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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인환 Jan 06. 2022

[인문] 대중은 속이기 쉬운지?_대중은 멍청한가?

 얼마 전, 우리 신문과 뉴스에 '후지산 대폭발 임박'이라는 기사가 났다. 일본 도쿄에 있는 '후지산 대폭발'이라는 자극적인 기사는 엄청난 조회수를 기록하며 한국 여러 매체에서 다뤘다. 이처럼 많은 이들이 해당 기사를 검색하고 들어와 보며 이슈화됐다. 해당 기사에는 '전문가'의 의견을 포함하여 후지산이 2022년에 폭발할 것이라는 주장을 하고 있었다. 사실일까. 후지산이 언제 터지더라도 이상하지 않다는 것은 분명하지만, 마치 올해 안에 대폭발이 터질 것 같은 불안감을 조성하는 기사에 이처럼 많은 이들이 조회하고 관심 갖는다면 사회의 불안감은 얼마나 극도로 높아질까. 아이러니하게도 '후지산대폭발'에 관한 기사가 한국에서 도배되고 있는 동안, 도쿄 집값과 주가는 전혀 요동도 하지 않았다. 되려 우상향하고 있다. 환율도 굉장히 안정적이다. 세계적 거대 도시에 위치한 거대 화산이 폭발할 경우 일본과 도쿄의 피해는 막심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본시장'은 여기에 반응하지 않았다. 사람들은 해당 기사를 읽고 실어나르며 믿는 것 처럼 여기지만 실상 그저 재미로 읽고 흥미로 넘겨 가며 실제로는 속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하는지도 모른다. 독일 나치와 중국 공산당을 비롯해 대중을 속이는 '프로파간다'에 대해 소수가 대중을 속여 그들을 움직였다라기보다, 대중의 바람이 '소수'에 의해 발현됐고 이것이 마치 소수에 의해 대중이 움직일 수 있음으로 비춰졌다는게 이 책의 핵심이다.

 흥미로운 주제. '대중은 멍청한가?' '대중은 속이기 쉽지 않으며 집단 지성은 굉장히 이성적이다'라는 주장을 위해 저자는 400페이지의 글을 쓰고 100페이지의 레퍼런스 출처를 달았다. 결과부터 보자면 굉장히 흥미로운 주제와 재밌는 논거를 들고 있지만, 나를 설득하는데는 실패했다. 다만, 책을 읽는 동안 새로운 시선에 대해 알게 됐다. 이런 책들은 개인으로 좋은 책이라고 생각한다. 집단이 우매한다면 어째서 아직도 많은 사람들은 '지구 평면설'을 신뢰하지 않고 있으며, 파퓰리즘의 정치인이 필승하지 않는지. 여러가지 의문점을 저자는 갖는다. 철학자 쇠렌 키르케코르는 '진실은 언제나 소수의 몫'이라고 주장했고, 마크 트웨인은 다수는 항상 틀린다고 했다. '플라톤'의 철학에 따르면 다수가 지배하는 세계에서는 군중을 마음대로 조종하며 독재자가 되는 지도자가 필연적을 생겨난다. 플라톤은 정치는 엘리트들의 몫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선동과 세뇌'에 취약한 다수에 의해 정치가 필연적으로 올바르지 않게 될 것이라는 것이다. 이 책에서는 이런 플라톤의 생각에 대해 잘못됐음을 여러 예시를 통해 주장한다. 일부는 맞고 일부는 맞지 않다. 한국 전쟁 이후 23명의 미군 포로가 중국을 택했다. 이는 세뇌를 통해 사람의 사상을 개조 할 수 있음에 근거가되기도 했다. 다만 저자의 주장에 따르면 4,400명의 포로 중 23명 만이 전향 했다는 것은 백분율로 0.5%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단 한사람을 설득하고 사상을 바꾸는 것이 어려운 것처럼, 대중을 속이고 전향시키는 것 또한 쉽지 않다고 주장한다. 

 목표를 함께하는 이들 간에는 반드시 '신뢰'가 생겨난다. 이는 간단한 사고 실험으로도 알 수 있다. 가령 도로 가로 막고 있는 커다란 돌덩이가 있다고 해보자. 돌덩이에 의해 가던 길에 장애가 생긴 '생면부지의 낯선이들'은 그 돌을 둘러싸고 들어올린다. '하나, 둘, 셋!' 이 구령에 돌을 들어 도로 뒷편으로 치울 때, 우리는 함께하는 이들에 대한 의심을 거둔다. "저 사람이 나보다 힘을 덜 주면 어쩌지?", "저 사람이 셋에 들어올라자고 했던 말을 믿어도 될까?" 따위의 고민을 하지 않는다. 이는 공통된 목적과 이유가 있는 이들 사이에 신뢰가 생겼기 때문이다. 즉 다수가 어떤 허무맹랑하다 싶은 거짓에 속아넘어가는 것 처럼 보이는 이유는 그들이 멍청해서가 아니라, 어떤 주장을 하는 소수와 목표가 갖기 때문이다. 목표가 같은 이들 간에는 신뢰가 쌓인다. 이런 신뢰는 마케팅이서 사용된다. 목표를 함께 하는 이들에 대한 신뢰는 '상표'로 사용된다. 무수하게 많은 제품에는 '당신의 편의를 고민했을 법한 브랜드의 물건'과 '당신을 속이고 돈을 벌기 위한 물건'이 혼잡되어 있다. 이 중, 당신과 그 목표를 함께 고민했을 법한 물건을 찾는 방법은 '상표'다. '우리는 당신과 같은 고민을 하고 있습니다.'라는 목표의식을 상대에게 심어주는 것은 훌륭한 브랜드 가치성장의 기본이다. 

