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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인환 Dec 23. 2021

[역사] 실은 어떻게 우리를 만들었는가_총보다 강한 실


인간의 몸은 추위를 견디기에 적합하지 않다. 인체의 평균온도는 섭씨 37도로, 체온이 조금만 떨어져도 건강에 심각한 문제가 발생한다. 인체는 고귀하면서도 단순한 화학 작용들로 작동된다. 이처럼 인체에서 작동하는 화학작용들은 대부분 높은 온도에서 발생한다. 체온이 35도 이하로 내려가면 우리 인간의 몸은 스스로를 보호하고 열 손실을 최소화하기 위해 일련의 조치를 취하는데, 작동해야 할 신체의 일부 기능을 크게 저하 시키거나 희생 시킨다. 말초혈관과 같은 혈관이 수축하고 호흡은 느려진다. 혈압이 낮아지고 심장박동은 불규칙해진다. 이는 신체와 더불어 정신적인 문제도 발생시킨다. 간단한 의사결정 문제도 해결능력이 현저하게 떨어진다. 지구는 약 260만 년 전에 커다란 빙하기에 접어 들었다. 아프리카가 열대 우림에서 초원으로 바뀌면서 나무 위의 원숭이들은 지상으로 내려와야 했다. 그들은 나무에서 내려왔지만 빙하기를 맞이하기에는 체온을 유지하는 능력이 현저하게 떨어졌다. 진즉에 얼어 죽고 멸종해야 할 사피엔스는 독특하게도 생존을 이어나갔다. 옷이 있기에 그들은 털이 필요 없었다. 옷이 감싸지 않던 머리에만 털이 수북하게 자라나는 이유도 그 중 하나가 아닐까 추론한다. 그들의 추위를 견뎌 낼 수 있었던 것은 불의 발견과 옷의 발견이었다. 추워진 세계에 인류는 살기 적합하지 않았다. 새로운 생활 양식을 가져야 했다. 숲이 사라지면서 유인원들은 먹이를 찾아 이곳과 저곳을 다녀야 했다. 그렇게 우리 인류의 조상들은 지구상에서 가장 지구력 있는 종으로 진화해 왔다. 옷의 발견은 우리 인간으로 하여금 '털'이 없어도 되게 만들었다. 털이 사라지면서 인간은 더 지구력 있는 동물이 되고, 엄청나게 긴 이동을 할 수 있는 능력을 갖게 됐다.


다른 포유류들과 비교했을 때 우리는 추위에 대한 방어기제가 효율적이지 못하다. 우리와 유전적으로 가까운 동물들은 대부분 갈색 지방 조직을 몸속에 갖고 잇다. 그들은 이런 지방 조직을 이용하여 열을 만들어낸다. 반면, 우리 호모사피엔스에게는 이런 지방 조직이 없다. 토끼는 영하 45도까지 견딜 수 있다. 하지만 토끼의 털을 모두 밀어 버린다고 하더라도 토끼는 0도까지 생존 가능하다. 반면 우리 인간은 옷을 입지 않을 경우 27도 정도면 쌀쌀함을 느낀다. 우리의 체온은 평균 37도다. 체온이 35도 밑으로 내려만 가도 우리는 저체온증을 겪고 29도 밑으로 내려가면 생존하기 어렵다. 이런 불리한 신체 구조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최초에 생존 가능하게 했던 '옷'이라는 것은 언제부터 입었을까. 우리가 옷을 언제부터 입었는지를 알기 위해서 과학자들은 '기생충'을 이용하기 시작했다. 몸니(body lice)는 사람의 몸을 먹고 산다. 인간의 각질과 같은 신체조직을 먹고 사는 이런 기생충들은 아주 오랜기간 우리와 함께 했다. 일종의 이런 변종 기생충들이 우리의 몸에서 함께 기생하면서 살 때, 그들 또한, 옷이 있어야만 생존할 수 있었다. 이 몸니와 머릿니의 진화 시점을 파악하면 우리 조상들이 언제부터 옷을 입었는지를 확인 할 수 있다는 것이 과학자들의 추론이다. 이 추론에 따르면 인간은 대략 4만 2천 년 전과 7만 2천 년 전 사이라고 추론한다. 사실 이 추론이 맞다면 최초 빙하기를 인간이 맨 몸으로 견뎠다는 이야기가 되지만, 아마 그 훨씬 이전부터 옷을 입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옷은 인간의 생존과 가장 관련이 깊었다. 마치 따뜻한 겨울을 보낼 수 있는 이와 그러지 못하는 이를 구별하는 것이 '계급'과 '부유함'의 차이라고 보여주 듯, 인간은 이 옷감을 일종의 화폐로 사용하기도 했다. 노예들은 자기가 가진 옷을 다른 옷과 바꾸기도 하고 현금과 교환하여 경비를 마련하기도 했다. 고로 사람들은 사람이 입은 옷감을 보고 그 사람의 지위를 확인하고 평가했다. 남의 눈에 어떻게 보여지는지는 무리 생활을 하는 동물 세계에서는 인간만이 특별한 특징도 아니다. 대략 2000만 년 전 목화는 지금의 형태처럼 진화했다. 목화는 15도 정도로 따뜻한 기온에서 자라나는 식물이다. 서리가 없어야 하고, 강수량도 연간 50~62 센티미터 환경에서 자란다. 즉, 이것은 공급지와 수요지가 다르다는 것을 의미한다. 인간이 목화를 생산하고 소비하는 과정을 보면 우리 인간의 경제 활동에 대해 대략 짐작해 볼 수 있다. 쉽게 우리 나라의 문익점 선생이 붓뚜껑에 목화씨를 갖고 들어왔다는 이야기는 너무나 유명하다. 실제로 굉장히 까다로운 조건에서 서식하는 이런 목화는 남위 32도에서 북위 37도 사이에서만 재배가 가능하다. 목화의 재배는 국가에서 관리하는 극비사항 중 하나였다. 일종의 산업 스파이와 같이 목화 재배의 비밀은 철저하게 부쳐졌으며 해당 국가의 경제에 커다란 도움이 되기도 했다.


