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오인환 Feb 06. 2022

[리뷰] 코로나, 세월호 또..._지금 우리 학교는

"나는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라가 되기를 원한다. 가장 부강한 나라가 되기를 원하는 것은 아니다. 내가 남의 침략에 가슴이 아팠으니, 내 나라가 남을 침략하는 것을 원치 아니한다. 우리의 부력은 우리의 생활을 풍족히 할 만 하고, 우리의 강력은 남의 침략을 막을 만하면 족하다. 오직 한없이 가지고 싶은 것은 높은 문화의 힘이다." - 백범 김구 <나의 소원> 중에서

 사람들이 모였던 장소가 폐쇄되고 영화, 연극, 콘서트 등 문화 산업이 어려움에 겪었다. 코로나19는 세계 문화 시장을 폐쇄적으로 만들었다. 다만 넷플릭스는 다르다. 작년 넷플릭스 유료가입자는 2억명을 돌파했다. 코로나19의 여파로 전세계 인터넷 사용 인구 15명 중 한 명은 넷플릭스를 유료 구독하여 시청하고 있다. 한 미국 회사의 성공으로만 보기 힘들다. 넷플릭스는 2021년 <오징어게임>을 공개했고 역대 넷플릭스 시청수, 누적시청시간 

1위를 기록했다. 그 뒤로 넷플릭스가 공개하는 한국 컨텐츠는 꾸준히 세계 1위를 순차적으로 기록한다. 최근 세계 곳곳에서 1위를 기록하는 한국드라마가 있다고 하여 3일 간 밤을 세우며 정주행했다. 요즘은 '그런가 보다'하는 '세계 1위'를 조금만 깊게 생각해보면 결코 당연한 일은 아니다. 전 세계인들이 동시에 한 컨텐츠를 시청하는 문화는 생겨난 지 얼마되지 않았다. 대게, 세계인들에게 전파되는 문화컨텐츠들은 본국에서부터 순차적으로 흥행을 하고 일정 흥행보증이 되고 판권 구매를 통해 해외로 판매된다. 문화전파의 속도는 그만큼 시간차가 발생하고 더디게 쌓인다. 할리우드 배우들의 제스처나 말투를 따라하고 옷을 흉내내며, 그곳으로 여행을 가서 그들 처럼 생활하는 것에 동경심을 갖는 것은 문화의 힘이다. 세계 1위 컨텐츠를 한국배우의 연기를 통해 한국어로 들을 수 있는 건, 시대를 잘 만난 행운이다. 최근 대한민국의 컨텐츠가 세계 곳곳에 동시에 흥행하는 것을 보며, '코로나19'라는 위기를 기회로 잘 활용했다는 생각이 든다. 코로나19로 인해 문화 컨텐츠를 스마트폰으로 각자 소비하고, 팬데믹 이후에는 관광, 산업, 유학 등의 오프라인에서도 파급효과를 가질 것이다.

 '지금 우리 학교는'은 '폭력'과 '따돌림' 등의 소재로 시작한다. 청소년들 사이에서 '범죄'의 범주를 넘어서는 일들이 곳곳에서 일어난다. 사회는 이를 방관하고 해결의 몫을 '각자'에게 넘긴다. 처음 드라마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사회 시스템'과 '문화'의 부재다. 개인에게 해결의 몫을 넘기는 일은 문명적이지 못하다. 이성이 사라진 '좀비'들은 공격성만 남는다. '강약'만이 남은 상태가 사회를 어떻게 만드는지, 디스토피아는 어떻게 완성되는지 보여준다. 사회로 부터 방치된 이들이 개인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려고 한다. 그렇게 개인들이 만들어내는 '일탈'은 예기치 못한 부작용을 만들어낸다.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한 해결책은 결코 아름답게 사회에 인정받지 못한다. 드라마의 배경인  '효산고' 과학교사는 사회가 해결해주지 않는 문제를 직접 해결하기로 한다. 그리고 따돌림을 당하는 자신의 아들을 '괴물'로 탄생시킨다. '힘의 논리' 가장 적합한 상태로 변화시다다. 사회가 원하는대로, 강한자는 살아남고 약한자는 살아남지 못하는 사회에 최적화된 것이다. 다만 여기에는 부작용이 있었다. 바이러스는 전파한다. 가장 가까운 사람들에게서 옮기고 가장 가까운 사람을 전염시킨다. 바이러스는 변이하고 누가보더라도 해결책은 존재하지 않는다. '격리'가 유일한 해결책이 되는 상황에서 사람들은 '코로나19'를 보게 된다.