 우리의 역사중 대중의 광기를 설명하기 위해 사용되는 몇가지 사건에는 사실 굉장히 이성적인 대중의 태도들이 숨어져 있다. 프랑스 대혁명에서 군중들이 바스티유 감옥을 습격했을 때, 사망자 100명은 대부분이 혁명가였다. 승리를 쟁취한 분노한 군중들은 간수을 죽이지 않았다. 분노의 군중들은 두 달 뒤 프랑스 파리 시청을 장악했지만, 그들은 공문서를 찢는 등의 행동을 했으면서도 그 안에 쌓여 있는 돈다발을 건들지 않았다. 다시 그들은 창고와 설탕판매점을 장악했다. 아이러니하게 분노의 군중은 상점의 물건을 약탈하지 않았으며, 구매 시 할인을 요구할 뿐이었다.  잉글랜드 농민들은 14세기 장원과 성과 교회를 점령했는데, 그들 또한 무차별적인 약탈이나 살해는 하지 않았으며 일본의 막부시대에 일어난 7,000건이 넘는 민중봉기에서는 표적으로 삼은 사람들의 2%만 살해 되었다. 미국 셰이스 반란 또한 수 천의 군중이 함께 했으나  단한명의 사상자도 생겨나지 않았다. 이처럼 놀라울 정도로 절제된 행동과 이성을 갖고 있던 군중은 1966년 중국 우한에서도 있었다. 그들은 문화혁명을 반대하는 사람들을 표적으로 삼았었는데, 이들은 자신들의 표적의 99.9%를 살려줬다. 집단 공황상태로 불려지는 것처럼 폭동의 다수들은 이성을 잃거나 무절제하지 않고 꽤 질서 정연한 모습을 보였다는 것이 논거로 사용됐다.

 굉장히 설득력 있는 이야기들이 책의 전반적으로 자주 사용됐다. 다만 이 책은 나를 설득하지는 못했다. 대중은 이성적이고 절제적이며 굉장히 현명하다는 생각에 나는 동의 할 수 없다. 나 또한 집단 지성을 신뢰하지만, 이상하게도 대중은 역사상 참 바보 같은 일들을 많이 벌렸다. 심지어 다수가 같은 착각을 하게 된다는 '만델라 효과'를 비롯해 집단 심리 현상들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우리가 '섹스 앤 더 시티'라는 드라마를 '섹스 인 더 시티'로 착각하는 다수는 착각하며, 터미네이터에서 용광로로 들어가며 엄지손가락을 추켜세우며 했던 "I'll be back"은 해당 장면에 없다. 하지만 대중은 심지어 그 장면을 똑똑히 기억하곤 한다. 미키 마우스의 바지가 멜빵이 아니라는 사실과 롯데월드 어드벤처에서 실제로 타 본 사람과 그곳에서 추억을 쌓았다는 사람들이 다수였던 아크어드벤처라는 '어트렉션' 또한 다수가 동시에 갖고 있는 착각일 뿐이다. '이수역 폭행사건'이라는 이름으로 우리나라에서 유명했던 '여혐'사건은 사실상 20대 남녀의 쌍방 폭행으로 밝혀졌으나, 일방적인 주장과 표면적인 사실만 접한 대중이 30만이나 국민청원에 동원되며 '다수'를 얼마나 기만할 수 있는지가 근래에서도 증명되기도 했다.

 책은 꼭 읽어 볼 필요는 있다. 책의 저자는 민주주의의 굉장히 긍정적인 면을 보고 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민주주의와 대중은 반드시 긍정적인 모습만 담고 있지 않다는 것도 인정해야 한다고 본다. 히틀러와 괴벨스는 '대중'을 우매하고 어리석게 봤다. 그들은 한 명을 속이는 것은 어렵지만, 다수를 속이는 것은 훨씬 쉽다는 생각을 주로 갖고 있었다. 대중을 속이는 것은 생각보다 쉬우며, 이치보다는 감정에 호소하고 단순화한 슬로건을 반복하여 마음에 심어 놔야 한다고 믿고 있었다. 대중에게 감정과 단순함을 강조해야 한다고 본 이유는 그들의 지적 수준과 이해력을 맞춰야 하기 때문이라고 그는 생각했다. 이론가보다는 선동가가 더 지도자에 적합하고 신앙을 갖는 이들을 단순한 사람으로 매도하기도 했다. 그의 생각을 옳다고 말하는 것이 현대에와서 지탄 받을 지도 모른다. 다만 대중이 선동과 세뇌에 의외로 취약하다는 것은 아이러니하지만 받아들일 수 밖에 없는 사실일 수도 있다고 본다. 그렇다고 해서 책의 내용 전반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기에, 어떤 현상과 대상을 일반화하지 못한다는 내 철학에 맞게 양쪽을 모두 받아들이기 위해 노력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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