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민스님 이슈를 듣고 나서...
얼마 전, 혜민 스님 이슈가 한창 뜨거웠다. 굳이 이슈가 되는 것을 찾아보려 하진 않지만, 워낙 시끄러운 이야기들은 저절로 귀로 찾아 들어온다. 무슨 이야기인고 하고 듣고 보니 '무소유를 해야 할 스님이 말과 행동이 다르게 풀소유를 하고 있더라.' 하고 사람들은 이야기했다. '그렇구나' 했다. 사람들은 광분했다. 대중들에게 말하던 내용과 다른 삶을 산다고 했다. 그에게 속았다며 모두가 한 목소리로 그를 지탄하고 있었다. 지금껏 자신들에게 좋은 영향을 주던 사람이 뒤에서는 자신을 기만하고 있었다고 했다. 가만히 그 내용을 옆에서 지켜봤다. 소리 하나 없이 모니터 속 문자들이 시끄럽게 세상을 떠돌아다녔다. "뭐.. 일반적이진 않지만 스님이 '풀소유' 할 수도 있지." 가볍게 넘어가려던 나도 지나가는 문자를 놔두지 못하고 하나하나 잡아두며 살펴보고 있었다.
가만 생각해보면 우리는 '우상'에 대한 무결을 원한다. 내가 원하는 '우상'의 무결은 당연한 것이다. 그런 이유로 인간에 환멸을 느낀 대중은 '석가모니'나 '예수'와 같은 초인간적인 내적지도자들을 수 천 년이나 따르고 있는지도 모른다. 적어도 그들은 수 천 년의 인류 역사가 검증하고 걸러왔던 최대한의 무결점자들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 뒤로 그런 성인을 닮은 인간이 나오지 않았다는 사실은 사실상 아무리 무결점 하려고 하더라도 인간이라는 존재가 결점을 가질 수밖에 없다는 것을 방증한다. 나는 혜민 스님의 책을 3권을 가지고 있다. 그중에는 영국에서 출판된 영어 번역본도 있다. 그렇다고 내가 그에게 속았기 때문에 그 책의 가치가 무쓸모 있거나 무가치 있어진 것은 아니다.
소똥은 소가 무슨 의도를 가지고 만들었던 농부가 잘만 사용하면 좋은 거름이다. 남태평양을 지나가던 철새들이 영겁의 시간을 지나가며 배설하여 만들어진 '새똥 섬', 나우루 공화국은 새의 배설물로 인해 '인광석'이라는 자원강국이 되었었다. 물론 지금은 거의 고갈상태지만 새옹지마처럼 좋은 일에는 나쁜 일이 있고 나쁜 일에는 좋은 일이 있다. 굳이 찾아 나쁜 점만 바라볼 이유는 없다.
누가 어떤 의도를 지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그것이 비록 '악'한 의도였다고 하더라도 사용하기에 따라 그것은 '악'이 되기도 하고 '선'이 되기도 한다. 맛있는 요리를 하라고 만든 식칼은 잔혹한 살해 도구가 되기도 한다. 또한 살상을 유일한 목적으로 만들어진 '탱크'나 '소총'들도 결국은 사람을 지키는 용도로 사용된다. 단순하게 실험실 조수의 바보 같은 실수 때문에, 세계 최초의 '방수'라는 기술이 가능하게 되었다. 포스트잇이나 페니실린도 의도와는 다른 결과물들이다. 내가 사기꾼에게 속았다고 믿는 것은 스스로 얻어갔던 긍정의 만찬들을 더러운 토사물로 변질시켜 뱉어내는 일이다. 들어갈 때의 산해진미도 나오면서 부정의 토사물이 된다면 어느 쪽으로도 나에게 도움이 되질 않는다.
이는 스스로 자신의 실패를 누군가에게 돌리고 싶은 마음이다. 비록 가짜약을 먹고 실제병이 낫게 되는 플라시보 효과라고 하더라도, 그 약은 최소한 나에게 명약이다. 그가 남긴 여러 가지 흔적들을 그렇게 생각하는 게 좋다. 그를 위해서가 아니라 스스로를 위해서다. 대한민국 5000만, 세계 70억이 행하는 모든 '악'들 중, 내 눈에 띄는 '악'에만 몰입하고 싶지 않다. 대한민국에서는 년 간 309~360건의 살인 사건이 일어나며, 이는 근 10년 간 아주 빠르게 줄어들었지만 지금 이 순간에도 하루 두 명 씩, 누군가는 살인자가 되고 또한 누군가는 살해 피해자가 된다. 과연 우리는 세상의 모든 '악'을 심판할 정의를 지니고 있는가? 닭 장 속 닭이 모이를 쪼는 방식에 신경을 쓰고 지렁이 기어가는 자세에 신경 쓰는 것만큼 무의미하지 않을까. 이는 내 인생 일부를 떼어다 남에게 건네주는 격이다.
