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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인환 Feb 20. 2022

[계발] 당신에게 '긍정'이 필요한 이유

하이로우, 진동의 법칙

 '긍정', '감사', '균형'

 내가 인생에 대해 가지는 철학은 이 세 가지다.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매사에 감사하며 균형적으로 바라보자. 더 멋진 말들도 많겠지만, 이 세가지면 나에게는 충분하다. 책을 읽다보니 나의 인생관을 정확하게 간파하는 내용들이 이어져 나왔다. 남태평양에 날씨 좋은 나라에서 10년을 공부했다. 어찌나 날씨가 좋던지 처음 한 달 간, 햇볕이 강하다 못해 눈과 피부를 때렸다. 그렇다. 말 그대로 태양광은 나의 눈과 피부를 때리고 있었다. 어찌나 햇볕이 강렬한지 해가 지고나면 눈이 피로하고 피부는 따가웠다. 사람들은 오존이 파괴된 남반구의 특징이라고 했다. 일부의 사람들은 만날 때마다 날씨 이야기를 하며 불평으로 시작했다. 안타깝게도 그는 짧은 어학연수 기간 내내 불평을 하다가 돌아갔다. 그곳의 사람들에게 선크림과 선글라스는 필수품이다. 내리쬐는 햇볕을 통제하는 것이 얼마나 힘든가. 사람들은 그런 이유로 외출 시 선크림을 바르고 선글라스를 챙기고 다녔다. 선글라스를 끼면 눈이 편안하다. 이미 뚫려 있는 오존을 막을 수는 없다. 혹은 지구로 내리쬐는 태양볕을 조절할 수도 없다. 우리가 할 수 없는 일에 목숨을 걸 수는 없다. 어쩔 수 없는 일은 어쩔 수 없는 일로 두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에 최선을 다하면 된다. 태양의 밝기를 줄이는 방법을 택하는 것 보다 콧등으로 검정 선글라스를 착용하는 편이 수월하다. 그것은 훨씬 경제적이고 쉬운 방법이다. 외부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을 제어할 수는 없다. 우리에게 태양볕과 같은 외부적인 장애가 생겼다고 하더라도 해결 방식은 같다. 해결책을 외부에서 찾으려면 우리 가능할 지언정 불필요한 에너지를 소모하게 된다. 해결책은 가깝고도 쉬운 '나'에게 대부분 존재한다.

 세상을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일은 내리쬐는 햇볕을 그대로 두고서 내 눈에 검은 안경을 씌우는 일이다. 검은 안경을 쓰고 나자, 내리쬐던 햇볕은 단점이 아니라 장점이 되었다. 보기 편한 눈에서 반짝 거리는 바다와 자연이 한 눈에 들어왔다. 날씨가 좋은 날이 많아 외출하는 날이 많아졌다. 100명이 눈이 부신다고 하는 상황에서도 검은 안경을 쓴 사람의 눈에는 아름다움만 보일 뿐이다. 다른 키워드는 '감사'다. 감사는 가진 것을 깨닫는 일이다. 몇 해 전, 엄청나게 많이 내린 눈 때문에 비행기가 지연된 적이 있다. 그때 같은 비행기를 탔던 사람들은 수 시간이 지연된 비행기를 타면서 욕을 했다. 비행기 지연 때문에 일정이 꼬였다느니, 불필요한 시간 낭비를 했다느니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이 불만을 쏟았다. 이후 알게 됐다. 그 비행기는 그 날의 마지막 비행기였다. 계속되는 폭설로인해 그 비행기는 지연이 됐으나, 비슷한 시간을 공항에서 기다렸던 다음 비행기 탑승 예정자들은 전광판에 '결항'이라고 된 표시를 보게 됐다. 그 비행기는 행운의 비행기였다. 매상황은 절대적이지 않고 항상 상대적이며 좋을 수도 있고 나쁠 수도 있다. 우리는 마구자비로 주어지는 '상황'에 이름표를 가져다 붙인다. 이거는 '좋음', 이거는 '나쁨'. 아이러니하게도 사람들은 '좋음' 이름표보다 '나쁨' 이름표 찾기를 더 잘한다. 결국 내가 가지고 가는 '상황'에는 온통 '나쁨' 스티커가 붙어 있다. '좋음'과 '나쁨'의 비율이 정확히 50%가 아니라, 20대 80이라면 이름표를 붙이는 행위를 지속할 때마다 '나쁨'을 꾸준하게 갖는 셈이 된다. 그렇다면 정답은 하나다. 그냥 '좋던', '나쁘던' 스티커를 붙이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하는 것이다.

