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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인환 Jan 26. 2022

[생각] 본질의 중요성#8

인플루언서 글쓰기 정지중(D-11)

 군입대를 하면 훈련소에서 첫 주에 '제식훈련'을 한다. '제식훈련'이란 군대생활에서 기본적인 규칙과 동작을 배우는 훈련이다. 바짝 긴장한 훈련병들은 바보같은 방탄모를 쓰고 교관을 바라본다. 교관은 무표정한 얼굴로 훈련병에게 군인의 걸음 동작에 대해 설명한다. 

"주먹은 계란을 가볍게 쥐듯 둥글게 말아줍니다. 호루라기 소리에 맞춰, 오른발을 앞으로 내밀면, 왼손은 가볍게 들어올려 45도 각도로 올립니다. 다시 왼발로 땅을 차고 앞으로 나아가면 왼손은 천천히 내려 등 뒤로 15도를 올리고 오론손을 가볍게 들어올려 45도 각도로 올립니다. 이때 왼발을 들어올려 앞으로 내밉니다. "

 '삑~삑~호루라기 소리에 맞취 군인들이 간단한 걸음거리 동작을 하는데, 참 재밌는 건, 설명은 복잡했으나 결국 전체 그림을 보자면 그냥 가볍게 걷는 모습이다. 하지만 이런 걷는 동작에 대한 설명을 들은 훈련병들은 참 괴기한 동작을 하곤한다.

 마치 처음 태어난 사람이 걸음 걸이를 배우는 것처럼 셋 중 하나는 오른손과 오른발을 올리는 괴기한 동작을 취한다. 이런 훈련병은 교관에게 지적을 당하고 교관은 앞서말한 동작을 다시 설명한다. 설명을 듣고 한참을 머릿속으록 고민과 계산을 하는 훈련병들은 다시 머릿속 시뮬레이션이 끝난 뒤 동작을 취해본다. 마찬가지로 오른손에 오른발이 올라간다.

 이런 바보같은 일들은 흔히 명문대를 나왔다는 훈련병부터 입대 전, 초등학교 교사 생활을 했다는 훈련병까지 빠짐없이 경험한다. 전체적으로 무엇을 하기 위해 하고 있는가를 보지 못하면 보통 이런 현상이 일어난다. 비슷한 현상은 군대에서 자주 일어나는데, 반드시 훈련소가 아니라 일반 내무 생활을 하는 자대에서도 종종 일어난다. 사회에서 똑똑하던 이들은 빗자루질을 하는 일이나 단순히 이부자리를 개어내는 일도 제대로 하지 못한다. 

 "도대체 내가 이걸 왜하고 있는거지? 지금하고 있는 동작들은 무엇을 위해 하는 거지?"

본질이 해석되지 않은 일들을 하는 사람들은 사소한 일에 실수를 한다. 군입대를 하는 이들의 대부분은 자발적인 입대가 아니기 때문에 군대가 바라는 큰 그림을 고민하지 않는다. 이처럼 집단의 큰그림이 개인에게 제대로 설명되지 않는 경우 엄청난 비효율이 일어나곤 한다. 군입대를 예로 들었으나 비슷한 현상은 사회에서도 많이 일어난다. 20대 초반에 서울의 한 회사에서 짧은 사회생활을 했다. 당시 내가 맡은 역할은 해외에서 발생한 거래의 클레임에 대응하는 일이었다. 회사는 작지 않았으나 그 곳에는 영어로 제대로 된 대응을 할 수 있는 사람들이 없었다. 사무실에 앉으니, 사수는 '컴퓨터 폴더'을 하나 열어주고 말했다.

 "이쪽에서 만약 이렇게 대응하면 1번 파일에 적혀 있는 글을 복사해서 붙이세요."

 "만약 이쪽에서 저렇게 대응하면 2번 파일의 글을 복사해서 붙이세요."

 

 일단 주어진 업무에 대해 '동작'을 배웠으나, 전체적으로 어떤 과정 중에 일어나고 있는 일인지 알지 못했다. 첫 업무를 시작하자, 회사 메일로 글이 하나왔다. 해외에서 온 글이었다. 사수가 말한대로 폴더 내에 있는 글을 복사해서 붙였다. 이런 업무를 수 시간하다보니, '지금 뭘하고 있는거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메일의 내용을 꼼꼼하게 살펴봤다. 상대는 앵무새처럼 같은 소리를 반복하는 '한국의 거래인'에게 불평불만을 하고 있었다. 폴더 내에 있는 글들을 살펴보니, 그곳에는 문법적으로 괴상망측한 영어가 적혀 있었다. 당시 미국에서 살다 온 교포2세가 함께 입사를 했는데, 아무리 봐도 너무 비합리적인 방식이라고 생각이 들었다. 그와 나는 사수에게 아무래도 영어 문법을 조금 손봐야 할 것 같다고 말씀드렸다. 그러자 '굉장히 오래 전 부터 쓰던 글이야. 그냥 복사 붙이기나 해. 글은 건들지 말고.' 라고 대답이 돌아왔다. 마치 번역기로 돌린 것처럼 엉성한 글을 복사 붙이기를 한 달 정도하고 간단한 전화통화 응대를 몇차례 한 뒤, 나는 해당 회사를 퇴사했다. 본질이 없는 행위는 사실상 겨우 유지를 가능하게 할 지언정 진보하게 하지 못한다. '나는 지금 이 일을 왜 하고 있는가', '이 행위는 무엇을 위한 일인가.' 꾸준하게 생각하고 고민해야 한다. 큰 그림이 없다면 하는 일에 의문이 생기기 마련이다. 의문이 생기면 지속하기 힘들다. 지속하기 힘들면 성장하기 힘들다. 

 매장의 상품 정리정돈을 의미하는 '디스플레이'를 하다보면, 보기 좋게 정리하느냐, '잘 팔리도록 정리하느냐'의 딜레마에 빠지곤 한다. 잘 보이도록 정리된 상품은 진열 뒤, '만족'스러움이 느껴진다. 다만, 비즈니스의 본질은 '판매'다. 어떻게 팔더라도 잘 팔리는 것이 우선이다. 매장 매니저를 하던 시기 유독 팔려나가지 않는 상품이 있었다. 묶음 판매로 되어 있는 세트 상품이었는데, 아마 세트 가격 자체의 단가가 높기 때문에 판매가 일어나지 않는 듯 했다. 나는 해당 상품을 모조리 뜯어 버렸다. 그리고 이를 낱개로 판매했다. 그렇게 팔려나가지 않아 창고 재고가 되던 상품은 '재주문'을 해야 하는 상황까지 이르렀다. '무엇을 위해'는 반드시 필요하다. 간혹, 이런 상황을 '융통성'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전체의 윤곽이 파악이 되면 세부사항에 대해서는 '전체의 흐름에 맞게 용인된다.'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융통성은 언제나 발휘해선 안되겠지만, 중요한 순간에 정체되어 있는 흐름을 뚫고 나가는데는 핵심적인 능력이다. 그를 위해서는 전체를 보고 핵심과 본질을 꿰뚫는 통찰력이 필요하다. 통찰력은 하는 일에 대한 '전문성'으로만 형성되지 않는다. 다양한 관심사에 대한 이해와 호기심을 가져야 한다. 비록 그것이 나의 본업과 상관없는 일일지라도... 그것은 독서로 해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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