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자가 싫어 도망갔더니
그림자가 먼저 도착해 있더라.
월암스님의 '니 혼자 부처되면 뭐하노' 중
떼어내지 못하는 것을 떼어내려 하는 것만큼 부질없고 미련한 것은 없다. 누구나 잊고 싶은 것들과 바꾸고 싶은 것들, 피하고 싶은 것들이 있지만, 그것의 본질이 떼어내지 못하는 것이라면, 받아들여야 한다. 갑자기 내리는 비는 맞아야 한다. 섬나라답게 해양성 기후의 뉴질랜드는 난데없이 비가 내리곤 했다. 장마 기간이 따로 존재하지 않고 맑은 하늘에 갑자기 비가 쏟아지고 이내 다시 맑기를 반복했다. 떨어지는 빗방울들 속에서 한뼘 손등으로 비를 막으며 건물 쪽으로 뛰어가는 이들은 한국인이 분명했다. 나머지 사람들은 내리는 비를 아무렇지 않게 맞으며 걸어갔다. 빗방울이 머리 위로 떨어지는데 사람들은 비를 막지도 뛰지도 않았다. 갑작스럽게 비가 내리고 다시 금방 해가 뜨면 바싹하고 말라버리는 독특한 기후 탓에 사람들은 우산을 쓰지도 않았으며 내리는 비를 피하지도 않았다. 가끔 갑자기 내리는 비는 그냥 맞아야 한다. 별 수 없다. 알량한 기대감을 갖고 한뼘이라도 덜 젖어보려는 노력은 괜한 스트레스를 낳을 뿐이다. 그곳에 거주한지 1년이 넘은 후의 나의 일기장에서의 나는 내리는 비를 그냥 맞았다. 피할 수 있는 것은 최대한 피하는 것이 좋다. 하지만 피할 수 없는 것은 그냥 맞이해야 한다. 문제의 본질을 파악하고 문제가 해결 가능한지, 해결 불가능한지는 사실 본능적으로 알 수 있다. 하지만 우리는 해결 불가능한 일들을 끌어 안고, 해결 가능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빠지곤한다. 그것은 포기할 줄 모르는 끈기나 인내심이 아니라, 미련일 뿐이다.
이미 주어진 외모나 키, 인종처럼 바꾸지 못하는 것들이 존재한다. 부, 성적, 직업처럼 바꿀 수 있는 것들이 존재한다. 바꾸지 못하는 것은 맞이하고 바꿀 수 있는 것은 성장시키면 된다. 그림자가 싫어 도망간다고 해도 그림자에서 벗어날 수 없다. 이미 벌어진 일들에 대해 집착한다고 변하는 건 없다. 그것들은 나와 한뼘도 멀어지지 않고, 때에 따라서는 나보다 먼저 도착하여 나를 맞이한다. 그림자를 싫어하면 평생 피할 수 없는 미움 덩어리와 함께 하고 그림자를 좋아하면 평생 피할 수 없는 행복을 맞이 한다. 누구나 피하고 싶은 것들이 존재한다. 내 몸에 붙어 있는 손가락처럼 이미 그것은 이미 나의 일부다. 나의 일부를 도려내는 일은 가능할 지언정, '자해'일 뿐이다. 그것이 나의 것임을 인정하고 받아들여야 한다.
[사무엘하 2장 18절~32절] 인정할 것을 인정하지 않으면 손해다.
받아들일 부분은 받아들이고 편안하게 살아가면 그만이다. 사소한 것에 목숨을 걸고 있으면 정작 봐야 하는 큰 그림을 보지 못하게 된다. 우리가 그리는 그림은 '풀 한포기'가 아니라, 전체의 풍경화다. 이미 잘못 그린 풀 한포기 때문에 풍경화 전체를 망쳐서는 안된다.
불교 경전인 '열반경'에는 '맹인모상'의 말이 있다. 장님이 코끼리를 만진다는 뜻으로, 전체를 보지 못하고 자기가 알고 있는 부분만 가지고 고집한다는 말이다. 내가 더듬고 있는 부분이 원통모양이라고 해서 코끼리가 원통이 되진 않는다. 내가 더듬고 있는 부분이 장도과 같이 생겼다고 코끼리가 장독의 모양이 되지 않는다. 전체를 보자면 내가 전부라고 알고 있던 것들이 일부였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한다. 우리가 정확한 사물의 본질을 알아채기 위해서는 더 세세하게 대상을 더듬어 볼 것이 아니라, 감고 있는 눈을 떠야 한다. 보이지 않는 것들이 보이고, 불필요하게 섬세히 더듬던 것들이 보잘 것 없는 것임을 알야아 한다. 혹시 코기리의 발가락이 6개였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가? 1706년 스코틀랜드의 한 의사가 코끼리의 발을 절개하면서 시작된 코끼리 여섯번째 발가락의 연구는 사실상 많은 사람들이 모른다. 하지만 코끼리의 발가락이 5개인지, 6개인지 알아채지 못했다고 해서 우리가 코끼리를 알아보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본질은 반드시 큰 그림에 있으며 세세한 것을 때로는 잊고 인정해야하는 것 또한 인생 전체를 밝게 하는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