사람들은 그가 만들어낸 애플리케이션에 낮은 평점을 주며 온갖 욕설을 퍼부었다. 그러다 보니 그 '앱'이라는 것에 관심이 갔다. '그 앱은 무엇일까?' 스님이 개발했다는 명상 앱에 관해 뒤져보던 중, 최근 미국에서 명상 앱으로 유명한 CALM을 벤치마킹한 우리식 명상 어플이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혜민스님을 통해 알게 되었지만, CALM이라는 어플로 내 관심이 옮겨졌다. 스님이 어쨌다는 건, 더 이상 내 인생에 어떠한 좋은 영향도 미치지 않는다. 좋은 영향이 되는 것을 받아들이자. 어플을 설치했다.
해당 어플은 수면을 돕기도 하고, 명상과 음악이라는 파트로 나눠져 있으며 매일 3건씩 감사의 일기를 쓸 수 있도록 되어 있다. 알람 시간을 설정하여 명상과 음악, 수면을 관리할 수 있으며 유명 연예인이나 성우들의 내레이션을 통해 기분 좋은 휴식을 취할 수 있게 해 준다. 유튜브 알고리즘이니 뭐니 해도 그런 수동적인 정보에서 벗어나 자율의지를 갖고 주체적인 삶을 사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나의 가치관에 맞는 어플이라고 생각했다.
어쨌건 어플은 깔끔했다. 집중력 어플을 켜 두면 쉽게 집중이 가능하고 수면과 명상 모두 쉽게 스스로를 관찰하고 집중하기 쉽도록 해두었다. 이 어플은 벌써 시가 총액 1조 원짜리 유니콘이다. 우리나라 시가총액 1조 원이면 거의 '금호타이어' 시총이다. 물론 어플이 깔끔하고 좋긴 하지만 '미국'이라는 나라에서 사업하는 이들의 이점이란 엄청나다. 우리 아이들이 영어와 한자가 필수인 이유이기도 하다. 미국 상장 주식들을 보면, 별거 없어 보이는 사업 아이템으로 시가총액이 수십 조 인 경우가 많다. 얼마 전 미국에서 상장한 쿠팡이 큰 이슈를 끌었다. 100조 짜리 거대기업이 된 쿠팡과 최근 내가 아이들을 위해 분할 매수하는 '디어'라는 농기계 제조업 회사는 트랙터와 콤파인, 파종기, 목재 채벌 기를 생산하는 회사이지만 시가총액은 이미 135조다. 시가총액 135조 면 삼성전자를 제외하면 대한민국 코스피 코스닥 상장사 1위에 해당한 거대기업이다. 이런 회사에 투자할 수 있는 건 내가 어린 시절 해외에서 거주했기 때문일까? 부모님이 농사를 짓고 계서셔 그랬을까?
우상이 무너졌다고들 했다. 사람들은 자신이 구매한 책들을 버렸다고 했다. 그간 스님에게 속았다고 분통을 터트렸다. 아니다. 나는 지금도 그의 책을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다. 작년에 농장일을 하다가 나에게 상처를 냈던 귤나무에 달린 귤은 여전히 맛있고 값어치는 변하지 않았다. 중요한 것은 그가 무엇을 주었느냐가 아니라 내가 무엇을 받았느냐다. 나는 그로 인해 많은 것을 받았고 또한 그로부터 시작한 이야기들로 인해 더 많은 것들을 얻어 갔다. 우상이란 본래 인간이 금속이나 돌, 나무 등을 통해 신의 형상을 만들고 숭배하던 상을 이야기한다. 불상과 십자가가 상징하는 대상에 독실한 마음이 있다면 그것을 담고 있는 불상과 십자가는 허울이며 껍데기일 뿐이다. 그저 나무와 돌과 금속 덩어리일 뿐이다. 거기에 오물이 묻어 사용이 불가능하다면 또 다른 우상을 만들어 본질을 숭배하면 된다.
사람들은 우상이 무너졌다고 했다. 나는 내가 숭배하던 우상이 다른 형상으로 옮겨갔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