는 정치적인 이유로 '북한'과 '일본'을 적으로 두고자 한다. 최근에는 '미국'과 '중국'도 그렇다. 안중근과 이봉창, 서재필의 이야기를 보면 이런 역사의 해석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다. 사람들은 진실보다는 믿고 싶은 것에 더 열광하기 마련이다. 1909년 하얼빈 역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했던 안중근에 대해 국내에서는 '사죄사절단'을 구성하여 뤼순까지 가기도 했다. 또한 조의금을 모으고 대대적인 활동이 일어나기도 했다. 독립투사 이봉창 또한 색다른 해석이 있다. 그는 일본인의 양자가 되어 이름을 '기노시타 쇼조'로 바꾸기도 했고 여느 젊은이들과 다를 것없이 술마시고, 영화보고, 골프를 치러 다녔다는 기록이 적지 않다. 서재필 또한 미국으로 국적을 바꾸고 죽을 때까지 '필립 제이슨'이라는 이름으로 살았다. 그는 정부가 모든 비용을 부담했던 '독립신문'을 자신의 소유로 등록했고 1898년에는 미국에 돌아가면서 일본에 팔려고 하기도 했다. 이런 이야기들은 그들이 했던 애국의 마음과 공적을 폄하하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결과 편향적이게도 사람들은 결과에 맞게 모든 것들을 재해석하려고 시도하는데 있다. 존재도 하지 않던 아프리카 대륙의 '콩산맥'이 20세기초까지 지도에 있었다는 것을 보면 더욱 그렇다. 있지도 않은 산을 올랐다는 사람과 그 풍경을 묘사하는 여행가들의 말들이 꾸준하게 이어지면서 '존재하지 않던 콩산맥'을 부정하는 것은 천치 취급당하기 일수였다. 나도 굉장히 오랜 기간을 입맛에 맞는 역사 이야기를 찾아 다녔다. 조금더 자극적이고 조금더 극적인 이야기들에 흥미가 생기고 거기서 배울 수 있는 교훈과 감정, 삶의 태도가 있었다. 역사는 그렇게 여러가지 이해관계에 자유롭지 못 할수록 시끄러워 지는 법이다. 한국의 현대사 또한 진보와 보수 진영의 이해관계에 따라 다르게 쓰여지는 역사를 볼 때면, '단 한 권의 책!'이 얼마나 무서운지를 알려준다. 여러 전문가들이 모여 집필하는 교과서라는 단 한 권의 책에도 참 복잡한 역사가 숨겨져 있다. 정확히 무엇을 알아야하고 어떻게 받아들이는지를 위해서 우리 아이들에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정확한 교과서 집필' 만큼이나 '독서교육'이지 않을까 생각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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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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