 

 세계 많은 대중은 '팬데믹'이 보여준 각국 행정력의 무능을 맞이했다. 세계 다양한 나라에서 이에 공감했다. 서로 각자가 조심하고 살아남지 않으면 사회가 보호해 줄 것 같지 않다는 생각은 점차 퍼져 나갔다. 감염자는 '친구'에서 '적'으로 변하고 점차 스스로가 절대소수가 되어간다. 심리적 불안감을 느낀다. 영화는 '학생'로 이야기를 전개한다. 어른들이 시키는대로 잘 따르기를 교육 받는 학생들은 상황이 진전되면서 점차 '어른들의 말'을 듣는데 회의감을 느낀다. 어른들은 역시나 절대 다수의 편에 든다. 드라마는 절대 소수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만, 역시나 사회는 절대 다수를 위해 절대 소수를 포기하는 선택을 연속한다. 중반부터 후반까지는 우리 사회가 2014년 겪었던 참사를 떠올리게 한다. 드라마에서 '노란리본'이 등장한다. '교복'과 '노란리본'이 우리 사회에서 상징하는 바는 명확하다. 그것을 의도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그것을 느끼게 될 것이란 것은 제작 과정 중에도 제작진도 인지할 것이다. 항간에는 '교통사고 사망자 수가 연간 5천명이니, 세월호보다 16배나 많다.'라고 말한다. 옆 집에서 사망사건이 생겼다고, 우리집 강도 사건이 괜찮아진 것은 아니다. 행정의 무능을 지켜보며 우리 사회는 '트라우마'를 남겼다. 사회 시스템은 어떻게 작동 해야하고, 책임과 무책임은 어떻게 처벌하고 관리해야 하는지 우리는 한차례 겪었다. 영화는 이를 다시 확인시켜줬다. 2008년 세계는 경제 위기를 겪었다. 경제 강국이라는 국가들의 위기에 처해진 반면 대한민국은 이를 잘 해쳐나갔다. 1997년 IMF 구제 금융 기간 동안 한 차례 선행 학습을 했기 때문이다. 이후 대한민국에는 커다란 트마우마를 가졌지만, 이를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를 배웠다. 세계를 휩쓰는 바이러스에 '백신 접종'을 한 것과도 같다.

 커다란 이벤트가 발생하고 나면, 세상은 '악마'를 만들어 낸다. 마치 '히틀러', '이완용'이라는 명확한 '악역'에게 모든 죄를 뒤집어 씌우고 스스로 죄로부터 독립해 나가간다. 세월호 사건이 터지고, 우리는 난데없이 '악역 찾기'를 시작했다. 사건의 본질은 사라지고 누군가 죄값을 옴팡 뒤집어 쓸 사람을 찾아나섰다. 누군가를 찾고, 다시 또 누군가를 찾는다. 코로나19에서도 사회는 '종교', '지역', '계층' 등을 설정하여 '악역'을 만들고 본질을 흐리게 했다. 따지고 보자면 '본질'이 흐려진 사건에서는 교훈을 얻기 힘들다. 앞서 말한 '이완용', '히틀러'를 옹호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정말 그 인물 하나가 사건의 본질인가 하는 것이다. 그렇지 않다. 다양한 사회 구성원들과 시스템이 짊어질 책임을 한 타겟에 모두 옮겨 놓는 일이다. '지금 우리학교는'은 사실 담고자 하는 내용이 과하게 많아 보였다. 너무 많은 내용을 말하고자 하니 부산하기도 하다. 일관적인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 만든 드라마는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다만, 이윤 추구를 최우선으로 하는 '상업드라마'의 본질을 살필 때, 메시지는 둘 째다. 무조건 흥행이다. 좋은 글은 잘 쓴 글이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읽는 글이고, 좋은 영화는 잘 만든 영화가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보는 영화다. 그 쓰임에 충실한 역할을 했던 것들이 '좋은 것들'이다. 고로, 이 드라마는 다수에게 선택받은 꽤 성공적인 작품이다. 드라마를 볼 때, 중간 중간 영어 더빙본으로 바꿔 보기도 했다. 한국식 유머가 모두 번역되지 않는 부분도

 있었다. 이것을 원어로 이해하고 봤다는 것에서 감회가 새롭다.

작가의 이전글 [계발] 훌륭한 서퍼도 파도가 쳐야 일어설 수 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