 성경에서 아담과 이브가 '선악과'를 따먹으면서 우리는 '부끄러움'을 알게 됐다. 선과 악을 구별하는 순간부터 우리는 고통을 시작하는 셈이다. 나의 원죄가 뭔지 알 수는 없지만, 좋음과 나쁨을 구별하지 않는 것은 꽤 중요해 보인다. 그렇다면 그런 상황에서는 그저 어떤 상황이라도 '감사'하게 느끼면 된다. '균형'도 그러하다. 공짜로 얻어지는 것 같은 모든 것은 사실 빚이거나, 빌려준 것을 돌려 받는 행위다. 즉, 그저 주어지는 것이란 것은 없다. 밥 한끼 먹으면 나도 한 번은 사주고, 감사한 마음이 있다면 반드시 표현해야한다. 뭐든 치우지치 않아야 한다. 불교에 관한 책을 읽으면, 기독교나 이슬람에 관한 책을 읽는다. 보수정치인의 책을 읽으면 진보정치인의 책을 읽고, 친일의 책을 읽으면 반일의 책도 함께 읽는다. 균형을 맞춘다. 이 모든 철학은 사실 이 책에서 말하는 것과 같이 '진동'과 연관되어 있다. 진동(vive)는 다른 말로 하면 '파장'이다. 즉, 이미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 것과 같이, 모든 것은 '파장'이다. 빛도 파장이고, 소리도 파장이며, 물체도 파장이고 모든 것을 떨고 있다. 만약 두 사람이 줄넘기 줄을 잡고 있다고 해보자. 한 사람이 잡고 있는 줄을 위에서 아래로 세차게 흔들면 줄넘기는 이 에너지를 전달하여 반대쪽 사람에게 넘긴다. 반대쪽 사람의 팔이 움직인다. 이번에는 반대쪽 사람이 줄넘기를 세차게 흔든다. 즉, 두 사람이 줄넘기를 동시에 흔든다. 파장은 양쪽에서 진행하여 가운데에서 만난다. 이때, 두가지 현상이 일어난다. 하나는 '보강'이고 다른 하나는 '상쇄'다. 쉽게 말하면 이렇다. 한쪽에서 내리친 힘의 정확하게 같은 힘을 반대쪽에서 내리쳤을 때, 만들어지는 골과 산 모양이 반대면, 가운데 진폭이 더 커지거나, 사라져 버린다. 

 회전문이 있다고 해보자. 두 사람이 회전문을 민다. 둘다 같은 힘으로 민다. 어떤 현상이 일어날까. 두가지 현상이 일어난다. 둘이 서로를 바라보고 밀었을 때는 회전문은 움직이지 않고 정지된다. 즉 들인 에너지는 있을 지언정 어떠한 변화도 없는다. 다시 둘이 같은 힘으로 밀고 있을 때, 같은 방향을 향하여 밀면 어떻게 될까. 혼자 밀때보다 회전문이 회잔하는 속도는 높아진다. 그렇다. 상쇄와 보강은 그래서 중요하다. 우리는 얼마나 에너지를 사용하느냐가 성공의 관건이라고 여긴다. 아니다. 같은 거리인데도 갈 때와 올 때, 비행 시간은 다르다. 그 이유는 편서풍이라고 부르는 제트기류 때문인데, 같은 거리를 이동하더라도 한 쪽에서는 바람을 등을 지고, 다른 한쪽에서는 바람을 타고 간다. 둘 다 같은 거리를 이동하지만, 들어가는 에너지와 도달하는 시간의 차이는 발생한다. 사람은 파동이다. 생각도 파동이다. 흔히 뇌파를 감지하고 사용하는 단위에 헤르츠(Hz)를 사용한다. 이는 1초당 진동하는 진동수를 말한다. 즉, 우리의 파장과 크기와 방향이 같은 대상과 다른 대상이 있다. 여기에는 당연히 '상쇄'와 '보강'작용이 들어간다. 엄청나게 커다란 진동에 미세한 진동은 종적을 감춘다. 내가 누군가와 함께 있는지는 명확하게 나에게도 영향을 준다. 긍정적인 사람을 곁에 둬야 하는 이유다. 긍정적인 사람들은 긍정적인 사람들과 함께 하며 긍정적인 결과물을 이끌어낸다. 생각에도 진폭과 진동수가 존재한다.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 사람이냐에 따라 그 사람에게 반응하는 상대가 결정된다. 부정적인 생각이 든다면 왜 부정적인 생각이 드는지 본질을 고민해보라. 대부분 별거 아니다. 그것을 깨닫는 순간 우리의 뇌파는 다시 정상범주로 돌아온다.

 나를 어떻게 대해야 할지, 그것은 나를 변화하는 것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세상이 어떻게 달라지느냐에 상호작용된다. 나에게 선글라스를 씌우는 행위는 나를 변화시킨 행위이지만, 세상 전체가 변화하는 것이다. 자기계발서 중에서 꽤 나의 철학과 닮아 있는 책이라 반갑게 읽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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