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 제주에 살아서 좋다

by 오인환

머물고 있다고 생각한 대부분의 것들이 빠르게 흘러간다. 예전에는 채우는 일에 급급했다. 비어있는 귓속을 채우기 위해 유행하는 노래를 이어폰에 꽂고 다녔다. 젊은 날의 비어있는 지갑과 이력을 채우기 위해 여러 가지 일을 하고 욕심을 갖고 살았다. 헛헛한 나의 옆자리를 채우기 위해 누군가를 만나기도 하고 비어있는 속을 끓임없이 채우기를 반복했다. 강박증처럼 무언가를 해내야 했고 어색한 누군가와의 자리에서의 입도 쉬질 않았고 아무것도 하지 않던 상념의 시간을 떼어내어 무언가를 암기해야 하는 강박의 시간을 살아야 했다. 채우고 채우고 채우는 일만 반복하다 보니 나의 그릇이 결국 작아 남아 있는 것이 얼마 없다는 생각이 든다. 자신의 그릇도 확인하지 않고 채우기만 반복하던 삶을 멈춰서 잠시 비우고 자신을 살펴볼 시간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매우 빠르게 바뀌어 간다. 가끔은 머릿속에 여러 잡념들이 사라지지 않고 부유물이 되어 떠다닌다. 그것들이 가라앉고 조금 투명해질 새도 없이 다른 부유물들을 채워 넣어 다시 떠돌아다니게 만든다. 돌이켜 보면 멀리 나가지도 못했는데 무엇을 위해 사력을 다해 바둥거렸는지 모르겠다. 흐르는 물살을 거스르고 있다고 생각도 못하고 열심히 팔과 다리만 버둥거리면 목적지에 닿을 것이라고 착각하고 살았다. 가끔 열정적으로 무언가를 했지만 제자리라고 느껴질 때가 있다. 마찬가지로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데 매우 빠르게 바뀌어가는 것들도 있다. 어디로 튈지 모르는 것이 인생이라고는 이야기를 어른들로부터 들었다. 공감하지 못했다. 나의 인생에 대한 확신이 있었다. 가고 있는 방향이 선명하게 보이는 시기엔 그 어떤 주의도 귀에 들리지 않는다.

어제와 오늘이 완벽하게 비슷한 하루와 하루를 살아가고 있음이 분명한데, 나는 과거의 나를 이해하지 못할 때가 있다. 과거의 나에게 이래라저래라 훈수를 두고 싶은 건 벌써 내가 나이가 먹은 꼰대이기 때문이다. 원죄를 모르는 크리스천처럼 죄를 죄인지 모르는 사리 분별없이 살았던 날이나 의도 없이 지었던 죄들에 대한 죗값들이 한 군데 엉겨서 응집되어 발현되는지도 모른다. 요즘은 어쩐지 혼자 있을 때에 아무것도 눈이나 귀에 넣지 않는다. 가끔 바닷에서 들리는 파도소리만 잔잔히 채워 넣는다. 차고 빠지는 물소리는 가만히 듣고 있노라면 내 머릿속과 과거 깊은 곳까지 들어왔다가 깨끗하게 씻어내려 가며 빠져나가는 듯한 착각이 든다.

설, 오랜만에 중학교 동창 녀석들을 만났다. 녀석들 얼굴들은 그대로인데 대화의 소재가 달라졌다. 내가 살던 촌구석은 생일날에나 한 번 겨우 먹어 볼 만한 패스트푸드점과 트렌디한 카페들이 즐비한 관광지가 되었다. 가만 생각해보니 가만히 있는 것과 변하지 않는 것은 몹시 다르다는 생각이 든다. 가끔 가만히 있는 것이 변하지 않는 것이라는 착각에 빠질 때가 있다. 하지만 가만히 있는다는 것은 주변의 변화에 몸을 맡기는 행위일 뿐 변하지 않는 것 따위는 없다. 작년에 물리학 책에서 '열역학 제2법칙'에 관한 내용을 읽었다. 자연계에는 에너지 보존의 법칙과 다른 자연현상의 비가역 진행방향을 결정하는 어떤 법칙이 있다고 했다. 헨리 애덤스의 엔트로피처럼 에너지의 분산, 열, 사멸, 혼돈을 향하는 경향에 의해 우리는 시간이 변함에 따라 빠르게 흩어져 버리고 없어져 버린다. 그러면서 생겨나는 변화는 나의 의지로 멈춰지지 않는다.

친구 녀석들과 바닷가에서 어린 시절 이야기를 하면, 꼭 나의 이야기가 아닌듯한 착각이 들 때가 있다. 지금의 나만 존재할 뿐, 과거에 순수하고 소박했던 어린 시절의 나는 존재하지 않는 듯 대했다. 불현듯 친구의 흘러가는 이야기 때문에 어렴풋하게 떠오르는 과거의 나를 되돌아보면 신비하게 내가 그것들을 알고 있으며, 또한 잊어버렸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어른들이 하는 수만 가지 생각들을 채워 넣는라 내가 갖고 있던 근본의 어떤 것들을 빠르게 꺼내어 폐기해버렸다. 유학할 때, 클럽에서 일을 했던 적이 있다. 저녁 9시부터 아침 9시까지 쉬는 시간도 없이 고된 일을 마치고 나면 다음 아르바이트를 하기 위해 이동했었다. 해가 질 때 잠을 자고 해가 뜨면 일어나는 것이 얼마나 큰 행복인지를 첫 회사를 입사하고 알게 되었다.

얼마나 바보 같은지, 그 회사에서 얼마나 행복했는지를 잊어버리고 다음 불만을 찾았다. 그리고 다음 단계로 이어 나아갈 때마다, 성장이라는 핑계로 꾸준한 불평과 불만을 이어나갔던 듯하다. 잊힐 가치가 충분하다고 생각했던 과거들이 시간이 한참 지나고 난 뒤에 그렇지 않았다는 것이 느껴질 때가 있다. 뉴질랜드, 나와 비슷하게 생긴 동양인을 보면 신기해서 쫒아다니던 시기를 지나, 나의 모국에서 비슷하게 생긴 사람들과 같은 언어를 쓰며 살아간다. 그때의 내가 바라본다면 몹시나 부러워할 지금의 오늘을 나는 이렇게 감흥도 없이 흘려보내는 듯하다. 중학교 시절에 읽었던 소설 '가시고기'에는 이런 구절이 있다.

'내가 헛되게 보낸 오늘은 어제 죽은 이가 그토록 갈망하던 내일이다.'

멀리 갈 것이 아니라, 내가 헛되게 보낸 오늘은 '과거 혹은 미래'의 내가 갈망하던 어느 꿈같은 날 중 하나일지도 모른다.

코로나 19가 사회분위기를 우울하게 만들어서 그런지 의미 없는 새해를 맞게 되었다고 생각해서 그런지 오늘의 일기는 '감사'나 '긍정'의 이야기보다 회한의 이야기가 가득 담겨 있다. 뉘우치고 한탄하는 것 또한 그러지 못한 어제보다 낫은 일이라고 자기 합리를 하고 일기를 마무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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