이런 목화를 이용하여 섬유를 만들고 천과 밧줄을 만들 수 있다는 사실은 아이러니하게도 인더스강 주변이었다. 영국으로 하여금 '실'에 의해 경제적 수탈을 당하던 '인도'가 해당 문명의 최초 발생지라는 사실은 역사의 아이러니기도 하다. 따뜻한 인도에서 그다지 필요하기 힘든 이런 목화는 제대로 재활용되어 섬유가 되었다. 이처럼 점차 목화의 사용범위가 넓어지면서 유럽에서는 이를 이용하여 여러가지를 만들었다. 돛이 그 중 하나다. 인력을 이용하여 항해할 수 있던 시기, 바다는 개척지나 항로가 아니라 그저 막혀 있는 세상의 끝과도 같았다. 이 곳을 길로써 이용하게 한 것은 돛의 역할이 컸다. 바람을 이용하여 배의 추진력을 갖게 하는 돛은 인간의 경제 활동 범위를 더 크게 만들었다. 목화와 후추를 갖고 오기 위한 서구 유럽인들의 탐욕은 유럽에서 아프리카 희망봉을 돌아 아시아로 넘어가는 항로를 만들어 냈다. 유럽의 무역상들은 운송료가 높고 위험한 육로 교역에서 값싸고 안전한 해상 교역의 길을 연 것이다. 1766년에는 무슬린과 옥양목이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는데, 당시 영국 동인도 회사의 수출품목 가운데 75%가 면직물일 정도였다. 세상이 더 많은 목화를 필요로 함에 따라, 더 많은 노동력이 필요 했다. 영국은 다른 나라를 식민지화 하고 플랜테이션을 할 때, 아프리카 흑인들을 이용하기 시작했다. 그들이 아프리카 흑인들을 구매하기 위해 사용한 화폐는 아이러니하지만, 면직물의 비중이 높았다.


이런 면직물의 발견으로 산업혁명은 시작했다. 산업혁명을 이야기하면 가장 먼저 떠올리는 '제니방적기' 또한 면직물을 위해 개발되었다. 세상은 의류 산업을 육성했다. 의류와 식품은 지금도 지구상에서 가장 큰 산업 중 하나다. 다른 어떤 산업에 비해서 소비되고 버려지고 사라지는 황금알 낳는 거위인 산업을 서유럽은 산업혁명 이 후 부터 지금 껏 놓치지 않고 있다. 사실상 우리가 기술 강국이라고 여기는 미국과 서유럽 모두 따지고 보자면 의류, 패션, 식품의 기초 산업이 튼튼한 경우가 많다. 프랑스, 이탈리아, 영국의 경우에는 대표 지수 상위 10개가 대부분 패션 의류인 경우가 많다. 실은 사실 굉장히 많은 곳에서 활용된다. 우주나 운동에서 뿐만 아니라 우리의 역사와 문화, 사회에 반드시 포함되어 있다.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라는 말과 같이 '옷이 날개다', 라는 말이 있다. 옷은 사람의 품격을 나타내고 그 이상의 것을 주기도 한다. 굉장히 오랜 기간 우리의 정체성을 만들어주고 지켜줬던 옷은 사실 총이나 칼보다 더 강력하게 우리를 보호하고 지켜준 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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